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프리미어12 일본전을 중심으로
한국 대표팀은 15년도 프리미어 12를 우승하고 나서 한껏 도취되고 나서 곧바로 우승 다큐를 찍는다. 일본이 우승하고 싶은 나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회 운영을 한 점,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각 선수들의 모습, 어려운 환경에서 일본에게 1라운드에서 패했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준결승에서 9회의 극적인 역전승과 결승에서 우승, 그 과정에서 세대교체라는 명분과 약간의 콩트까지 잡는 완벽한 서사였다. 그러나 그때 그 우승, 그리고 그 승리가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릴 만큼 먼 일이 되어버렸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과의 경기에서 9연패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경기 성적도 좋지 않았고 대만에게는 1승 4패로 전적이 밀리고 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때의 극적인 승리가 독이 든 성배를 마셨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야구가 일본을 상대할 때 속설에 가까운 전략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일본 타자는 좌완투수에 약하다.
둘째, 일본 투수의 유인구를 속지 말아야 한다.
셋째, 우리에겐 약속의 8회가 있다.
이는 허무맹랑하다거나 베이징 올림픽같이 한 경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구간 통계로 집계했을 때 증명이 되는 부분이었고 경험으로 얻은 귀중한 공략법이었다. 우투좌타가 많은 소위 교타자 위주의 일본 타자들에게 윽박지르는 강속구 좌완투수들이 강했다. 이선희, 이상훈, 구대성, 김광현, 봉중근의 계보로 이어졌다.
포크볼은 일본야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종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구종이었다. 거기다 볼 하나를 넣다 뺄 수 있는 칼제구로 타자들은 현혹시켰는데 여기에 말려들지 않게 되면서 볼넷으로 걸어 나가거나 투구 수를 늘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8회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있다. 미신에 가까울 수 있으나 멘털적인 요소가 중요한 야구에서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전략으로 동메달을 딴 00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중반부터 2015년 초대 프리미어 12까지 굵직한 대회에서 일본전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06 WBC 2승 1패, 08 베이징 올림픽 2승, 09 wbc 2승 3패, 15 프리미어 1승 1패 등 전력으로 맞붙지 않는 아시안 게임을 제외하면 경기 순서에 따라 우승이 갈렸을 뿐 전적으로 보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시계를 잠시 돌려 보자. 15 프리미어 12는 오타니라는 에이스에게 휘둘렸다고 볼 수도 있다. 한 선수가 한 경기를 지배하기 마련이니까. 보란 듯이 오타니가 내려가고 9회에 신들린 대타 작전과 이대호의 역전 적시타로 흐름을 가져왔고 일본을 물리쳤다. 이전처럼 약속의 8회는 아니었지만 기어코 9회에 일을 내며 지금까지 공식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단지 오타니는 예외이고 투타겸업을 하는 아웃라이너니까.
우승에 심취한 나머지 과정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승 1패. 표면적으로 보면 대등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30분에 가까운 9회가 있기 전 한국대표팀은 일본전 무려 17이닝 연속 무득점 상태였다. 1차전은 5 대 0 영봉패였고 준결승전도 8회까지 3 대 0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두 경기 모두 압도당하고 있었다. 비단 오타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프리미어 12 준결승전은 분기점에 해당되는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일본 대표팀을 상대한 것이다. 올림픽을 거르고 13 wbc 광탈에 이어 세미프로를 내보내는 아시안게임을 제외하고 09 wbc 이후 6년 만에 상대한 것이다. 그들은 달라져 있었다. 몰라보게 전력이 향상되어 있었다. 오타니를 제외하고서라도 투수들의 구속이 향상되어 있는 와중에 짜임새는 여전했고 일찌감치 김광현을 무너뜨렸고 150을 상회하며 윽박지르던 이대은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그동안의 약점을 차근차근 갈고닦았다듯이 말이다. 반면 한국 대표팀은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인식이 그대로 이어졌고 그때의 주축 선수들은 다음 대회부터 한두 명씩 빠질 만한 시간이 찾아왔다.
잘못된 투수교체로 인해 일본은 이때 졌지만 한국전을 대비하는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우타자들이 성장했고 유인구 대신 구속을 늘려서 왔고 마지막 숙제였던 경기 후반에 강속구 불펜을 배치하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19 프리미어 12 결승에서 야마다 테츠토가 양현종에게 때린 쓰리런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한 방만 아니었다면 연속 우승도 노려볼만했다. (슬로스타터인 양현종은 연초에 열리는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못한데 11월에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조기강판되었다. 19 시즌은 정규시즌 성적도 좋았고 프리미어 12에서도 잘 던졌다) 그것을 기점으로 19 프리미어 12 2패, 20 도쿄올림픽 1패, 23 wbc 1패 등 중간중간 apbc를 제외해도 주요한 경기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다. 경기 양상은 비슷했다. 초반에 기세를 몰아 점수를 주고받다가 선발이 무너지고 리드를 당하다가 후반에 점수를 더 주거나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리는 식이다.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는다.
기조로 가지고 있던 세 가지의 전략을 이번에도 냈지만 이제는 전혀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어제 붙었던 경기(24 프리미어 12)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좌완을 냈지만 점수를 내주면서 끌려다녔고 일본 투수의 유인구가 아닌 강력한 직구 구위에 압도당했으며 경기 후반 씽씽한 강속구 불펜에 방망이를 맞추지도 못하면서 기적을 일으키기는커녕 인플레이조차 만들지 못했다.
이는 일본 우타자의 성장이 일단 크다. 어제 6점을 뽑았던 선수는 모두 우타자로 마키 슈고, 구레바야시 고타로, 모리시타 쇼타 이 세 명인데 우투좌타가 많은 일본에서 우타자 세 명이 최승용, 최지민, 곽도규를 상대로 모두 좌완 공략에 성공했다.
구속 향상을 이룬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은 입단한 신인을 상대로 첫 해는 무조건 2군 내지 3군에서 철저히 몸을 만드는데 이때 투수들이 비약적인 구속 향상을 이끌어낸다. 이는 육성 시스템이 잘 된 것이지만 이를 받쳐 줄 학계와 스포츠의 연계가 잘 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일본의 전통적인 마무리 이와세라던지 후지카와 같이 140 초반이나 150을 살짝 넘는 과거의 투수들과 달리 160에 가까운 불펜투수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타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뜬금포 외에는 1점 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와 반대로 한국 대표팀은 왜 자꾸 무너지는 것일까? 기존의 강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뎁스가 얕은 상황에서 국제대회 같은 단기전은 어차피 쓸놈쓸이다. 그런데 선발이 자꾸 짧은 이닝을 소화하다 보니 쓸놈쓸의 선을 넘어서 주축 불펜이 피로하게 되고 구위가 떨어지는 선수까지 쓰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경기 후반에 쉽게 공략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세 가지 전략은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좌완에 약한 것이 아니라 구위가 좋은 특급 투수들에게 약한 것이었고 유인구에 속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선구안이 좋은 것이었고 약속의 8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경기를 끌고 가다가 집중력이 떨어진 상대의 빈틈을 노려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앞서 황금기라고 불렸던 00년대 중후반에 특별히 일본전만 잘한 것이 아니라 숙적이었던 대만,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하던 미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여러 강적들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대표팀을 2개를 만들건 3개를 만들건 최상의 전력 한 팀만 꾸릴 수 있으면 단기전의 속성을 이용해서 어느 나라든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도리어 반대로 우리가 내세웠던 전략에 먹혀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소년 야구에서부터 일어나는 우타 거포의 부재가 극심하고 우투좌타 선수들이 많다 보니 우완 공략은 상대적으로 잘하는데 좌완에게 약하다. 23 wbc에서는 이마나가 쇼타에게 당했고 스미다 치히로에게 23 apbc, 24 프리미어 12 두 대회 연속으로 당했다. 그냥 던지는 유인구가 아닌 강력한 구위의 하이패스트볼을 당당하게 던지면서 포크볼의 낙차를 극대화시키고 있고 구속이 낮은 불펜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며 경기 후반을 지배한다. 일본 대표팀이 당했던 것을 한국 대표팀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요 근래 경기는 대부분 이렇게 끝이 났다. 비슷한 패턴으로 계속 지고 있다.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는 굳이 따지자면 약속의 8회가 아니라 배신의 8회가 되고 있다.
물론 부상과 병역으로 여러 선수들이 빠진 것은 인정한다. abs가 익숙한 투수와 타자들과 2경기, 3경기 하고 하루 쉬는 것과 달리 4경기하고 하루 쉬는 변칙적인 운영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로 경기력의 저하를 찾기에는 뭔가가 계속 아쉽게 느껴진다.
대만도 천관위 같이 일본 리그에 진출했던 선수들이 제법 있고 메이저리그 팜에서 활약하는 린위민 같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다. 일본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렇기에 세계 평준화 되었고 영상들을 살펴볼 수 있고 심지어 어떤 투수의 릴리즈 포인트와 구속을 재현할 수 있는 기계가 있는 시대에서 생소함이 무기가 되었던 사이드암에 약할 것이다, 일본은 좌완투수에게 약하다 이런 것들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더 세밀하게 따져 들어가 어떤 구종, 볼카운트 별 상황, 공을 몇 구 내에 치는 성향, 타순 별 타율, 비거리, 배트 스피드 등등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이미 그렇게 할 것이고 전력 분석 특성상 미디어에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대회가 끝났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위기론의 목소리는 높아질 것이다. 유소년 육성의 문제, 나무 배트 무용론과 알루미늄 배트 전환 같은 미래를 위한 대안들이 어김없이 고개를 들 것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개막전과 동시에 퍼지는 함성에 묻히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