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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May 16. 2024

14. 밀라노병원 재활병동 이야기

밀라노 병원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0. 모델포스 츤데레 간호사 선생님 

1. "Auguri!!" 이 상황에 축하한다고?

2. "밥은 먹고 다니냐?" 밥 챙겨주는 간호사 선생님

3. "나는 가수다." 노래 불러주는 간호사 선생님

4. 병실메이트, 자코모 할아버지의 발톱과 자판기 커피 

5. "분명 회복될 거예요!" 현실판 나이팅게일 신경과 주치의 선생님


0. 모델포스 츤데레 간호사 선생님 


코로나가 들끓던 2020년 9월. 

자그마치 3주간 지냈던 뇌졸중 집중치료실은 점심시간 딱 1시간, 단 1명의 보호자만 면회가 가능했다.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간 첫날. 나와 시어머니가 함께 병실에 있는 모습을 보고 2명의 보호자가 있으면 안 된다며 큰소리로 면박(?)을 주던 잘생기고 키 큰 남자 간호사를 피해 밖으로 나왔다. 굳게 닫힌 뇌졸중 센터 앞에서 기도하며 서성거리자 "PCR검사했죠?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하며 누군가 나를 다시 병실로 안내해 주었다. 고맙고 다행이었지만,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불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녁이 되자 낮에 호통쳤던 그 남자 간호사가 어머님이 밤새 아들 곁을 지킬 수 있게 간이의자와 얇은 이불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 우리를 늘 세심하게 챙겨준 멋진 간호사 선생님. 당신의 미소와 윙크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1. "Auguri!!"(축하해!!) 이 상황에 축하한다고?


처음 마주한 남편의 휠체어 앞에서 오열했던 내 모습이 무색하게 남편은 그 휠체어를 한동안 타보지도 못했다. 계속 누워 지내야 했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재활을 위해서 각 영역별 선생님이 병실로 다녀가셨다. 긴장되는 하루하루가 지나며, 온몸에 감긴 줄이 하나씩 떼어지고, 드디어 남편이 휠체어를 타게 된 순간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180도 달라지는 내 모습을 마주하며, '시련'이 주는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휠체어에 처음 탑승한 남편을 데리고 재활병동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산책을 했다. 며칠뒤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1층까지 다녀오는 도전도 해보았다. 곳곳에서 우리와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우리를 보며 "Auguri!"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 상황에 축하한다고? 뭐지? 무슨 의미지?' 그 순간은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Quanti mesi?" (몇 개월이에요?) 그들은 나의 불룩한 배를 보며 "임신을 축하한다"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남편의 휠체어보다 나의 부른 배가 더 크게 보였던 것 같다. 아픔 속에서도 축하할 일 만 바라보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과 또 그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래, 어떤 순간에도 축하할 일은, 감사한 일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 



2. "밥은 먹고 다니냐?" 밥 챙겨주는 간호사 선생님


간병인 제도가 따로 없는 이탈리아 병원은 간호조무사 같은 분들이 간병인 역할까지 다 해주셨다. 기저귀를 가는 일, 밥을 먹이는 일, 간단하게 씻기는 일 등 보호자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아무 말하지 못하는 남편을 혼자 둘 수 없었고, 하나라도 더 회복될 수 있게 가능한 한 계속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작은 체구의 만삭 임산부가 커다란 남편을 간호하는 모습이 그들 눈에 어지간히 짠하게 보였나 보다. 언제부터인지 내게 먹을 것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남은 식사를 가져다주며 내가 밥이라도 굶을까 염려해 주었다. 아직 입으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남편을 피해 휴게실에서 공짜밥을 먹었다. 병원밥이 이토록 맛있을 줄이야. 다양한 메뉴의 이탈리아 병원 환자식은 미슐렝 레스토랑에 온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맛있게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우스웠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나와 '태양이'(태명)를 챙겨주는 것 같아 위로받고, 한없이 따뜻했던 시간들로 남아있다.  



3. "나는 가수다." 노래 불러주는 간호사 선생님


재활병동에서 남편은 이미 유명인사였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젊은, 한국 남자, 성악가. 아들을 위해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시는 환자의 어머니. 거의 만삭의 배를 하고 남편 옆에서 하루종일 떠날 줄 모르는 자그마한 한국여자. 

어느 날 간호조무사 선생님 두 분이 남편의 점심밥을 챙겨다 주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며 갑자기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곁에 하나 둘 모인 의료진과 보호자들과 함께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감동에 취해 잠시나마 괴로운 현실을 내려놓았다. 

음악의 힘은 컸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진심 어린 사랑표현과 열정은 그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4. 병실메이트, 자코모 할아버지의 발톱과 자판기 커피 


남편 옆 침대엔 80이 넘은 환자가 있었다. '자코모 할아버지'에게는 찾아오는 가족들이 없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시어머니는 할아버지의 발톱을 깎아 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며, 기도해 주셨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아들의 아픔을 바라보는 엄마의 찢어지는 심정을, 외롭고 힘든 병원생활의 괴로운 마음을 서로 읽어가며 소통하고 계셨다. 

자코모 할아버지의 컨디션이 좋아진 어느 날, 한 손에는 휴대용 산소통을 다른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도움이 필요한 줄 알고 따라갔는데, 아무 말 없이 자판기 앞에서 커피 2잔을 뽑으셨다. 하나는 내 것. 다른 하나는 우리 어머님 것. 그렇게라도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으셨던 자코모 할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고 계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5. "분명 회복될 거예요!" 현실판 나이팅게일 신경과 주치의 선생님


처음 남편이 응급실로 실려갔던 날부터 우리가 퇴원을 하던 그 순간까지 우리 곁에서 함께해 준 나의 천사 Dottoressa, Laura! 남편의 상황을 늘 자세하게 문자 보내주고, 퇴근 후에도, 재활병동으로 옮긴 뒤에도 남편의 재활과정을 계속 체크하며 용기를 주었다. 남편의 작은 변화에도 크게 칭찬하며 위로해 주던 나의 나이팅게일! 엄마 뱃속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며 자라나고 있는 '태양이'의 마음까지 읽어주던 그녀가 있었기에 밀라노 병원 생활이 아픔보단 감사함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 우리는 그곳에서 재활치료뿐 아니라 사랑과 위로를 같이 받았다. 

세심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병원 곳곳에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위로해 주셨던 같다.  

어려운 순간에 절대 우리를 홀로 두시지 않으셨다. 



사진 - 재활병동에서. 시어머님과 자코모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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