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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Oct 13. 2023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한 잔 할 결심

16시간 스탑 오버, 나 홀로 아프리카 동부 여행의 기회!

* 에티오피아 항공을 타고 아프리카를 경유하면 호텔을 잡아준다?!

스위스에서 귀국하는 저렴한 항공편을 찾다가, 눈에 띈 것은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하는 항공권이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16시간이 넘는 아프리카 동부에서의 Stop over.

'이거,,, 재밌어지는데?’

스크롤을 내리니, 더 저렴하고 귀국 시간도 짧은 항공편이 있었지만, 이미 나는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마실 결심을 끝낸 상태였다.


게다가 에티오피아 항공은 8시간 이상 24시간 이하로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경유하는 승객에 한하여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임시비자와 함께, 시내에 위치한 호텔을 무료로 예약해 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아프리카 여행을 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 아닌가?


(에티오피아 항공사 측에서는 한국발-에티오피아 경유(8시간 이상) 승객에게는 무료 시티 투어도 제공하고 있다.)


* 제네바에서 아디스아바바로 출발!

스위스 우프 식구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마치고 도착한 제네바 공항.

제네바 공항에서 백 드랍 할 때 호텔 바우처를 미리 요청했다. 이른 아침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을 때 호텔 바우처를 빠르게 발급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묵게 될 호텔은 'DEBERE DAMO’. 여러 호텔 중에 랜덤으로 배정된다. 미리 호텔 주변의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로드하고 향신료를 살 수 있는 상점들을 저장해 두었다.

https://maps.app.goo.gl/o6TSx7k7yjXquSVv7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해, e-VISA 발급 창구에서 항공권과 호텔 바우처를 보여주니 호텔 바우처 종이에 도장을 찍어줬다. 아마 이 도장이 임시 비자를 발급받았다는 표시인 듯하다.

공항 로비로 내려가니, 호텔 셔틀을 기다릴 수 있는 공간 바로 앞에 바우처를 확인하는 직원이 서있었다.

"잠시 기다리시면 기사가 올 거예요"


정말 10분 정도 기다리니 내가 묵을 호텔 담당 기사님이 오셨다. 기사님을 따라나서는 사람이 나뿐이었다. 기대와는 달랐다.

나는 에티오피아 시내에서 커피 타임을 함께 할 동행을 셔틀 안에서 구하려고 했지만, 셔틀에 탑승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기사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창밖으로 에티오피아의 시내를 구경했다.


손님을 빽빽하게 실은 작은 버스들과 넓은 도로를 유유히 가로질러가는 행인들, 콘크리트 마감이 채 끝나지 않은 건물들, 멋 부린 여성들과 쌀쌀한 아침을 대비해 청자켓을 입은 청년들. 주말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풍경이었다.


* 에티오피아에서의 첫 아침, 그리고 동행 찾기

4성급 호텔이라고 했지만 역시 한국의 퀄리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저 따뜻한 물이 나오고 편안하고 깨끗한 침대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을 준비해 준다고 했다.


백팩을 내려놓고 침대 위에 풀썩 누워 한동안 천장을 응시하다가, 벌떡 일어나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으로 추정되는 얇은 빵과, 이와 함께 싸 먹을 수 있는 몇몇 향신료 가득한 요리들이 있었다. 얇은 빵은 촉촉하면서 시큼한 향이 났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이것을 찢어서 생선튀김 요리와 야채 볶음 위에 덮어 손으로 감싸 입으로 넣었다.

나도 따라먹어봤다. 맛은 그저 그랬다. 못 먹을 맛도 맛있는 맛도 아니었다. 향신료로 가득한 입을 파파야와 수박, 그리고 진한 커피로 중화시켰다.


함께 시내 나들이를 갈 동행을 물색했다.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현지 여성분에게 다가갔다.

“여행 오신 건가요~?  혹시 식사하시고 밖에 나갈 계획이시면 같이 가는 건 어떠신가요~?”

“저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밤 10시 근무라 자야 해서 멀리는 같이 못 가지만 가까운 곳은 같이 가드릴 수 있어요!"

흔쾌히 같이 나가자고 말해준 이 친구와 30분 뒤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 호텔 감금 신세라니?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8시가 되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현지인 남자1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었다.

눈인사를 하는고 앞을 보는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xx랑 시내 구경 가시는 거죠?”

초면인 사람이 내 스캐쥴을 꾀고 있다니… 직원 간 소문이 이렇게 빠른 건가? 흠칫 놀랐으나 이 분은 아까 그 동행할 분과 동료이자 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셋이 같이 나갈 거라고 했다.


나는 현금이 없기에, 밖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한 지 확인하기 위해 인셉션에 있는 호텔 매니저에게 가 물었다.

"제가 현금이 없어서 카드가 되는지 미리 확인하고 싶은데, 혹시 여기서 카드가 인식되는지 확인해 봐도 될까요?"

"누구랑 나가려고 하세요?"

"여기서 일 하는 이 친구들하고 같이 나가려고 해요. 식당에서 만났거든요!"

"고객님은 이 호텔에서 오늘 못 나가세요."

"예????"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아프리카 여행을 잠시라도 하고 싶어 굳이 36시간에 걸친 귀국 티켓을 샀는데, 호텔 감금 신세라니!

단호한 매니저의 말과 행동에 결국 두 친구들을 떠나보냈다.

"그래도 호텔에서 시간 잘 보내렴..!"


하지만 나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에티오피아 공항에서 임시 비자를 정상적으로 발급받았을뿐더러, 미리 환승 후기를 찾아봤을 때 커피 한 잔 하고 왔다는 몇몇 후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혼자 남아 매니저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제가 호텔 밖으로 못 나가는 이유를 알고 싶은데요?"

"비자 때문이에요. 비자가 없으면 밖에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나는 임시비자를 발급받은 종이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나갈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설명했다.

매니저가 말을 바꿨다.

"아까 그 애들 어디서 만났다고 했죠?"

"식당에서요."

"저 친구들이 여기서 일한다고 하던가요?"

"예… 그렇다고 하던대요?"

"저 애들은 이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예????"


매니저가 하는 말인 즉, 누군지도 모르는 수상한 사람과 동행하려는 나를 말리기 위해 한 말이었으며,

혼자 밖에 나갈 수는 있지만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되며 차라리 택시 기사에게 경호를 부탁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 정말 그 두 친구들이 악의를 가졌던 것인지, 호텔 매니저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나를 멈춰 세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호텔 매니저와 대화하는 내내 왠지 모를 께름칙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아무도 믿지 않는 게 낫겠다.


결국 나는 '호텔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호텔 측 책임이 아님’을 서약하는 종이에 사인을 하고

매니저에게 허락 아닌 허락을 받고 호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여자 혼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 에티오피아 향신료 쇼핑

조금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힘차게 걸어 나갔다.

길거리에는 동양 여자, 아니 외국인은 나뿐이었다.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묵직하게 느껴졌지만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약 4시간이었다. (4시간 후에 호텔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을 청한 후 저녁 7시에 다시 공항을 가는 셔틀을 타야 했다.)

나의 쇼핑 리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강황 가루

커피 가루

에티오피아 칠리 파우더

말린 대추

카카오 닙스

스위스에서 함께 한 식구 데이비드가 선보였던 요리에 항상 들어갔던 재료들이자, 떠나기 직전 휀이 내게 추천해 준 요리 재료이었다.


첫 목적지는 호텔 주변 SHOA슈퍼마켓이었다.

https://maps.app.goo.gl/zv51G1wdoSpG89Pz9

입구에서 짐 검사를 하고 향신료 코너를 쭉 훑어봤다. 강황,,, Curcuma,,, 아무리 찾아도 강황은 보이지 않았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더 큰 슈퍼마켓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쉬운 대로 카드가 작동하는지 확인할 겸 칠리 파우더 1킬로를 계산대에 올려놨다.

가격은 500 비르(birr), 한국돈으로는 12000원 정도였다. (1 비르 == 24.22원)

한국 물가와 비교하자면 1/3 정도 되는 가격이었다.


미리 다운로드하여놓은 오프라인 지도에 표시해 둔 향신료 전문점들은 대부분 일요일에 문을 닫았고,  걸어서 20분 정도 가야 있는 쇼핑몰에 딸린 상점을 가야 했다. 이곳의 대중교통은 승합차를 개조하여 빽빽하게 사람을 실어 나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 더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걸어가는 중에 우연히 소녀 두 명이 운영하는 향신료 가게를 발견했다.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은 가게였다.

- ATTAR ALBARAKAH

https://maps.app.goo.gl/NG37xpNGyxUNydai9


소녀 두 명에게 미리 암하라어로 번역한 내 쇼핑 리스트를 보여줬다. 소녀들은 까르르 웃으며 말린 대추와 카카오 닙스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줬다. 강황은 500g에 100 바르, 2500원이었다.

현금만 받는 가게였기에 바로 앞 은행에서 현금을 뽑아와 계산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현금 결제하는 가게들이 대부분이니 꼭 은행이나 쇼핑몰 안에 있는 안전한 atm에서 인출하길 추천한다.)


* 길거리에서 만난 커플, 한나와 싸께와의 동행

다음 목적지는 카페였다. 에티오피아에 왔으니 전통 커피를 한 잔 마셔봐야지!

오랜 지인인 일러스트레이터 현우 작가에게 언젠가 전해 들은 에티오피아 커피 세레모니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무 카페나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현지 맛집을 구글 지도로 찾을 수가 없는 곳이 에티오피아였다.


지나가는 현지 커플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제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데, 혹시 맛있는 커피집을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커플은 영어도 잘하고 아주 친절했다. 게다가 향신료 쇼핑을 하고 있다고 말하니, 조금 더 가까운 큰 슈퍼마켓을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같이 가줄게요! 마트 가서 향신료도 사고 커피도 같이 마시러 가요!"


슈퍼 안으로 들어가 화이트 큐민 가루와 후춧가루, 그리고 커피가루를 추천받았다. 그렇게 현지인 한나의 추천으로 성공적으로 향신료 쇼핑을 완수할 수 있었다.


- Shoa Hypermarket | Megenagna | ሸዋ ሃይፐርማርኬት | መገናኛ

https://maps.app.goo.gl/QBYYjGTZ4XX5E1os6


다음 목적지는 한나와 싸께의 단골 커피집 ’Amanga coffee’였다.

https://maps.app.goo.gl/opW25fjEaUkvfaWU8

Raki Café & Restaurant


외진 골목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혼자였다면 이 골목으로는 절대 안 들어왔을 거다…'

현지 남성들로 가득 찬 이곳. 한국과는 다르게 에티오피아의 카페는 남성 손님들로만 가득하다.

실내 자리는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 없었고, 가게 앞에 있는 십 수개의 포장마차 의자 자리마저 가득 차있었지만,

한나가 어디선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던 의자들을 모아다가 우리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커피잔과 설탕이 세팅되고 싸께가 세 개의 컵에 설탕을 덜어내고 나니, 곧 점원이 커피가 든 주전자를 가지고 왔다.

작은 잔에서부터 시작해, 기다란 줄기를 만들며 저 위에서 커피를 따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세상에 작은 잔에 담긴 커피는 역시나 최고였다. 진하지만 쓰지 않은 깊은 맛. 에티오피아 현지인이 최고로 뽑는 커피였다.

"아까 마트에서 산 커피가루도 이 커피랑 맛이 비슷할 거야!"


1차 커피는 맛으로 승부하는 곳이었다며, 2차로는 커피 세리머니를 보러 가자고 했다.

싸께의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이자 카페였는데, 이곳은 현우 작가에게 들었던 커피 세리머니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 Raki Café & Restaurant (정확한 정보인지는 확실치 않다...)

https://maps.app.goo.gl/jCF8pxT2nDKbR2DE9


여러 찻잔을 앞에 두고 정성스럽게 커피를 준비한다. 눈과 입이 즐거운 시간 었다.

우리는 튀르키예에서의 커피 이야기와 아이벡의 어머니가 커피점을 봐주신 이야기를 하며 한동안 폭소와 수다를 반복했다.

각자 먹고사는 이야기와 요즘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또한 '아프리카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많이 허물어지기도 했다.


이날 마신 모든 커피는 한나와 싸께가 매번 귀여운 말로 고집을 부리며 기어코 전부 계산했다.

"제발 우리가 여행자에게 대접할 수 있게 해 줘~"  


우리는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며 헤어졌다.

오늘 마신 진한 커피 세 잔에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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