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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리 Apr 30. 2021

아가미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노을 지는 여름, 선생님과 학생 모두가 대강당에 모여 축제 연습을 할 때 나는 아무도 없는 음악실 앞 복도에 철퍼덕 앉아 있었다. 다리를 쭉 펴고 고개는 내 배꼽 부근을 바라보며 '일반적인 호흡'을 쓰지 않고 아가미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다듬지 않아 덥수룩한 뒷머리에서 땀이 삐죽, 목을 따라 흘러내린다. 수학 선생님은 마주칠 때마다 내 머리칼을 자로 휘적거리며 깔끔하게 잘라 오라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싫은데요.' 말 못하고 속으로 빈정대곤 했다.


'덥다.'

일어날 힘도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클래식은 드뷔시의 '달빛'과 '아라베스크'이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뒤로 젖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가만히.


'......'

속으로 '달빛'을 외운다. 나는 악보를 볼 줄 모른다. 어제 저녁엔 삶은 달걀 두 개와 그제 먹다 남은 치킨을 주워먹었다.


여학생들은 여름에 시원해서 좋겠다. 우리도 교복을 반바지로 만들어 주세요. 그런데, 여름에 반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다간 자칫 무릎팍이 다 까질 것만 같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저번 주에 인터넷으로 구매했던 모 밴드의 앨범을 뜯어보았다. 비닐을 벗기니 단단한 플라스틱. 위에 붙은 스티커를 가만 만져본다. 만 팔천 원.


내가 그 애한테 그림을 배울 때, 매달 꼬박 오만 원씩 현금으로 주었다. 그렇게 팔 개월? 성심성의껏 그림을 가르쳐 주는 모습에 오만 원이 괜히 미안해져, 방과후에 떡볶이 같은 간식을 자주 사서 먹였었다. 작년 구 월에도 다름 없이 하교 중에 핫도그를 같이 먹고 집에 도착하니 금붕어 한 마리가 어항 속에 있었다.


엄마는 이 금붕어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나는 금붕어를 아껴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나면, 아니. 시간을 내서 금붕어를 쳐다보았다. 얘, 너 나중에 꼭 사람이 되어서 나와 함께 대구에 가자. 금붕어는 말이 없었다.


가위에 눌렸다. 자다가 꿈에서 깨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고 몸이 움직이지 않아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어떠한 존재가 느껴지진 않았지만 귀 밑에- 목 사이가 너무나도 아팠다. 다른 의미로 무서웠다.


어찌저찌 까무룩 다시 잠에 들길 성공했었는지, 일어나니 아침 아홉 시였다. 헐레벌떡 일어나 우선 교복을 입고 거실에 나가니, 아차. 오늘 토요일이구나. 터덜터덜 방으로 다시 들어가 침대 위에 풀썩 앉았다. 한시름 놨다. 번뜩 새벽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황급히 목을 만진다. 이건, 날카로운 흉터- 무언가가...


아가미가 생겼다. 코를 손으로 비틀어 쥐고 호흡을 하려고 시도해 본다. 숨이 막히지 않는다. 병원에 갈까? 아니야. 엄마에게 말해볼까? 믿어주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만 몇 시간을 하니 쨍쨍하던 해가 구름 사이로 숨어 방이 캄캄해진다. 가만, 오늘은 비가 온댔지.


나중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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