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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지 Sep 13. 2023

나에게서 떠나갈 나의 이야기

1초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

타닥타닥 타닥...

...

...

타닥.

...

...

...

철썩철썩

...

...

...

...


노트북 자판 소리가 타닥타닥 거리다 이내 멈춘다. 적막함이 싫어 틀어 놓은 파도소리 ASMR만이 철썩철썩 텅 빈 새벽 시간을 채운다. 브런치 작가로 등록된 지 두 달. 그간 써 놓은 몇 개의 글들을 올리고, 두 달이 되는 시간 동안 아직도 새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쓰다 멈추다 저장한 글들은 '발행' 한 번 클릭하는 그 1초의 허들을 넘기지 못하고 꽁꽁 숨겨져 있다. 왜 발행하지 못하고 있을까? 하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숨만 나오는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 문득 또 생각이 나면 적다만을 반복하고 있는 답답한 나.


사실 나는 왜 내가 글을 쓰고도 발행하지 못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 이야기조차 꺼내기 싫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맞다. 나는 지금 나를 외면하고 있다. MBTI로 ENFP, ENTP를 왔다 갔다 하는 나는 MBTI적 표현으로 독립적인 성향에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하고 공감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소위 인싸의 성격과 자기애 강한 신념과 열정 가득 찬 고집 센 돌아이 같은 특이함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만이 나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며 글을 쓰며 드디어 바라보게 된 보고 싶지 않았던 다른 내 모습이 있었다. 하루 종일 한 마디 하지 않고, 혼자 있길 좋아하고, 너무 재미없이 진지하며, 사람에 쉽게 상처받고,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거절당하는 것에 공포를 느껴 남의 부탁과 기대에 늘 부응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물과 기름의 갈라진 경계선 같이, 하얀 백조 무리 속의 까만 오리 같이 섞이지 못해 늘 외롭다 느끼는, 작고 겁 많고, 보잘것없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바로 나였다. 우울하고 칙칙했고, 무거웠고 힘든 그 모습이 나라니. 보이고 싶은 나와 숨기고 싶은 나, 두 모습 사이의 깊은 괴리감을 견딜 수 없어 애써 외면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화려하게 포장하고, 있어 보이는 척, 아닌 척하고 싶어 하는 나. 내 생각보다 참 내가 별로여서 속상하고 비참한 마음을 글을 쓰며 발견하니 글을 쓰는 일은 하고 싶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럴 수 있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말이다. 그럴 수 있지. 이 한 마디면 천인공노할 대죄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사정도 허용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덮어두는 말이고, 이 말은 나 말고 상대방은 수용하지만, 내 마음, 내 감정은 외면하는 말이었던 걸 최근 읽었던 <하루하루 감정정화 연습>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감정 정화 중 수용과 위로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점이 있습니다. 상대를 수용하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수용하라는 의미이며, 상대를 위로하라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안에서의 나를 위로하라는 겁니다. 오로지 나를 보는 흐름입니다. (p.138)
_ <하루하루 감정정화 연습> 김안숙 지음, 마음시선 2023

내가 나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안타깝게 느끼는 시선과 감정들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왜 스스로에게는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의 배려와 여유의 시선을 주지 못하고, 무섭게 박하게 대했을까? 무엇이 두려워서 외면하고 있었을까? 하나하나 찾아보며 나를 다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써보기로 했다. 글을 쓰면 내가 찾고자 하는 나를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 이 글을 시작으로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이 시간 이후 나에게서 떠나갈 나의 이야기가 부디 '발행'에 걸리는 1초의 허들을 넘어 떠나가며 그 빈자리에 스스로에게 건네는 따듯한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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