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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곰 Aug 26. 2023

나는 방학마다 매미 유충이 된다.

땅 속의 매미로서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을까

 날이 남색 빛깔로 어두워져도 매미는 여전히 울고 있다. 매미가 완전히 울음을 멈추었음을 깨닫고 통창을 내다보면 밖은 너무 짙어서 나뭇가지 사이 가닥가닥을 띄어볼  없을 정도가 된다. 이미 어둑해진 저녁을 노래하는  시간의 매미는   마리도 없다. 가끔은 날이 더워 열대야에 기나긴 매미 소리가 울려퍼지곤 한다.  아래에서  10년을, 또는  이상을  자고 먹으며 보낸 매미는 자는 시간이 아까울 법도 하다. 오랜 시간 수련하며 보낸 세월을 나는 이제야 감히 짐작해보려고 한다.


 나의 작은 원룸은  칸의 매미굴과 같다. 바깥에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는 수일 동안 나는 핸드폰과 노트북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한다. 이런 미래가  거라고 예상은 해왔지만 이렇게 평범할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다. 평소 입는 잠옷 같은 옷에 나갈 필요 없는 머리 스타일이 나의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다. 화질이 좋지 않음에 감사하며 교수님께 논문 브리핑을 하고, 짧게나마 안부 인사를 주고 받는다.  논문 아이디어를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위험하다는 조언을 해주신다. 세상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나는 순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방학마다 수도승처럼 밥을 해먹고, 씻고, 운동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이상하게도 나에게 힘을 준다. 외롭다는 생각은 B 떠나고  뒤에나  3 하나,  이후로는 나로 충만한  시간이 편안하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외로울  있는 어떤 불평들이 코로나로 인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한다. 따라서 나도  불평에 남과 비교하지 않고 다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는 단단한 명분 아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쓸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용히 침전하는 시간 사이사이마다 나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PT 받으러  근처 헬스장에 다녀오기도 한다. 때로는 술을 마시고, 저녁을 먹고, 근사한 광어우럭   접시를 먹고, 떠들고, 함께 분노하고, 포커를 치고, 다시 술을 마시고, 은영이네 강아지 광복이가 끊임없이 핥아주는 침을 광복이 털에 다시 묻히고,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나는 노트북으로 매일 20명의 아동문학 선생님들과 동화창작 수업을 들으며 3시간 동안 대화한다. 주로 이현 작가님이 하시는 말씀이 대다수이지만 매일매일 소리내어 말하는   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종종 라디오  인물들과 내가 직접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자기 전에 B 통화를 하다 새벽까지 잠을 설치는 날도 물론 있다.


 혼자 있을 때에도 소리로 가득 차있다. 입추가 지난  한풀 꺾인 여름 더위에 에어컨을 틀기 마뜩찮은 나머지 미니 써큘레이터를 준비했다. 작은 선풍기가 휭휭 돌아가는 소리, 맞은편 밭뙤락 옆으로  공터에  집이 지어지는 소리(그리고 흙먼지), tv 625번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  자락, 종종 옆집에서 들리는  여닫는 소리, 책상에 의자가 끼어 스펀지를 비트는 소리, 의자가 삐걱대는 소리, 노트북 팬이 돌아가는 소리. 되도록이면 나는 노래를 틀지 않으려고 한다.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김겨울이 운영하는 라디오북클럽을 듣는다. 어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이야기에 대해 최민석 작가의 담소를 들었다. 최민석 작가가 자꾸 되도 않는 자기 비하로 웃기려고 해서 마음에  드는데, 김겨울이 굉장히 부드럽고 재미있게 반응을 이어받아서 종종 반성하고 받아들인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쉽게 비하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성하며 듣는다. 좀머 씨가 도망치려고 했던 지겨움, 죽음, 누군가에 따르면 전쟁 후유증.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편은 내가 읽은  듣기 위해서 아껴두고 있다.


 글을 쓰고 보니 나는 감히 매미에 비할 게 못된다. 땅 속의 매미는 이보다 더 적막한 어떤 세월을 견뎠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석사과정을 끝마치면, 운이 좋아 대학원 박사학위를 시작하면, 그리고 박사학위마저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학교로 돌아가서 매년 찾아오는 두 번의 방학을 나는 지금처럼 보낼 수 있을까? 찾아오는 사람 없이 적막한 매 학기를 나는 쓸쓸하지 않게 견딜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 기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채울 것이다. 여행, 연애, 취미, 기타등등.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무슨 일을 할 때 감정이 동요하는지, 내가 지금 기쁜지 슬픈지 화나는지 억울한지 알아차리는 데 오래 걸린다. 그래서 앞으로 천천히 찾아나갈 것에 두려움이 없다. 지난 방학은 이렇게 보낼 걸! 하면서 남과 비교하여 후회하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발짝 해내는 게 즐겁다. 책을 읽고, 밥을 해먹는 수도승 같은 삶에 만족한다.


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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