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4.
이 글은 2021.10.04.에 작성하였습니다.
정부는 추석 이후 새로운 규제를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는데요, ‘전세대출 규제’ 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홍남기님 또한 “하반기 전세대출은 스퀴즈(squeeze)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하셨고요. 전세대출에 강한 디레버리징을 유도하는 정책이 나올 모양입니다.
전세대출 규제. 2019년 12월에도 이 얘기가 나왔습니다. 정부는 주택 가격 상승을 이끄는 유동성 공급 창구 중 하나가 전세대출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세 = 서민’ 프레임 때문에 규제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무산되어 왔구요. 지난 2019년 12월에는 전세대출 규제 소문이 퍼지고 4일이 채 지나지 않아 전면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반발이 어마어마하게 거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 보입니다. 시중은행은 전세대출에 상당히 소극적으로 바뀐 게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국민적인 반발이 그리 눈에 띄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지친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런 건지,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져 온 가파른 전세보증금 인상에 적응하셔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에서도 몇 차례 간을 보더니 이제는 시행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전세대출 규제를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요.
이번의 전세대출 규제는 과거의 다른 부동산 규제와 지향점이 다르다고 느껴집니다. 주택 가격이나 임대 가격의 조절을 위해 규제를 시행한다기 보다는, ‘가계부채 관리’의 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전세대출이든 주택담보대출이든 가계부채 총량 관리라는 목표 하에서 시행되는 규제인 거죠. 매매와 전세 가격의 변화는 아마도 사이드 이펙트 정도로 취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규제가 더 무섭고, 잘 대응해야 합니다. 주택 가격에 개입하겠다는 정책은 주택 매매 및 임대 시장이 손상되지 않게 선을 조절하지만, 목표가 ‘디레버리징’인 정책은 시장의 붕괴는 어느 정도 용인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디레버리징, 즉 파티의 종료 시점에 앉을 의지가 없다면 파산하겠지요.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전세대출 규제 정책이 유발할 주택 매매 및 임대 가격의 변화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세대출 규제가 가해지더라도 서울 및 수도권을 비롯한 업무지구 접근성이 좋고 주거 쾌적성이 높은 아파트, 소위 상급지 아파트의 매매 및 전세 가격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은 매매 및 임대 가격의 추세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다른 요인이 유지된다면 현재의 매매 및 임대 가격의 상승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급지 아파트(서울 및 수도권을 비롯한 업무지구 접근성이 좋고 주거 쾌적성이 높은 아파트)는 이미 ‘똘똘한 한 채’ 패러다임이 강하게 적용되는 지역입니다. 전세대출 규제 시행 시 일부 노이즈가 예상되기는 합니다만(2019년 12월 18일 이후 매매계약한 주택 중 보증금 승계 매수한 경우, 현재 주택 가격이 15억 이상인 경우 전세보증금 반환대출 불가 – 12.16. 규제의 보완 대책), 이 세그먼트는 전세 유동성으로 가격이 유지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의 매매 및 임대가격 추세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본인이 노이즈 케이스에 속한다면 상당히 머리가 아프겠지요.
반면, 아파트라 하더라도 임대 비율이 높거나 인근에 레버리징할 수 있는 업무지구가 적은 지역, 그리고 아파트가 아닌 주택 중 주거 쾌적성이 떨어지는 입지의 주택은 전세대출 규제 시행 이후 매매와 임대 가격 모두 하방 압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세대출 규제는 유동성의 회수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상급지 아파트는 전세대출로 가격이 유지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전세 유동성 감소가 매매 및 임대 가격에 줄 영향은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거 쾌적성이 떨어지는 지역은 전세대출이 가격을 유지하고 상승 시키는 주요 요소입니다. ‘매매하기는 싫고 거주는 해야 하니 전세대출 받아서 일단 살자. 어차피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라는 패러다임으로 돌아가는 세그먼트는 전세대출이라는 대규모 레버리지가 감소하면 시장에서 종전의 보증금 규모를 모두 소화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보증금’은 ‘나중에 받을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보증금을 꽤 높이더라도 일단은 대출해서 다 지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사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보다 보증금 상승분을 맞추는 게 가계 입장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즉 보증금의 시장가액은 주택의 매매가격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매매가격은 대체로 효율적으로 책정되지만, 보증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받을 돈이라는 심리로 인해 보증금은 꽤 비효율적으로 책정되고, 레버리지가 감소하면 쉽게 하락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세대출을 규제하면 임대 시장은 어떻게 바뀌어 갈까요?
저는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될 것으로 봅니다. 2017년부터 계속 해 온 이야기인데, 실제로도 그간 월세 전환이 많이 되었습니다. 현 정부의 주택 정책은 일관적으로 ‘월세 거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정부를 지지하는 분들은 쉽게 공감하시지 못하는 부분인데, 김수현님의 책과 그간 시행한 정부의 정책, 앞으로 계획된 정부의 주거 정책을 보시면 일관적으로 ‘월세 거주’라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찾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실제로 현 정부에서 임대 시장의 월세화가 급격히 진행된 현실 또한 바라보시면 좋겠습니다. 관리를 잘 하는 정부의 특성 상, 관리하기 좋은 월세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시행하는 다양한 공공주택 정책 또한 ‘월세 거주’를 지향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공임대에서 100% 보증금으로만 거주 가능한 전세 유형은 얼마 되지 않고, 최소한 반전세부터 시작합니다. 월세, 즉 마이너스 현금흐름은 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현 정부에서 촉진한 ‘민간 임대사업자’ 또한 월세 거주의 확대를 목표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생기자 일단은 한발 물러서긴 했습니다만, 민간 임대사업자는 전세 보증금을 받는 대신 임대물건의 담보대출 + 임차인의 월세로 돌아가는 구조를 목표로 했습니다. 공공주택은 ‘집주인이 국가인 월세’라면, 민간 임대사업자는 ‘집주인이 민간인인 월세’인 구조였죠. 공공만으로는 임대주택 공급을 못 하니 민간과 공생하는 구조였습니다.
월세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요, 정부는 왜 월세 위주의 임대 시장을 만들려고 할까요? 저는 관리의 용이성 때문에 월세 전환을 유도한다고 보았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월세는 관리가 용이하고 전세는 관리가 어렵습니다.
월세는 주택 자산의 가격, 부채(담보대출 및 보증금), 수익률(월세) 파악이 전세에 비해 용이합니다. 월세 임대주택의 취득은 자기자본 + 담보대출을 통하므로, 정부에서는 주택의 가격과 부채비율을 쉽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규제도 쉽게 가할 수 있구요(실제로 민간 임대사업자가 주택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대출은 금지하는 식으로 규제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월세가 얼마인지 파악하면, 자산 별로 수익률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가계부채가 얼마인지, 그 중 주택 취득에 들어간 담보대출은 얼마인지, 월세 보증금은 얼마인지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되는거죠.
반면, 전세는 보증금으로 돌아가는 시장이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습니다. 전세는 그 자체로 대출인데요, 주택 가격의 일부를 조달하는 '사금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대출을 받는 구조란 거죠. 여기서 전세대출은 임차인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임대인에게 빌려주는 데 사용되고요.
문제는 전세 보증금이 사인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사금융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적절한 규제를 가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선 규모 파악에 있어서는 임대현황 신고를 의무화해도 제대로 안 하는게 현실이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내역으로 보증금을 파악하기도 하는데 정확도가 아주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가계부채가 문제라고는 하는데, 정확한 전세 보증금의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습니다. 가계부채에 대한 처방을 내리려면 진단을 해야하는데, 진단 과정에서 전세로 인한 현상(가계부채 수준) 파악이 잘 안되는 거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 깔끔하게 파악되고요.
정부 입장에서 전세를 관리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사금융이기 때문에 적절한 규제를 가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사금융이다 보니 주거생계와 걸려있기도 하고, 애초에 제도권이라 말하기 힘드니 규제 근거도 빈약하고요.
대표적인 예로 ‘갭투자’라고 불리는 전세 레버리지를 활용한 주택 취득은 정부의 주택 규제에 큰 구멍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전세가율이 60%인 주택을 갭 취득하면 사실상 LTV 60% 대출을 사용한 거래입니다. 매수자 입장에선 심지어 무이자 대출이기까지 합니다. 주택 매매 시 LTV 규제와 신용대출 규제를 폭넓게 가하고 있는데, 전세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이 모든 규제를 우회할 수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전세때문에 주택시장 전체를 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겁니다.
이렇게, 정부에서는 전세가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러니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임대 시장을 월세로 재편하자는 게 현 정부의 일관된 주택 정책이었고, 지금까지 잘 이행되어 왔습니다. 3기 신도시가 사실상 임대도시라는 점 또한 현 정부의 주택 정책을 잘 보여주고요.
문제는 ‘시장의 정상화’는 대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고, 그 결과로 거주비용의 상승을 이끌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국민들은 여기서 선택해야 합니다. 시장을 정상화(정부의 관점)시키는 대신 높은 거주비용을 부담할 것인지, 비정상적인(?, 물론 정부 관점) 시장을 용인하는 대신 거주비용을 낮게 유지할 것인지를요.
시장의 정상화가 고비용을 촉진한 예로 주택의 보유세(재산세 + 종부세)가 있습니다. 주택의 보유세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 있었는데요, 정부는 이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보유세를 대폭 인상했습니다. 보유세의 산정 근거가 되는 공시가격도 급격히 인상시켰구요. 그 결과 모두가 바라던 대로 정의로운 조세가 실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정의로움과 금전적 부담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대개 정의로움은 비용을 요구합니다. 임대인은 증가한 조세를 임차인에게 부담시키며 전세를 반전세로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높아진 공시가격은 분양 주택의 가격을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이는 곧 수분양자인 국민의 금전적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분양가가 높아지면 분양가만 높아지겠습니까? 인근의 매매가격도 높아집니다.
전세대출 규제를 통한 정상적인 월세 시장으로의 재편 또한 비슷한 결과를 낳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택은 필수 재화기 때문에 시장의 플레이어, 즉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택을 매매해서 임대 시장에서 탈출할 것인지, 현재의 주거비용과 동일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것인지, 현재 지역에서 머물며 높아지는 비용을 감수할 것인지 등, 전세대출 규제가 가해지면 시장의 플레이어가 행동할 수 있는 방향은 몇 가지로 좁혀집니다. 이런 경로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전세대출 규제는 결국 월세의 가속화라는 결과를 낳을 것만 같습니다. 주거비용의 상승이라는 사이드 이펙트와 함께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대안이 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각자가 매매로 거주할지 임대로 거주할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선진국은 월세 위주의 임대 시장으로 돌아갑니다. 선진국의 일반적인 근로자는 생애소득을 통해 수도의 주택을 취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비정상적인 시장’인 탓에 근로자도 생애소득의 절반으로 수도의 주택 취득이 가능했고, ‘비정상적인 시장’인 탓에 전세라는 사금융이 발달해서 강남과 같은 주요지역에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매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주택의 가격은 급등했고, 임대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며 주택이라는 자산의 성향이 자본차익 대신 현금흐름 확보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더 좋은 정책을 제안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제안할 역량이 안 됩니다. 다만, 이제는 거주유형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게 남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매매와 임대를 선택할 수 있었던 시장이, 쉽사리 매매 시장에 접근할 수 없도록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20대 이하는 사회에 진출할 때 시작부터 월세 생활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 사회 초년생부터 마이너스 현금흐름을 박고 시작하는게 정말이지 미국을 보는 기분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주택 시장에 조정이 온다는 예측이 많이 나옵니다. 정부에서도 상투를 걱정하라는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경제위기가 발발한다고 해도 과거(IMF, 서브프라임)처럼 주택 가격이 장기간 급락할지는 의문입니다. IMF 시기에는 ‘잔뜩 쌓였던 공급 + 실물경제위기’ 탓에 주택 가격의 급락이 장기간 지속된 것이었고, 지난 서브프라임 시기 또한 ‘잔뜩 쌓였던 공급 + 금융경제위기’ 탓에 주택 가격의 급락이 이례적으로 장기간 지속된 것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IMF 시기에는 노태우의 주택공급 200만호 준공 직후라 온 국토에 집이 지어진 직후였고, 서브프라임 시기는 서울 도심지 대규모 재생의 피날레가 울리던 시기였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초품아 대단지아파트의 메이저 브랜드의 아파트가 눈 뜨면 쏟아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실물경제든 금융경제든 위기가 터지자, 어려움에 처한 주택 소유자의 물건을 시장이 소화를 못한 것입니다. 이미 시장에 집이 널려있었거든요.
지금은 어떤가요? 서울 도심지에는 10년 이상 공급이 적체되어 왔고, 2017년부터 서울 및 수도권 주요지역은 레버리지 사용을 강력하게 틀어막아서 금융적으로 매우 건전한 시장으로 가격이 상승해 왔습니다. 이 상황에서 실물경제위기든 금융경제위기든 발발한다 한들, 주요 지역의 레버리지 사용이 한정적이고(LTV 40% 이하 + 신용대출 1억) 공급마저 틀어막혀 있으니 조정이 오더라도 그리 길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애초에 관리의 정부인지라, 주택 매매시장의 레버리지를 초우량 대출로 채워 뒀습니다. 주택 매매시장은 Covid-19가 오든 말든 꿈쩍도 않고 상승하는 식으로 건전성을 과시했고요.
아무튼, 이런저런 말이 길었네요. 계속되는 주택 규제가 정부 입장에서는 관리의 용이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좋겠지만, 국민에게는 금전적인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늘 그랬듯 각자도생의 시기라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