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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필기구 Jul 20. 2021

다른 능력은 없나?

능력주의에 대하여


"나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순간이동이 더 좋지." "시간여행은 어때?" "그건 나중에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이 안된다고 했어!"


어린 시절 아이들이 말하는 능력이라 함은 만화 영화에 나오는 그런 것들이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속에 각자가 지향하는 목적은 뚜렷했다.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는 아이는 부모님 몰래 더 놀고 싶다는 목적. 순간이동을 이야기한 아이는 학교에 지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시간여행을 말하는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모두가 공통으로 가지고 싶은 능력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공상은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공부를 더 잘해 성적을 높여야 한다.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 능력의 척도와 목적은 우수한 성적, 높은 석차 나아가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한 필요조건을 얼마나 더 많이, 더 빨리 갖추느냐로 수렴됐다. 각자의 개성에 따른 능력을 말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이 좋은 능력의 기준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 성적을 높여야 한다. 쟤보다 잘하면 된다. 남들이 나보다 못하면 된다. 다를 필요가 없다. 더 잘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자격증 시험을 보고, NCS의 성적을 높인다. 각자의 능력은 다른데 모두가 하나의 능력만을 말하고 있다. 내 옆자리에 시험 보고 있는 사람보다 잘하면 된다. 이 교실에서 1등 하면 된다. 목표는 단 하나, 1승을 거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능력은 오직 시험 문제 하나를 더 맞추는 것으로 증명된다. 내가 정말 잘하는 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면 능력이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의 능력은 무엇인가. NCS 점수를 잘 받는 것? 서류에서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것? 인서울 대학을 간 것? 서울에 사는 것? "아니, 그런 것 말고 '진짜' 능력은 뭔데?" 나만 잘하는 것, 남들은 할 수 없는, 혹은 잘하지 못하는 나의 능력은 없나? 능력주의를 외치는 시대에 우린 모두 능력 실종 사회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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