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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남자

강한 남자      


박노인을 만난 것은 2023년 1월 26일 이었다. 

33년생이며, 장기요양등급 2등급(3월 12일 1등급으로 변경)으로 치매인 아내와 따님, 아들내외와 동거중이다. 

2021년 2월 4일 별다른 이유 없이 의식이 없어지고, 거동이 불가능해 혼수상태로  119를 불러 거제 맑은샘병원으로 내원하였으며, 바로 경상대학병원으로 전원되었다. 섬망증으로 진단 받았으며, 수일 내에 사망 가능성을 통보 받았으나, 다행히 회복 하였으며, 이후 병실에서 고성과 난동으로 침대에 사지를 포박하여 관리하다 결국은 강제 퇴원하여 재택에서 모시게 되었다. 초진 당시 준와상 상태로 혼자서 겨우 앉을 수 있었으며, ‘거미가 있다 지렁이가 있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으며, 기면 상태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감고 있는 상태 였다. 치매가 있으며, 대화는 느리며 단답형으로 일부 가능 하였다.      


박노인은 거제에서 산속에 있는 농촌 출신으로 ‘오빠오빠’ 하면서 따라다니던 7살 차이나는 동네 동생이랑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돈을 벌어, 큰 마을로 나와 방앗간을 차렸다고 한다. 방앗간은 매우 잘되었으며, 시간이 지나 큰부자가 되어서 그 동네에서 유지 소리를 들었다, 따님의 말을 빌리자면 어릴 때 친구들은 보리밥도 못 먹을 때  쌀밥만 먹고 자랐으며, 친구들이 고무신 신기도 어려울 때 하얀 운동화를 신고 다닐 정도로 부유하고 귀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박노인은 망해 버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랬단다. 사업권과 살던 집의 소유권은 타인에게 넘어가서, 남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단다. 그럼에도 박노인은 강한 남자였다. 덩치는 작으나, 온 동네가 다 알정도로 힘이 장사 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노동일을 하면서 가장으로 집안을 책임지고, 열심히 열심히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일을 하고 있는데 동네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박노인은 밖을 나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멍하니 잠을 자고, 말도 안하고, 텔레비젼만 멍하게 보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아주 오랜 기간을 보내다가 2021년에 섬망증이 온 것이다.      


박노인은 섬망증 진단을 받았지만, 그 원인 질환으로는 탈영(脫營)과 실정(失精)이라 진단 할 수 있다. 탈영은 귀족이 천민이 되면 생기는 병을, 실정은 부자로 살다가 갑자기 가난해 지면 생기는 병을 말한다.

내가 추측하기로 박노인은 강한남자 였다. 부유했고, 사업 수완도 좋았고, 의리도 있었고, 가족도 부족함 없이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의리 때문인지 억울하게 사업이 하루 아침에 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노인은 강한 남자였기에 여기에 굴하지 않았으며, 강한 힘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동네 사람들 험담이 방아쇠가 되어 이제까지 쌓인 울분이 터져 버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탈영과 실정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결과적으로 심한 우울증으로 밖을 나가지 않았을 꺼라 추측된다. 강한남자는 자존심도 강했을 것인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박노인은 깊은 동굴속에 들어가 버렸다.      


박노인 한테 한번은 농을 던진 적이 있다. 

‘할배, 아따 오늘 일도 끝났고 피곤한데, 할배가 막걸리 한병 받아주면, 오늘 한잔 하고 자고 갈께요’ 라고 농을 던지니, 박노인은 ‘오냐, 그래 막걸리 사온나 한잔 하자’로 응답했다. ‘아차, 집에 예쁜 샥시가 기다기는걸 깜빡 했네. 오늘은 안되겠고, 다음에 시간 되면 한잔 합시데이.’

이 대화를 통해 나는 박노인이 다시 동굴밖으로 나와서, 강한남자가 될수 있을 것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따님이 요구하는 박노인의 치료는 허리 통증을 위주였으나, 그후로 홧병 위주로 치료를 주로 하였다.

어제(3월 16일) 박노인의 집에 방문진료가 있었다. 박노인의 부인이 할배가 자꾸 일어 설려고 한단다. 오늘도 두 번이나 혼자 일어 설려고, 손잡이를 잡고 힘을 썼단다. 그래서 박노인에게 일어서 보라고 했다. 박노인은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 라고 대답 하더니, 자세를 잡고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 했다. 두 다리로 땅을 짚고 일어서는데 중간쯤에서 멈춘다. 팔이 부르르 떨질 정도로 힘을 최대한 주고 있다. 아직은 대퇴 부위에 힘이 약해 완전하게 일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는 박노인의 마음에 다시 강한남자가 되겠다는 불씨가 지펴 지고 있다고 느꼈다.       


거제시 재택의료센터 동방신통부부한의원에서는 방문진료, 방문간호, 지역자원연계를 통해 대상자를 통합관리 하여 지역사회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지원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그중에 방문진료는 한의사가 재택 대상자의 집을 방문하여 환자를 진료를 하게 된다. 

방문진료는 한의원으로 환자가 오는 외래 진료와 분명 다른 면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방문진료 시간동안 오로지 한명의 대상자에 집중하여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방문간호, 사회복지사 업무도 그러하다. 한의원 외래 진료에서는 환자와 대화할 시간에 채 3분도 되지 않는다. 방문진료에서는 30분~40분간 한명의 환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외래 진료에서는 문진할 때와 침 놓을 때 환자와 대화를 하는 정도라면, 재택의료센터 방문진료에서는 초진시 포괄평가를 통해 환자의 상태, 질병, 복약, 주변 사정, 돌봄정도를 종합적으로 파악 및 판단할 수 있으며, 케어플랜을 통해 다학제팀이 진료 및 돌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재진시에도 문진과 기초검사, 침치료시, 유침(침을 놓고 뺄 때까지 시간, 약 15분)할 때, 발침 할 때 까지 오로지 한명의 환자를 위해 대화한다. 내가 박노인의 사연을 알게 된 것도 유침시간에 ‘할배 고향이 어딘교?’ ‘할매는 우짜 만났는데요?’ 와 같은 몇가지 질문에서 연결된 대화였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따님과 박노인의 아내는 박노인의 과거사에 대해 줄줄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많은 대화는 많은 힌트를 준다. 30분간의 방문진료는 외래진료 10회이상의 정보를 주며, 환자 파악에 많은 도움이 된다. 아마 박노인이 외래로 내원하였다면, 난 박노인의 허리치료만 집중 했을 것이다.      


심한 우울증은 그 자체가 함정이라, 빠져 나오려는 마음이 있더라도, 빠져 나올 수가 없다. 박노인 부부는 새벽까지 재방송에 또 재재방송을 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그램이란다. ‘할매 그거 뭐 재미 있다고 새벽까지 그거 봐요?’ 라고 물으니 아내분이 ‘싸우지 않아서 좋다’ 라고 대답하셨다. 캬~~ 명언이기도 하고 마음 아픈 대답이기도 하다. 

박노인은 충분히 오랫동안 동굴 속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몸도 마음도 다시 강한 남자가 되어, 기저귀도 떼고 화장실 정도는 마음대로 다닐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막걸리는 힘들겠지만, 감주(식혜)라도 한잔 하면서, 한여사님이 첫사랑 이었는지도 알아 내고 싶은 바램이 있다.          


2023년 3월 17일 

거제시 재택의료센터 동방신통부부한의원 원장 방호열     


후기

2주 만에(3월 30일) 박노인의 집에 방문진료를 갔다. 주차를 하고 박노인 집 대문을 열고 박노인의 방으로 갔다. 박노인이 인사를 한다. 

‘아이고 선생님 오셨는교?’

‘제가 누군데요?’ 첫인사는 인지기능검사 겸 질문을 던진다.

‘저쪽에 고현에서 우리집에 치료하는 오시는 한의사선생님 아입니까!“

‘우와 오늘 할배 말씀 잘 하시네. 맞습니다. 잘 계셨어요?’

옆에 있던 따님이 이야기를 들으며 슬며시 웃으시더니, 운을 뗀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 이제 혼자 일어나요!’

‘예? 에이 설마! 그래 빨리 좋아지는 병이 아인데! 할배 한번 일어나 보이소’

박노인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전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앉았다. 방바닥과 보조손잡이의 장애물을 제거하니, 스스로 돌아 앉는데 속도가 빠르다. 나는 가족들이 박노인이 혼자 일어나신다고 말씀하셨지만, 마음 속으로는 혼자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 했다. 분명 2주전의 근력 테스트에서는 대퇴부의 근육 강화가 상당기간 걸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노인이 아무리 강한남자라도 대퇴부의 근력이 단기간에 강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어느정도 강화 되었다 하더라도 90살에 준와상으로 계시던 분이 몸전체의 체중을 버티면서 일어나는 순간 온 힘을 집중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박노인은 단번에 일어났다.  

내 입에서는 ‘어! 어! 뭐지? 뭐지?’만 반복할 뿐이었다. 일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양발를 교대로 떼서 운동을 하신다. 손잡이에서 한손은 놓기도 하는데, 아직 두려움 때문인지 두손을 놓지는 못한다. 부축을 하고 두손을 놓게 해보니, 버티는 힘은 있다. 

다리에 힘이 들어 가냐고 물어보니, 박노인은 말씀도 서술형으로 본인의 다리힘에 대한 소견과 밖에 나가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 하신다. 단답형으로 진행되던 예전의 대화와는 사뭇 다르다. 따님은 최근에는 섬망증이 없었으며, 수면 시간이 길어지고, 식사량이 늘었다고 하셨다. 박노인은 진료중에 웃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고맙다는 표현도 하셨다. 회복 속도가 빨라 무척 다행이라 생각한다.      


진료를 마치고, 이 소식을 박노인을 담당하는 방문간호 선생님께 알려 드렸다. 아마 방문간호 선생님도, 뭔지 모를 가슴속 진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날 밤 늦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했다. 감동과 뿌듯함이 지나가고, 피로와,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코끝이 찡한 밤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그날은 그랬다. 

다음날 따님에게서 가족들도 헤아리지 못한 부분을 신경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예전에는 박노인의 간호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산책도 할수 있게 되어서 좋다고 말씀 하셨다. 

재택에 머무르는 환자들은 얼마만큼 몸을 움직일 수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간호하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침대에 누워서 손하나 까딱 못하는 분은 24시간 보호자의 간호가 필요하다. 혼자 화장실을 가실 수 있는 분은 기저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혼자 마당을 나가실 수 있는 분은 그 가족도 장시간 외출이 가능 하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인원은 현재 약 100만명 수준이며, 향후 20년 후면 약 3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노동가능인구 즉 돌봄을 실행하는 인구는 약 30% 줄어들게 된다.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속도는 OECD에서 가장 빠르지만 노인 돌봄 시스템은 매우 느리게 진행 되고 있다. 

앞으로 수많은 박노인과 그 가족들이 새로 생기겠지만, 그 아픔의 총 양 만큼은 줄어들었으면 하는 나의 작은 바램이  있다.     


2023년 4월 15일 

거제시 재택의료센터 동방신통부부한의원 원장 방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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