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고, 또 돌아가고.
글씨를 쓰는 도중에 붓이 부러졌다.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갑자기 끝을 맺게 될 줄은 몰랐다.
아직 끝을 내기에는 아쉬운 붓이지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다른 붓을 꺼내들고
그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나머지를 채워 작품을 이어갔다.
그 이후로는 글을 쓰기 전에 붓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게 되었다.
상한 부분은 없는지,
혹시 곧 헤어짐을 말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붓의 삶도 유한함을 여러 차례 되새겼다.
어느 날 버스 정류소에서 이어폰을 낀 내 옆에, 보청기를 끼고 계신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내 속 이야기에 더 집중하려는 나와, 세상의 이야기를 담으려 하시는 할아버지.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세상의 유한함을 알고,
각자의 방법으로 이 시대를 함께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이 붓과 닮아있다.
아무리 귀한 중산의 토끼털이라 할지라도 그 한 자루의 붓만으로 필력을 키울 수 없을 것이며,
지나간 천 자루의 붓과 열 개의 벼루들이 있었기에 추사체가 완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가올 봄이 아름다울 것이라고 알게 된 건 지나온 그 봄 덕분이다.
빙그레 웃으시며 참 곱구나,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신 할아버지 덕에
나는 조금 더 예쁜 표정을 짓고 싶었다.
푸른 봄, 청춘을 더 깊게 느끼고 싶다면 나를 받치고 있는 흙을 손에 가득 담기도 하고,
싱그러운 봄이 필 수 있도록, 도와준 수많은 지난 봄날에게 따스한 눈인사를 건네 보길.
얄궂은 봄은 붓과 닮아 있어서,
항상 어느 날 갑자기, 끝인사도 없이 헤어지는 게 다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