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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중 이정화 Nov 17. 2019

끝부터 시작까지.

담담하게, 묵묵하게.



나는 언제 글씨를 쓰기 ‘시작’ 하는 걸까?


깨끗하게 닦여져 있는 벼루에 물을 부을 때 ‘시작이다.’ 싶다가도

연당에 고여 있는 물을 먹으로 갈 때, ‘시작이야.’ 하기도 하고,

고운 그 먹물에 새 하얀 붓을 담글 때, ‘그래, 드디어 시작이지.’ 하는데,

하얀 종이에 먹을 머금은 붓이 닿는 그 찰나가 되면 ‘정말 시작이야!’ 하는 생각이 또 든다.    

 

헷갈리는 건 끝도 마찬가지.

종이의 맨 마지막까지 쓰면 ‘끝났다.’ 싶다가도,

이루어진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 나도 모르게 새로운 종이를 한 장 다시 꺼낸다.

액자 옷을 입으러 가기 전까지 여전히 작품들이 ‘시작’되고 ‘끝맺음’ 되어가는 중이다.     



언제부터 시작이며, 어디까지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는 작업을 보면

나의 시작은 누군가에게는 시작이 아닐 수도 있고,

누군가의 끝이, 내가 보기에는 시작일 수도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한줄기 빛과 함께 대단한 시작을 기다리고

장엄한 마지막을 장식하려 하기보다는,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묵묵히 이루어가는 한 장, 한 순간이 더없이 소중한 시간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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