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동, 헬카페
오늘도 이력서를 한 통 보낸다.
이로써 23번째 이직 시도를 했다.
점심시간을 틈타 이직 준비를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 더이상 피씨방의 봉지라면이나 불벅 같은 걸 먹으며 자기소개를 소설로 쓰는 것도 지겨웠다. 오전에는 몰아치게 보고 시제품을 만들었고, 제품 담당은 포장재료도 제때 전달해주지 않으면서 심지어 나와 약속한 시간에 다른 회의를 들어가 40분이나 늦게 내려왔다. 그럴거면 문자라도 남겨주던가 전화도 씹고. 화딱지 나는 기분을 삼키면서 이번에는 제발 이직하게 해주세요. 저 솔직히 그동안 진짜 열심히 했잖아요. 애꿏은 하늘에다 생떼를 쓴다. 최종제출 버튼을 누르고 다음 외근을 위해 후다닥 피씨방을 나온다.
오후 일을 마무리하고도 찜찜하고 화나는 이 기분을 어쩌지. 오늘은 금요일이고 월급도 들어왔는데 누가 내 월급을 가져가고 나를 좀 진정시켜 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 생각난 헬커피 스피리터스. 그래 여기다. 여기 플랫화이트 한모금이면 지옥에 있는 내 영혼을 조금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을 돌렸다.
실내는 어두웠고 비오는 날씨가 운치를 더해줬다. 흔한 커피숍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커피는 팔았으면 좋겠고, 외진 느낌에 바에 온 듯한 재즈 음악. 자리에서 주문을 받는 것 이외에도 가냘픈 물컵과 따뜻한 손수건을 세팅해주어 한껏 고급진 레스토랑에서 대접을 받는 듯하다. 좀전까지 모자란 시간때문에 불벅을 입에 우걱우걱 우겨넣던 나였지만... 이 곳의 분위기는 가히 초라해진 내 영혼을 한껏 업시키기에 충분했다. 수고했다 나야. 나 오늘 총알 장전되었다.
헬카페는 낮에는 카페, 저녁에는 바로 운영되는 곳이지만 가게 컨셉은 바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듯 하다. 헬라떼는 바리스타가 나와서 눈 앞에서 라떼를 만들어준다. ‘첫 한 모금이 제일 맛있어서요’ 하며 갓 만든 라떼를 한 입 권하는데 정말 그 한입이 가장 부드럽고 맛있다. 메뉴가 나오면 사진찍기 바빠 짜게 식어가는 라떼를 위한 배려인 듯 싶다. 치즈케이크는 모두부 한 쪽 같은 외형에 크림치즈무스에 가까운 식감이다. 크림치즈 비율이 매우 높은 것 같고, 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맛을 내고는 사라진다.
가격대는 기존 카페에 비해 다소 비싸지만 질 좋은 커피와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좋다. 말 그대로 헬에서 나를 구원해주는 맛이니까. 혹시 알까. 이 커피가 나를 피씨방에서도 구원해줄 수 있을지.
헬카페 스피리터스
A 서울 용산구 이촌로 248 한강맨션 31동 208호
H 카페 11:00-21:00, 바 19:00-02:00
바는 일,공휴일 18:00-01:00로 운영
T 070-7612-4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