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사는 고려 희종 4년(1208)년에 원각 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수원 광교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조계종의 말사입니다. 수원 근교에 있기에 접근하기가 매우 편한데, 수원역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경기남부 경찰청, 봉녕사 입구역'에서 내리면 다음과 같은 비문이 보입니다.
이곳은 봉녕사 입구로 여기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봉녕사가 나옵니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쭉 올라가 봅니다.
봉녕사 비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
알록달록한 연등으로 들어가는 길을 장식해 놓았네요. 풍경을 즐기며 잠시 여유롭게걸어봅니다.
10분 정도 올라가다 보면 일주문이 나옵니다. 일주문은 사찰의 입구 같은 곳입니다. 일주문을 경계로 부처님의 세계와 속세가 구분됩니다. 아직 전각은 보이지 않지만 일주문을 넘는 순간 불교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찰의 시작을 알리는 일주문
일주문 옆에는 산책하기 좋은 숲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한 번 걸어보았습니다.
일주문 옆으로 난 산책로
옆쪽 산책로에서 찍은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주욱 걷다 보면 범종루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봉녕사 범종루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의 사물(四物)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사물이란 불교의 의식에 사용되는 4가지 법구로, 한 중생도 빠짐없이 제도하고자 하는 불교의 자비원리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범종은 지옥중생을 비롯하여 일체중생을 위해 치는 종인데,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6번을 쳐 중생을 깨우친다고 합니다.
법고는 북으로, 부처님의 설법이 삼천대천세계에 울려 퍼져 축생의 의식을 깨우치도록 하는 법구입니다.
목어는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의미를 답은 법구입니다.
운판은 청동으로 구름 모양을 본떠서 하늘의 날짐승을 해탈시키기 위해 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범종루
범종루 맞은편에는 문화원인 금라가 있습니다. 금라는 2016년 5월 개원 이후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불교뿐만 아니라 미술과 음악,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양 강좌와 예술 공연을 꾸준히무대에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신도들과 방문객들이 커피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들어가서 보니 사찰 내부에 있는 카페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금라의 모든 행사는 무료이며 입장은 선착순이라고 하네요.
문화원 '금라' 출처: 봉녕사 홈페이지
범종루와 금라 문화원을 양 옆으로 끼고 앞을 바라보면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보입니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들과 탑, 연못의 무지개를 감상하면서 올라가다 보면 좌우에향하당과 청운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향하당과 청운당은 스님들의 수행공간입니다.(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향하당과 청운당 바로 위해는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주존불이란 그 전각의 중심이 되는 부처님을 의미합니다.
전각이란 금당, 법당과 같은 것을 지칭하는
건축물입니다. 고려시대 초기에는 전각에 황금빛이 나는 부처님을 주로 모셨습니다. 그렇기에 '금'자를 써서 금당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다 고려시대 중기부터는 불상자체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자는 의미로 법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고려 후기부터는 전각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 전각에 한 분이 아닌 여러 불보살님들을 함께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해당 전각의 중심이 되는 부처님을 주존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주존불을 보좌하는 형태로 두 부처님이 모셔진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협시불이라고 합니다. 대적광전은 주존불로 비로자나 부처님, 좌우 협시불로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입니다.
이 세 부처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석가모니 부처님 사후, 부처님의 제자들은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이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그리워하다, 어떻게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완벽한 진리를 깨치셨을까? 하고 궁금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인간인 석가모니 만으로는 그런 성스러움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 석가모니가 아닌 신격화된 존재를 만들어 내게 되는데 그것이 비로자나 부처님입니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적인 존재인 비로자나 부처님(법신불)이 일시적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불)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렇게 인간이었던 부처님과 신격화된 부처님이 나뉘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이 두 부처님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부처님 또한 만들어 내게 되는데 그 부처님이 '보신불'입니다, 이 세 부처님을 모아서 삼신불이라고 합니다.
대적광전
대적광전의 왼쪽에는 약사보전이 있습니다. 약사보전은 위에서 언급한 세 부처님 이외에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셔놓은 곳입니다. 부처님이 참 많으시네요. 약사여래부처님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부처님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병을 고쳐주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부터 다른 온갖 재난으로부터도 중생들을 구해주는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는 부처님인 것이죠.
확실히 먹고살기 힘들어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이니 진리니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뭘 믿기 이전에 일단 힘든 것이 해결되어야 했을 테니까요. 힘든 것이 해결된다면 믿음은 절로 생겨나겠죠. 저 같아도 10억 일시불로 이체해 주고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말하면 바로 믿을 것 같습니다. 약사여래 부저님의 좌우 협시로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습니다. 다른 협시들과는 다르게 조각이 아닌 그림(탱화)의 형식으로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네요.
약사보전
약사여래불. 출처:봉녕사 홈페이지
대적광전 오른쪽에는 용화각이 있습니다. 용화각은 1998년에 신축된 전각으로 석조삼존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삼존불은 1995년에 대적광전 위쪽 언덕에 전각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중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용화각
용화각의 본존불은 석조여래좌상으로 연화문이 섬세하게 조각된 중대석과 상대석의 대좌에 모셔져 있고, 좌우에는 보살 입상이 협시불로 서있습니다. 그러나 발견당시부터 마모가 심해 불상의 형상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사찰은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방문하면 좋은 것 같습니다. 사찰 특유의 분위기가 있거든요. 사찰을 구경하면서 이곳에 오신 분들을 슬쩍슬쩍 보곤 했습니다. 무언가를 하러 왔다기보다는 잠시 많은 것을 내려놓고 말 그대로 쉬러 오신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변이 그렇게 내려놓고 쉬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니 저 역시 절로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쉬어가게 되더라구요. 그러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전각의 밖은 그렇게 맑은 분위기가 있어 공간을 즐기며 쉬기 좋았습니다. 전각의 내부는 적막한데 부처님 상 앞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으면 저절로 고요해집니다. 흙탕물이 맑아지듯, 마음의 흔들림도 저절로 그쳐집니다. 법당 내부의 서늘한 온도가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도와줍니다.
부처님 상은 참 특이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금이나 돌로 만든 조각품일 뿐인데 저절로 마음의 무언가가 내려놓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딱히 불교 신자도 아닌데 말이죠. 비록 이것이 이 장소, 이 순간에서의 일시적인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마음을 얽매고 있던 무언가가 툭 내려놓아지면, 그 순간에 볼 수 있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볼 수 있게 된 다른 가능성들은 꽉 막혀 있었던 삶의 흐름에 물길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트여진 작은 물길 하나하나가 여유가 되고, 새로운 가능성이 되어 무언가에 얽매이이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부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말이죠.
이처럼 '내가' 하는 것이 아닌, 저절로 타력에 의해 그쳐지는 경험은 저에게 있어 그날 사찰을 방문한 최고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상한 표현이네요. 보통 이유가 먼저 있고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얻은 것이 생기고 나서 그것이 이유가 되었으니까요. 어찌 됐든 좋은 경험을 한 하루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짐들이 한순간에 기적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잠깐의 그침이 새로운 가능성을 낳고 그렇게 트인 물꼬에 의해 삶이 적절하게 흐를 수 있게 된다면, 결국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그 사람이 보게 될 풍경은 달라져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