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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an 26. 2021

세상이 뭔데 우리 엄마를 '극성'이라고 해?

조남주 작가 <그녀 이름은>을 읽고


우연히 친구와 교보문고를 둘러보다가 조남주 작가의 신작을 마주했다. 작년 이맘때 <82년생 김지영>을 4시간 만에 정독한 경험이 있어 이번 신작에 더욱이 관심이 갔다. 제목은 <그녀 이름은>.


교보문고 한 구석 자리를 잡고 조용히 책에 집중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어 내려간 그 심정으로.


그러다 책 내용 중 유독 내 마음을 아리게 한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생 딸을 둔 직장인 엄마의 이야기였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을 위해 직장 일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학교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엄마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왜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엄마를 떠올렸을까? 난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운동회 날에만 급식을 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얼토당토 없는 형식적인 날이었지만. 물론 우리 부모님은 못 오셨다. 당연하지. 엄마 아빠 둘 다 일하시는데. 대체 그때 학교는 무엇을 바라고 그런 자리를 마련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엄마는 나만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못하는 게 안쓰러우셨는지 새벽부터 일어나서 김밥, 초밥, 과일 등을 도시락에 싸주셨다. 그리고 난 할머니와 함께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부모님의 날’을 가장한 ‘맞벌이 부모님+자식 쪽 주기 날’ 등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올 때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기죽을까 봐 항상 대책을 세워 놓으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웃픈' 일화는 부모님이 급식 배식을 하는 날에 일어났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저학년은 학생이 직접 배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대신 와서 배식 도우미를 해야 했다. 그때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당시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6학년 우리 오빠가 배식 당번이 되어 주었다. 겨우 5살 차이밖에 안 나는 오빠가 무엇을 안다고. 오빠 밥 먹기도 바쁜데 1학년짜리 꼬맹이 동생 배식이라니. 


또 하루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어마을로 7일간 학교 연수를 갔을 때였다. 4일째 되던 날, 부모님과의 만남이 있었다. 부모님도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고, 아이들도 부모님이 보고 싶을 수 있으니 부모님과 잠깐 만남을 가질 수 있게 학교에서는 소위 '배려'라는 것을 해주었다. 4일 만에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인데, 부모님이 개인 사정으로 영어마을을 방문할 수 없는 아이들이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채 말이다.


나는 당연히 부모님이 못 오시는 줄 알았다. 시간이 오전 시간대였고 이런 자리에 부모님이 오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근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모습이 문 밖으로 보였다. 엄마가 나를 보기 위해 연가를 내고 영어마을까지 오신 것이다. 내 기억으로 엄마가 너무 반가워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린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기억이 지금은 웃픈 추억이 되어 오빠랑 나랑 깔깔 웃으며 얘기한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서도 은연중에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이 없지는 않다. 우리도 엄마 아빠가 있는데. 괜히 좀 그랬잖아.


오빠와 나는 이런 것에 대해 한 번도 터놓고 대화한 적은 없지만, 둘 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 부부가 아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학예회에 부모님이 오셨으면, 학급회의에 부모님이 오셨으면, 운동회에 부모님이 오셨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우리 엄마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그렇게 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친구 아줌마들 모임에 우리 엄마만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도 친구 아줌마들께서 항상 모임에 나를 불러주셨다. 혹여 내가 혼자 내버려져 있지는 않을까 아줌마들께서 항상 나를 챙겨주셨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오히려 직장 시간과 겹치지 않는 학교 모임에 참석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하는 '어머니 지구 방범대'라든지. 아직도 학교는 학교 일을 학부모에게 '분배'하려는 전통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자각하지 못했다. 우리 엄마만 일이 있어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특이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꼈다. 


대학생이 된 후, 자연스럽게 여성학을 접하게 되었고 1학년 2학기 때 '성의 사회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직장이 있는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자연스럽게 직장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대한민국 사회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그것이 초등학교를 졸업해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진로'처럼 여긴다. 그것이 마치 대한민국 여성이 밟아야 할 '엘리트 코스'인 마냥. 하지만 나는 여자가 이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이 여성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포기해야 했던 대한민국의 엄마들도 일을 정말 포기하고 싶어 포기한 것이 아니니까.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직장을 그만둔 것이, 엄마들에게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책을 읽으며 엄마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학교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도 참석할 수 없던 엄마의 입장. 어째서 대한민국은 자녀를 양육하는 것과 개인의 커리어를 쌓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게 만드는 걸까? 다음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이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애쓰는 우리 엄마를 사회는 감히 '극성'이라 칭한다. 사회가 뭔데 우리 엄마를 극성이라고 불러? 우리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성이고 우리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엄마다. 사회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 엄마를 그렇게 칭할 자격이 없다. 오히려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조남주 작가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던 사회는 이런 사회가 아니었는데. 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가면 갈수록 나의 꿈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나의 꿈이 모두 사라져 버리기 전에 조금이나마 사회가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나는 우리 사회의 '극성'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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