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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쌩긋 Mar 24. 2019

<사랑이 훅!>, 진형민 지음, 최민호 그림

창비, 2018

엄선정이 활짝 웃었다. 남자애들은 항상 제멋대로 굴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옳다고 뻑뻑 우겼다. 그게 아니라고 또박또박 말을 해 줘도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떼로 몰려다녔다. 하지만 종수는 그러지 않았다. 엄선정이 의견을 말하면 언제나 잘 듣고 따라주었다.(64p)



​호태가 생일 카드를 내밀었다. 박담은 약간 김이 샜다. 호태는 "우아, 이게 뭐야?"하면서 선물 풀어 보는 재미를 모르는 것 같았다. 박담이 카드를 펼쳤다.
'생일 축하해. 평생 너를 지켜 줄게.'
김호태는 이 두 문장을 쓰느라 이틀 밤낮을 고민했다. 서로 사귀기로 하고 처음 맞는 생일이라 뭔가 멋진 말을 써 주고 싶었다. 그런데 박담이 대뜸 호태에게 물었다.


"왜 네가 나를 지켜?"
"어?"
"왜 힘들게 나까지 지키느냐고. 나는 내가 지킬 테니까 걱정 마. 그래서 지금 권투도 배우잖아. 잽잽."
"어."
(93p)




"나 그만할래."
"영어 시험 본다잖아. 지금부터 공부해야......"
"공부 말고. 너랑 사귀는 거 그만한다고."
"뭐라고?"
엄선정은 자기가 이종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종수가 같은 말을 또 한 번 했다.
"이제 너 그만 만나고 싶어."
엄선정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따. '기껏 문제집 만들어서 가져왔더니 그만 만나자고?' 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고 화가 치밀었다.
"왜? 왜 그만 만나고 싶어? 네가 뭘 했는데? 네가 한 게 뭐 있다고 날 그만 만나고 싶어!"
엄선정이 이종수를 똑바로 쏘아봤다.
"그렇게 물어보면 할 말은 없는데, 난 그냥 널 좋아했어."
"......"
"근데 넌 나한테 계속 화냈잖아."
이종수 말은 사실이었다. 엄선정은 요즘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엄마한테 혼난 것도 화가 나고, 이종수가 이렇게나 공부를 못하는 것도 화가 났다. 엄선정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어서 더 화가 났다.

 '왜 나만 이종수를 위해 문제집을 만들고, 왜 나만 이종수를 위해 문제집 채점을 해 주고, 왜 나만 이종수를 위해 모르는 문제들을 설명해 줘야 해?'하는 마음이 들어 자꾸만 억울했고, "이종수, 너는 왜 나를 위해 아무 것도 안 해 줘?"하고 큰소리로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종수가 그동안 자기도 뭔가를 쭉 하고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난 그냥 널 좋아했어.

이종수가 농구공을 텅, 텅, 튕기며 멀어져 갔다. 엄선정은 영어 문제집을 손에 든 채 농구대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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