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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필기구 Mar 07. 2021

신자유주의의 그림자 걷어내기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고

장하준 교수/출처 연합뉴스

현대 한국의 ‘정약용 집안’(정치적 성향 부분은 차치하자). 장하준 교수의 가계도를 보면, 이렇게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는 게 놀랍다. 알만한 분들은 잘 알겠지만, 장하준 교수의 사촌 형이 장하성 대사다. 똑똑한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사설은 그만하도록 하겠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홍보는 사실 책 출판사가 아니라 ‘국방부’가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부는 ‘반자본주의적•반미적’이란 이유로 2008년도에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이뤄졌던 불온서적 논란이 2000년대에 일어나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을 지정했다는 점이 ‘컬트’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출판사와 장하준 교수 모두 크게 당황했다고 전해진다. (장하준 교수는 이를 의식해서인지 다음 저서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본인은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저자는 영국과 미국의 주도로 이뤄진 세계화를 비판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이 본인들은 보호 무역 주의로 자국 경제를 키우고 충분한 체력을 만들고 난 뒤 세계화를 통해 다른 국가의 시장을 공략하고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전작인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면밀하게 분석한 내용이기도 하다.


출처 돈 클립 아트 PNG는 Essie에 의해 설계되었고,에서 유래되었다. Pngtree.com

장하준 교수는 한국 경제의 성장을 주요한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경제 정책이 성장의 주요 원동력이었다. 당시 정부는 내수 시장 성장을 위해 강력한 관세 정책, 외국 자본의 유입 억제, 수입 물자 조정 등.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정책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은 외환위기 전까지도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세계화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이익 보전을 위해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외환 위기는 한국 시장을 세계에 활짝 열어놓는 계기가 됐고 한국에도 시장 자유주의적인 경제 정책이 펼쳐졌다.


한국도 스스로 세계화를 택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약소국들은 세계화, 자유무역주의를 강요에 의해 선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 선택권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의 대부분은 짧은 예외 기간을 제외하고는 자유 무역을 선택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델들은 보호와 자유 사이에서 자국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했다. 대처•레이건 시대의 신고전주의 경제학파가 목소리를 키우기 전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유 시장주의를 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높은 경제 발전 속도를 기록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의 기울어진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은 선진국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는 주장은 인상 깊은 대목이다. 세계화를 외치는 국가는 모두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무역 장벽이 사라지고 모두가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는 경제 환경이 공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대학생과 초등학생이 축구 경기를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것이 과연 공정한 경기인지 의문이 든다.


거대한 외국자본은 투자처를 찾아다닌다. 약소국의 투자 시장은 위험하지만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이다.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면 ‘High Risk High Return’을 감수하며 기꺼이 뛰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약소국은 어떨까? 이들은 빗장을 연다고 해서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자국 시장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도 벅차다. 그렇다면 하나 더 들어가서 해외 자본이 시장에 들어온다면 국내 시장은 어떻게 될까? 자금 유동성이 높아진다면 각종 재화의 가치가 하락하지 않을까? 당연히 금리도 낮아지고 여러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자본은 자신들 투자처의 기초 체력 신장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투자 이익을 환수하는 것이 최대 목표이다. 약소국의 정치, 사회, 경제 상황에 따라 당장 자본을 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장은 외국 자본을 안전한 돈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국조차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용에 따라서 주식 시장이 휘청거리고 이 여파가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기초 체력이 부족한 약소국은 외국 자본에 따라 휘청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경제가 뒤집어지느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는 것이다.


국영기업은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나, 아니면 안정적인 수요와 공급점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손해와 비효율성을 감내해야 하는가. 논란거리가 수두룩하다. 저자는 영국의 민영화로 인한 폐해, 미국의 의료시스템 등을 주요 근거로 가져온다. 한국은 여전히 공기업이 많은 나라에 속하며 주요 공공재는 전부 공영이 관리하고 있다. 나는 단순하게 공기업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기, 물, 교통을 이 정도 가격에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영기업에 의해 운영된다면 한국전력, 수자원공사, 서울교통공사가 입고 있는 손해를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에게 필수적인 공공재를 단순히 손해가 발생한다고 가격을 올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손해는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실력 양성을 위해 봤던 손해는 결국 이득을 본 장기적 투자였으며, 선진국으로 나설 수 있는 자양분이었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했기 때문에 자립한 것이다. 부자 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가 됐을 때에만,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까? 저자는 시장에 맞서라고 조언한다. 신자유주의는 선진국, 강자의 논리이며 그들이 일으킨 물결에 온전히 몸을 내어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많은 선진국들이 자국의 성장을 위해 자유에 소극적이고, 시장을 역행한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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