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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에 Nov 03. 2020

시나브로 기적은 오고 있었다


제이가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아 초조해하던 어느 날, 꿈을 꿨어요.


"제이야, 왜 말을 안 해?

엄마가 기다리고 있잖아-"


"엄마, 내가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래.

조금만 기다려줘"


낯선 목소리로 야무지게 말하던 꿈속의 제이도, 잠에서 깨어 자는 제이를 안고 대성통곡하던 일도 아직도 코 끝이 시큰할 정도로 생생합니다.


언제쯤 엄마라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쫑알대는 제이를 만날 수 있을까?






지난달, 제이는 꼭 60개월이 되었어요.

요즘 제이는 하루 종일 재잘댑니다. 종알대는 그 입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집안일을 하다가도 제이가 종알대며 인형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일손을 놓고 한참을 쳐다봅니다. 기적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나 봐요.


혹시나 부담스러워 말을 안 할까 봐 조심스레 귀만 활짝 열어 들어보면 유창한 말이 아니에요. 언젠가 읽어줬던 동화책 이야기와 영상에서 봤던 대사 등 지연 반향어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대부분이지요. 그러나 고무적인 것은 제이 스스로 말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이든 어른이든 동기부여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에 그 속에서 가끔씩 터지는 자발어가 저를 설레게 합니다.






자폐범주 장애는 의사소통의 결함, 사회성의 결여, 제한된 관심과 활동을 보편적인 특징으로 보고 있어요. 언어발달검사를 하던 언어치료사가 '제이는 언어가 아닌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무엇이 다른지 몰라 당황했었던 기억이 나요. 정상 발달 아동들이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모방하고 학습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제이에게는 너무도 힘든 과정이었던 거죠.


제이는 이제야 들을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켜켜이 수용 언어가 쌓이니 컵에 물이 넘치듯 표현 언어가 따라오고 있어요. '당연한 것 아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생활에서 이것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지 않아요. 저를 비롯해서 말이죠.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눈을 맞추지 않아도 부모는 계속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의 뇌는 다 듣고 있거든요. 다만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직접 보고 만지며 말해주는 것이 좋겠지요. 반복하여 체득하면 어느새 아이가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제이는 어린이집을 비롯해 각 치료센터를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데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사회성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아이가 들을 수 있도록 혼잣말을 많이 하라고 하셨어요. 사실 저는 말보다 텍스트가 편한 사람이라 혼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거든요.


"어머니, 부담 가지실 것 없어요.

상황을 설명하고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말해주면 돼요.

이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도 이해하고 표현하는 순간이 분명히 옵니다.

예컨대 '차가 많아서 길이 많이 막히네. 얼른 가고 싶은데 못 가니까 답답하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며칠 전 몇 번을 불러야 대답하던 제이가 "비행기가 엄청 낮게 나네"라고 했던 혼잣말에 창 밖으로 여기저기 비행기를 찾아보더라고요. 해가 지는 안양천을 가리키며 "제이야, 옆을 봐, 엄청 예쁘다" 했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다"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제이가 자꾸 엄마를 춤추게 합니다.


이제 제이는 "엄마, 비행기가 엄청 낮게 나네"라고 말하겠죠.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기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요.


오늘도 기적을 향해 파이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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