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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May 17. 2023

교수님, AI가 우리를 대체할까요?

병아리 교수의 번역수업 일기

기계번역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현재 통번역학과 재학생들은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보다 훨씬 치열한 통번역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멀지 않은 미래에 AI가 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공부할 힘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역량을 키우도록 지도할지 고민이 되었다.


AI 시대가 도래해도 창의력 분야는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번역 분야에서도 창의력과 예술적 감각을 요구하는 문학번역은 비교적 안전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내가 수업하는 법률번역은 기술적이고 창의력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AI로 가장 빨리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기계번역기로 번역을 해보니, 도움 되는 부분이 많았다. 법률번역에는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전문 용어들이 있는데, 기계번역기는 이전에 번역된 문서들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전문 용어를 바로 검색해 내서 번역문에 반영을 한다. 그리고 이전에 번역된 비슷한 내용의 문서들과 유사한 번역을 해줌으로 문서 간 일관성을 유지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딱딱하고 기술적으로 보이는 법률 문서에도 의도와 목적이 존재한다. 어떤 문서는 회사를 보호해 주는가 하면, 어떤 문서는 직원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제 조약문 같은 경우에는 사전적으로는 동의어라도 우리나라의 이익을 더 보장해 주는 용어로 번역을 해야 한다. 계약서에 기업이 개발한 기술에 대한 설명은 포함하되 중요한 영업비밀은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해야 할 때가 있고, 개인정보를 담되 개인의 안전이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판단을 기계가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계번역을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사람의 손을 거쳐서 문서의 목적과 의도에 맞게 번역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률문서에도 나름의 서사가 있다. 판결문은 한 편의 범죄소설이나 법정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자세한 스토리로 작성될 때도 있다. 특히 미국 판결문은 사건 배경과 법정의 상황을 영화 대본처럼 작성해 놓는 경우도 있어서 판사들이 작가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의견서를 작성할 때는 읽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글에 논리와 흐름이 있다. 이러한 서사와 논리는 아직 AI가 세심하게 살리기 힘들기 때문에 번역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회사 동료들과 점심 먹고 산책을 하다가 챗GPT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기계가 문서 초안을 작성해 주는 시대가 열리면 우리는 점점 검토자, 결재권자의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이 대화의 요지였다. 번역의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초안을 번역사들이 작성한다면, 앞으로는 기계가 초안 번역을 하면 번역사들이 검토를 하는 시대로 점점 변해갈 것으로 생각이 된다. 검토자가 되려면 번역실력은 기본이고 문서의 의도와 목적까지 생각할 수 있는 더 넓고 깊은 시각이 요구된다.


예전에는 통번역사를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단어만 많이 아는 것으로 부족하다. (어차피 기계보다 더 많은 단어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수업을 하면서 번역을 연습하는 것만큼이나 문서의 의도와 흐름을 파악하는 시간을 학생들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이 연애 상담하러 온 친구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남자의 마음을 우리끼리 파악해 보려는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원문 작성자의 의도와 마음을 문서에서 파악해 내는 능력, 어쩌면 많은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는 이 능력을 이제는 우리 번역사들이 길러야 할 때라는 생각에 학생들과 함께 문서를 보고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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