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한 명을 키우는 데에는 온 회사가 필요합니다
약 10달간 진심이었던 셀러노트에서 적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프리랜서와 계약직 형태로는 경험하지 못했던 책임감과 소속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배웠습니다’ 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주니어라도 경력직이라면 기여해야 하는 몫이 훨씬 큰 편. 그럼에도 쉽다에서의 10개월은 배운게 참 많았던,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방송작가로 이런저런 방송국을 옮겨 다녔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시는 것 중 하나가, 작가는 프로그램(방송사 혹은 제작사)과 계약을 체결하는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이 이뤄진다는 것인데요. 능력만 되면 프로그램 2-3개에 각종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하는 만큼 벌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나름의 성취를 이뤘습니다. 혼자서 프로그램 하나를 통째로 담당하는, 그러니까 메인작가의 역할을 맡기도 했고요. 감사하게도 주변 작가님들로부터 좋은 제안을 자주 받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프로그램을 옮기길 주저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나는 언젠가, 이 방송국 이 프로그램과는 연이 끝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3년이 가까워지니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평생 일을 하며 살아야할텐데, 당시 스물다섯이었던 저는 벌써부터 원고료가 입금되는 날만 기다리는 부품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적당히 살다가 적당히 삶의 과업을 해결하다 시간이 끝날 것만 같은 생각에 ‘내가 어떤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내 일이 사람을 도울 때 가장 행복했고,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내가 쓴 원고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명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저 ‘이슈화’에 기여했다, 라는 어렴풋한 짐작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공하는 서비스와 프로덕트가 존재하는 기업으로의 이직을 고민했습니다. 서비스와 프로덕트로 사람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영상에 익숙하고 글에 능숙한 재능을 ‘콘텐츠 마케터’라는 직무로 살릴 수 있다는 걸 비정규직으로 다녔던 회사들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더더욱 정제되지 않았고 명확한 성과가 보이지도 않았던 저를 믿고, 회사의 첫 마케터로 채용해주신 분이 셀러노트의 대표님이셨습니다. 면접에서 뵈었던 대표님의 첫 질문은 “왜 우리가 당신을 채용해야 하는가” 였고, “타 지원자보다 영상 및 텍스트에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다” 라는 제 대답을 꽤나 맘에 들어하셨던 눈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사전과제를 수행하고, 쉽다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첫 3개월은 ‘콘텐츠 마케터가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찾아내기 위해 GA4를 뜯어보고 발행하는 아티클을 구글 검색엔진의 상위에 노출시켜 스니펫도 자주 먹었죠. 링크드인 계정을 그로스시켜서 팔로워를 늘리고, 비즈니스 기회를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수습이 종료되고는 다양한 마케팅 방법론을 차용하며 쉽다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시켜나갔습니다. 링크드인으로 발행한 오리지널 뉴스레터는 50일만에 200여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는 성과가 있었고요. 웹사이트의 노출은 입사 전과 대비해 300% 이상 확대됐습니다. 다음 회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약 7곳의 회사를 만나며, ‘정말 이걸 이 짧은 기간 안에 다 한게 맞냐’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기여한 몫이 없진 않았구나. 라며 다행(?)스럽기도 했죠.
사실 포워딩(국제물류주선업) 도메인이 기반이 되는 쉽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대표님을 포함한 C레벨분들은 콘텐츠 마케터가 1인분을 해내기 위해 이리저리 도전할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인터뷰 콘텐츠를 발행하겠다며 귀찮게(?) 요청드릴 때에도 저보다도 많은 준비를 하시며 콘텐츠 인사이트를 높여주셨고요. 온보딩 단계에서도 조직원들과 접점을 형성하는, 감사한 자리도 마련해주셨습니다.
발행한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시는 감사한 임직원들도 계셨습니다. 글 잘 보고 있고 유민님의 콘텐츠로 고객의 목소리를 들을 때 우리도 뿌듯한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건네주시기도 했고요. 제품의 로그를 파악하거나 서비스를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드렸을때도,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는 마음으로 꼼꼼히 응대해 주셨습니다. 친절하고, 일에 진심인 동료들이 있었기에, 질 좋은 콘텐츠로 우리 서비스를 알리려는 초심을 매일 깊이 새겼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첫 정규직 커리어를 사수와 팀 없는 조직에서 시작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경험되지 않은 것은 증명할 수 없다. 라고 저 역시도 믿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마케팅 관점으로 의논하고 조언을 구할 동료가 없었기에 더욱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고,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는 현재의 회사 상황과 나의 연차가 대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케팅에 제대로 집중하기로 결심합니다. 많은 회사를 만나며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 회사가 집중하는 사업이 맞아 떨어지는 조직을 찾았습니다. 혹 이직할 회사에서 저의 쓸모를 과소 혹은 과대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했습니다. 또한 마케팅에 얼마나 열중할 수 있는 곳인지, 의사소통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했고요. 이런 사안을 확인하고 나니 다음 커리어패스가 명확해졌습니다.
10월 21일(월)부터 새로운 회사에서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한번 정규직으로 일해보니, 회사에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행인건, 만나뵈었던 (새)동료분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를 온맘 다해 도와주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시, 최고의 복지는 동료니까요.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1인 주니어 마케터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해주셨던 모든 임직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실력과 확신으로 가득찬 능력자가 되어 어떤 방법으로든 전 회사 그리고 옮기게 될 회사에 기여하려고 합니다. 이번에도 잘 해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