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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Aug 02. 2023

강릉 가는 길

눈꽃 에세이 3

강릉 가는 길             


 

 갑작스러운 너의 강릉 여행 제안에 순간 주말에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큰애를  학교  주말  수업에 오전 9시까지 데려다줘야 하고집에 돌아와 또 해야만 하는 밀린 집안일들이 넘쳐났지만...

 난 너와 강릉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암 수술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너를 혼자 보내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고, 그 힘들다는 항암 치료를 견뎌내며, 직장 생활과 집안일까지 모두 다 병행하면서 너무 꿋꿋하게 버텨온 너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연을 맺은 지도 근 10여 년이 되어간다. 난 싱글맘으로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교습소를 하고 있었다. 둘째 아이의 친구 엄마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따로 친분은 없던 네가 집에 방문해서 쌍둥이 딸들의 수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러면서 자신은 싱글맘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난 아이들의 친구 엄마들에게는 한부모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숨기려고 했다기보다는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또 사람들에게 괜한 선입견을 심어주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의 뜻밖의 커밍아웃(?)에 나도 모르게 "저두요..." 하고 내 상황을 오픈했다. 그 뒤로 우리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함께 나누며 가장 가까운 술친구로, 마음의 버팀목으로 십여 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 둘째는 매년 여름방학마다 너의 고향인 강릉으로 쌍둥이들과 함께 캠핑을 갔지. 그 애는 나랑 여행 간 횟수보다 너와 보낸 추억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자식에게 못해준 많은 부분들을 네가 너무 많이 채워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마워.)

 네가 건강검진에서 가슴에 무언가가 보인다고 정밀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을 때도 우리는 뭐 별거 아니겠지, 하며 끝나고 술 한 잔 마시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넌 전화로 "나 암이래." 그 말을 "나 감기래." 하는 말처럼 심상하게 감정의 동요 없이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난 소리 내서 엉엉 울었지만 수화기 너머의 너는 "아직 나도 못 울었는데 너가 그렇게 먼저 울면 나 어쩌냐." 하면서 우는 나를 달랬지.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던 거 같다. 네가 아프다는 사실도 무서웠지만, 굽이굽이 허방다리를 곳곳에 숨겨 놓은 인생이란 놈의 잔인함이 싫었다.

 그 후로 근 6개월의 시간 동안 너는 수술을 위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너무 씩씩하게 그 시간들을 잘 견뎌주었지. 듬성듬성 빠지는 머리칼을 다 밀었다며 삭발을 한 사진을 보내면서는 "내가 내 몸 중에서 젤 예쁜 곳 찾았지. 바로 두상이더라구. 암 안 걸렸으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지 뭐야. 어때 예쁘지?" 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강릉 가는 버스는 빈자리 없이 만석이었다. 주말이었고 날은 좋았고 너는 아픈 사람 같지 않게 들떠 있었지. 개인 병원에서 맞은 면역주사가 효과가 있는지 컨디션이 좋다며 활기찬 얼굴이었다. 강릉은 너의 고향...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고 너의 연인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10년 동안 주말마다 왕복 6시간의 거리를 달려서 너에게 오는 너의 연인의 열정과 사랑은 주변 사람들에게 감탄과 부러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차창 밖 풍경들은 평화로웠다. 여느 때 보다 일찍 만개했던 벚꽃들은 점점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여름의 초록은 아직은 시작되기 전이었다. 마치 혼잡한 유명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처럼 짧은 고요가 생경스럽게 아름다웠다. 우리는 마치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들떠서 3시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네가 아프다고 했을 때는 이것저것 많이 신경 쓰고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맘처럼 되지 않았다. 그간 힘들었던 여러 이야기를 들으니 직장 생활까지 하면서 투병을 해온 너의 의지가 너무 대견하고, 엄마 노릇까지 충실히 해내느라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릉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마중 나온 네 연인의 차를 타고, 함께 살고 있는 형님네 집으로 향했다. 형과 형수는 우리를 위해 수육을 삶고, 네가 먹고 싶어 했다던 쑥버무리에 회까지 정성 가득한 한 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셨다. 주위는 산으로 둘러싸여 펜션 같은 집 분위기에, 근처엔 이웃도 없었기에 흘러간 옛 가요와 올드 팝송을 음향 좋은 스피커로 빵빵하게 틀어놓고 우리는 신나게 술잔을 돌렸다. 물론 환자인 너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흥취 가득한 분위기에 이미 취해 보였다. 아직 연인과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너는 그 사람들에게 이미 가족 그 이상이었다. 너를 걱정하며, 너를 위해 음식을 하고, 너와 함께할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 따뜻한 풍경 속에 너의 모습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제자리에 들어가 완성된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우리가 만난 봄바다는 파란 하늘을 그대로 비춰내어 더 짙푸른 남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파도 한 점 없는 바다는 너무 부드러워서 마치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 보였다. 이런 곳을 고향으로 둔 네가 부러웠다. 지치고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이런 아름다운 곳이라니...


 

 너의 연인은 우리를 태우고 말없이 고속도로를 달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명한 스키장. 4월에도 녹지 않은 눈들이 듬성듬성 남아 있었다난 추운 걸 유독 싫어하는 탓에 스키장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스키장엔 스키만 타러 오는 것이 아니었다그곳엔 우리나라에서 최대 길이인 케이블카가 있었다그걸 타고 정상까지 올라간다고 했다예전에 여수로 놀러 갔을 때 공황장애가 있던 네가 케이블카를 타고 힘들어했던 모습이 생각나 탈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암에 걸려서 좋은 게 뭔 줄 알아다른 작은 병들은 병 같지도 않아공황장애가 없어졌다니까." 세상에... 이런 대책 없이 긍정적인 사람을 보았나폴짝케이블카에 올라타는 너의 발걸음이 솜털처럼 가벼웠다.

 산 정상에서 맞은 바람은 이슬처럼 투명하면서도 아직 겨울의 한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우리의 근심 걱정들이 소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산을 오르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나와 함께 꼭 가고 싶다던, 어릴 때 살았던 안반데기*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완쾌하면 꼭 가보자며 내 손을 잡았다.      

 네가 왔다는 소식에 큰오빠의 아내인 새언니가 봄나물을 가져가라고 해서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너와 새언니의 나이 차이는 나와 우리 엄마의 나이 차이와 같았지. 8남매의 막내인 너는 큰 조카와 한 살 차이고, 새언니가 시집올 때 너의 엄마가 너를 임신 중이셨다고 했다. 새언니 젖을 먹으며 조카랑 남매처럼 자란 너는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지만 뜨거운 형제애로 지금도 외롭지 않아 보인다.

 새언니는 두릅이며 오가피를 가방 가득 따놓고 너를 기다리셨다. 한 살 터울의 조카도 고모인 너를 보러 집에 와 있었다. 다들 맘 좋은 웃음으로 더 줄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찾는 눈길이 바쁘다. 새언니 집을 나오면서 네가 얼마 안 되는 용돈이라도 언니의 손에 쥐어드리자, 언니는 꽥 소리를 지르면서 나물 담은 가방에 돈을 던져 넣으셨다. "아재('아가씨'의 강원도 사투리) 아픈 거나 빨리 나으래요." 주려는 사람과 받지 않으려는 사람의 실랑이를 보며, 갑자기 목울대가 뜨거워져 고개를 돌렸다. 오빠가 돌아가신 지 1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너를 딸처럼 살뜰히 챙겨주시는 새언니의 마음이 가감 없이 가슴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너 또한 오랜 세월 혼자된 언니를 엄마처럼 따르고 챙겼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고향에서 너를 기다리고 걱정해 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너를 위해 자신들의 방을 내주고, 시간을 내주고 마음을 내주는 사람들... 사람들 간에 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인간관계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이 예의라고 규정하면서 선을 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유대감을 보면서 너는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 부자이며 많은 걸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넌 새언니에게 얻어온 나물을 나에게 반 이상 덜어준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도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리고 어제 너는 나에게 톡을 보냈다. "명이 나물로 장아찌를 담갔어. 시간 날 때 들러서 가져가."


 "S인디언 말로 친구는 '나의 슬픔을 자기 등에 대신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래신뢰하고 믿어줄 한 사람만 남기고 가도 삶은 의미 있을 거 같애널 만나서 보낸 10년의 시간보다 우리가 함께 보낼 시간들이 훨씬 길겠지세월 안에서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우리가 되자표현에 서툰 나의 마음을 오늘 밤엔 이렇게라도 전해본다빨리 건강해져서 강릉 밤바다에서 소주 한 잔 마시자사랑한다 친구야."              


 

(*안반데기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위치한 해발 1,100m의 전국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단지 )     



(세 번째 에세이 끝)     



- 웹진 <숨 빗소리>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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