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목소리로 야무지게 말하던 꿈속의 제이도, 잠에서 깨어 자는 제이를 안고 대성통곡하던 일도 아직도 코 끝이 시큰할 정도로 생생합니다.
언제쯤 엄마라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쫑알대는 제이를 만날 수 있을까?
지난달, 제이는 꼭 60개월이 되었어요.
요즘 제이는 하루 종일 재잘댑니다. 종알대는 그 입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집안일을 하다가도 제이가 종알대며 인형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일손을 놓고 한참을 쳐다봅니다. 기적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나 봐요.
혹시나 부담스러워 말을 안 할까 봐 조심스레 귀만 활짝 열어 들어보면 유창한 말이 아니에요. 언젠가 읽어줬던 동화책 이야기와 영상에서 봤던 대사 등 지연 반향어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대부분이지요. 그러나 고무적인 것은 제이 스스로 말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이든 어른이든 동기부여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에 그 속에서 가끔씩 터지는 자발어가 저를 설레게 합니다.
자폐범주 장애는 의사소통의 결함, 사회성의 결여, 제한된 관심과 활동을 보편적인 특징으로 보고 있어요. 언어발달검사를 하던 언어치료사가 '제이는 언어가 아닌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무엇이 다른지 몰라 당황했었던 기억이 나요.정상 발달 아동들이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모방하고 학습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제이에게는 너무도 힘든 과정이었던 거죠.
제이는 이제야 들을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켜켜이 수용 언어가 쌓이니 컵에 물이 넘치듯 표현 언어가 따라오고 있어요. '당연한 것 아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생활에서 이것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지 않아요. 저를 비롯해서 말이죠.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눈을 맞추지 않아도 부모는 계속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의 뇌는 다 듣고 있거든요. 다만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직접 보고 만지며 말해주는 것이 좋겠지요. 반복하여 체득하면 어느새 아이가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제이는 어린이집을 비롯해 각 치료센터를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데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사회성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아이가 들을 수 있도록 혼잣말을 많이 하라고 하셨어요. 사실 저는 말보다 텍스트가 편한 사람이라 혼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거든요.
"어머니, 부담 가지실 것 없어요.
상황을 설명하고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말해주면 돼요.
이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도 이해하고 표현하는 순간이 분명히 옵니다.
예컨대 '차가 많아서 길이 많이 막히네. 얼른 가고 싶은데 못 가니까 답답하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며칠 전 몇 번을 불러야 대답하던 제이가 "비행기가 엄청 낮게 나네"라고 했던 혼잣말에 창 밖으로 여기저기 비행기를 찾아보더라고요. 해가 지는 안양천을 가리키며 "제이야, 옆을 봐, 엄청 예쁘다" 했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다"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제이가 자꾸 엄마를 춤추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