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MBC에는 계급이 있었다. 목에 걸고 다니는 출입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색깔이 달랐다.
MBC아카이브팀은 통상적으로 문헌정보학과 출신들에게 지급되는 임금보다 아주 살짝 높았기 때문에 문정인들이 주로 보는 채용공고 사이트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로 자신들의 정치적 올바름을 증명하려 했다.
나도 안다. 같은 월급쟁이 처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일에 그들이 뭐 그리 크게 관여할 수 있었겠나. 그리고 그정도의 임금 수준이라도 책정하기 위해 그들이 기울인 노력이 거짓이 아니었을 것도 안다. 하지만 아무리 업계보다 높아봤자 한달에 90만원도 쥐지 못하는 사회초년생 비정규직에게 생색낼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때 MBC는 바야흐로 "마봉춘"이라 일컬어지며 잘나가던 시절이었지만 지하에 있던 아카이브실은 밖에 비가 오는지 햇살이 비추는지 알 수가 없는 골방 한켠에 불과했다. 마봉춘에 근무하는 듯, 근무하지 않는 듯 근무했었던 우리. 그리고 우리 팀을 관리하는 글로벌컨텐츠 부서는 10층(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있었다.
MBC정상화를 놓고 보무도 당당하게 되돌아온 그들은 왜 아직도 같은 모습일까.
백일이 넘게 파업을 하고도, 입사 능력이나 경력과 무관한 곳으로 발령을 받는 치욕을 겪고도, 해고투쟁을 하고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떠나기도 하고 동지를 잃기까지 했으면서도 왜.
지금쯤이면 근본적으로 이 사회의 열악한 노동조건, 경쟁과 통제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에서 비롯된 어려움이라는 것을 알아챘어야 하지 않은가.
현장 안의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공동의 적은 노동자를 쥐어짜는 국가와 자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부역자로 낙인찍고 내치기는 너무나 쉽다. 하지만 결국 그들 삶의 결을 면면이 살펴보는 작업을 하지 못한다면 당신들은 민주노조의 방향성도, "마봉춘"으로서의 갈 길도 잃은 것이다.
2017년 9월,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집단교섭투쟁 승리와 근속수당 완전 쟁취를 놓고 전국동시다발 확대간부 경고 파업을 벌인 날,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우리는 <공범자들>을 함께 보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러 온 MBC피디는 파업투쟁에서 승리하고 세상의 가장 약하고 아픈 곳을 찾아 전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당신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그 약하고 아픈 모습이 있다.
당신 곁의 그들은 그리고 그때 만난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교육청의 협박과 관리자의 한마디에 혹시 내가 해고될지 몰라 떨 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