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으로 쓰러져 어느 날 어린아이가 된 남편을 살리려 밀라노에 도착한 지 40여 일이 지났다. 가능한 하루빨리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히 52일. 당시 나는 7개월 차 임신부였다. 만약 52일 안에 남편을 데리고 한국에 가지 못한다면 내가 넘어야 할 산은 나 혼자 오르기엔 불가능한 산이 될 게 분명했다.
"며칠만 더 두고 보자.", "좀 더 상태를 지켜보자."
우리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치의 선생님도 최선을 다했지만 딱히 방도가 없었다.
그 무렵 코로나가 병원까지 침투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떠나온 뇌졸중 집중센터에도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고. 우리에겐 배려고 기회였던, 허술한 방역시스템이 가져온 결과였기에 너무나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듯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기적을 바라며 믿고 기도할 수 밖엔 없었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애타는 나날들 속에서 봄날 희망 같은 일들이 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콧줄이 떼지고 드디어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치료실을 다니며 좀 더 다양한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인지기능에 여전히 문제가 많아 보였지만 본인이 어떤 상황인지 정도는 점점 알아차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는 운동치료 중 재활치료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아주 잠깐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며칠 뒤 남편은 우리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아기가 자라면서 일어서는 연습을 하고, 이유식을 시작하고, 기저귀를 떼던 순간 물개 박수를 치며 행복해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기쁨의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이젠 하루빨리 말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병원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 하나같이 기적이라 했다. 어쩌면 남편의 회복 능력이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의료진들의 그 진심 어린 반응에 우리는 기적을 더욱 바라고 믿게 되었다.
나 역시 눈에 띄게 회복하는 남편을 보며, 우리가 분명히 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둘러 내가 할 수 있는 귀국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삿짐도 보내고, 차도 팔고, 은행계좌도 닫고... 도저히 그 짧은 기간 내에 해결하기 어렵고, 복잡한 일들이 수월하게 해결되고 있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매 순간 느끼는 나날들이었다. 산부인과에 들러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태양이'(태명)의 상태도 살폈다. 건강하게 뛰고 있는 태양이의 심장 소리가 너무나 감사했다.
유럽은 참 느리다. 그 수많은 일들을 코로나 시국에 혼자 다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기적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정확히 50일 만에 나는 남편을 데리고 한국으로 갈 수 있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 속에 하나의 퍼즐이 완성된 것은 아닐까?
꼬마 이태리(첫째 아이)가 웃으며 뛰놀던 놀이터,
남편과 손잡고 걸으며 우리의 큰 꿈으로 가득 채웠던 'Rho'(로) 광장,
골목골목 예쁜 추억이 오롯이 담긴 그 길들을 혼자 걸으며 눈물로 가득 채웠다.
"Buon giorno!", "Ciao!", "Bella!"
커피잔 달그락 소리, 에스프레소 향기, 갓 구운 빵과 사랑의 웃음들...
우리가 뜨겁게 사랑했고, 우리에게 더 뜨거운 사랑을 보여준 이탈리아.
우리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안녕, 나의 이탈리아.
<나의 아픔은 브랜드가 된다> 1부 - 이탈리아 편.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재활하고, 아이를 낳고, 울고 웃으며 지내온 여정을 풀어갈 예정입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얼마 뒤 남편의 이야기가 기적처럼 퍼져나갔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겠노라! 야심 차게 시작한 브런치에서 독자님들, 작가님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랑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넘치는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나의 아픔은 브랜드가 된다> 2부 - 이탈리아 그 이후 이야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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