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보고
이래서 드라마를 안 보려고 했다. 몇몇 드라마를 제외하고 내용이 판타지가 아닌 게 없다. <디마프(디어 마이 프렌즈)>나 <비밀의 숲> 정도만 완전 공감했다. 심지어 <동백꽃 필 무렵>도 재밌게 보다가 마지막 회에 배신감을 느꼈다. 아무리 맛깔 나는 캐릭터와 대사가 좋았어도 마무리가 그러면 안 되는 거다.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일란성 쌍둥이가 신분을 바꾼다는 설정도 신선하진 않지만 그럴 수 있다 싶었다. 자기 엄마도 못 알아보는 쌍둥이를 어째서인지 아빠와 할머니는 기막히게 구별할 수 있는 건지. 거기서부터 막혔다. 드라마에서 다른 힌트는 없었기에, 타인은 그렇다 치고 엄마도 못 알아보는 건 그 캐릭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쌍둥이 엄마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싼티 그 잡채인데 고급스러운 척하는 연기가 일품인 장영남이다. 극 중에서 장영남은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큰 탓,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 덕에 오로지 생존에만 몰입하는 캐릭터다. 바쁘고 힘들어서 자기 자식 얼굴을 구별 못 하는 엄마가 된 거라고 혼자 이해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 정도의 허술함은 용서할 수 있다. 근데 이 드라마에는 어쩐 일인지 악인이 없다는 게 걸린다. 자신의 이익과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팔아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변호사 선배 캐릭터도 알고 보니 합리적인 사람, 애정 표현을 안 해 평생 사랑을 고프게 만들었던 엄마도 알고 보니 자기 딸을 위해서만 살았던 사람, 살인자에다가 다른 사람 인생을 훔친 악인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아픔과 비밀을 간직하고 평생을 살았던 사람. 아무리 세상에 복잡다단한 게 인간이라지만 ‘알고 보면 애는 착해’의 서사의 범람이, 이래도 되나 싶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로맨스 서사는 클리셰 그 자체다. 미지는 그 어렵다는 첫사랑에 성공한 케이스. 미래의 상대는 농사에 관심 1도 없는 농촌 청년인 줄 알았더니 엄청난 부자. 첫사랑인데 십 년 이상 타이밍 못 맞춰서 마음만 갖고 있다가 이뤄져서 시청자에게 고구마 만 개 먹이는 상황인데 그나마 시간을 뒤섞어서 성토는 면한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끝까지 정주행한 이유는 만듦새가 좋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플러스, 정제되어 잘 쓰인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까지. 무엇보다 박보영의 우는 연기는 일품이다. 우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많지만 엉엉 우는데 같이 따라 울고 싶게 만드는 배우는 박보영이 유일하다. 특히 맑은 목소리로 오열하는 건 마치 아이가 우는 것 같아서 어떤 상황에서든 ‘괜찮다’고 위로해 주고 싶도록 만든다.
박보영 같은 얼굴이 집 밖으로 못 나가는 우울증 환자 역할을 설득력 있게 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너무 공감해서 바로 눈앞의 리모컨을 집어들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다들 오열했을 거라고 믿게 된다. 후벼파는 대사와 배우들의 티키타카와 방 안을 떠다니는 먼지까지. 모든 것이 딱 제자리에 있고, 그래서 너무나도 그럴 법한 장면. 개인적으로 그 장면에서 내가 했던 허튼짓과 그로 인해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처까지 보상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입게 되는 상처들.
이 장면을 청년들은 어떻게 보았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그 장면은 한 번쯤 보기를. 기억까지 위로해주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어차피 계속 행복하고 언제까지나 슬픈 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찰나의 행복과 슬픔이라면 드라마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