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기 위해 아파트 주차장에 내려가 차에 올라탔습니다. 주말 운전 담당인 남편은 회의가 있어 먼저 일찍 출발했으므로 아이들을 태우고 제가 운전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차 앞에 수직으로 주차한 차가 조금 튀어나와 있어서 제 차가 빠져나갈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운전 실력이 좋지 못한 저는 외제차를 긁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밖에서 바라보니,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더군요.
'아,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밖에서는 보이는구나!'
그래요, 저는 운전은 잘 못합니다.
다시 운전석에 타고 탈출(?)을 시도해 봅니다.
그러나 다시 안에서 바라보니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공간지각 능력이 좋지 못한 탓에, 여전히 남의 귀한 차를 긁을까 염려스러워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도 두려웠지요.
그때 고맙게도 큰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제가 밖에 나가서 좀 봐드릴까요?"
아, 내 새끼들이 벌써 이렇게 컸구나. 그렇지, 네가 봐줄 수 있지!
아이가 밖에 서서 남의 차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확인해 준 덕분에 그 좁은 공간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운전하면서 역시나 낭독을 떠올립니다.
운전은 어쩜 이리 낭독과 똑같을까.
내 목소리를 내어 낭독할 때는 객관화가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도 듣는 귀가 있지만 내 낭독은 나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개선점을 찾아내고 실제로 고쳐나가기란 혼자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들어주고 개선점을 찾아준다면 빠르고 쉽게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죠.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도 생전에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테너의 대명사라고 할 만한 최고의 성악가도 자기 노래를 듣고 객관적인 관점을 제시해 주는 사람을 두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은가요?
낭독에도 이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동료도 좋지만 나보다 더 깊고 넓은 낭독을 할 수 있는 실력자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모든 일에는 겪어야 할 과정과 시간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지금 이 단계에 갇혀버릴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안다면 조급함과 실망감을 버리고 지속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이미 경험해 본 사람, 올챙이적을 기억하고 있는 선배가 잘 안내해 줄 수 있답니다.
이것이 바로 낭독을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운전이 그러하듯, 낭독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려면 잘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