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의미
자판을 치는 일이 좋다. 명확한 게 하나도 없는 세상 속에서 내가 자판을 친 행위와,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 실로 작용한다. 내가 만든 작품, 그 속의 세상이 있다는 건 나를 퍽 기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일은 늘 물음표다. 열 시간의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서 늘 열 시간의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니다. 며칠 밤을 새 공들여 쓴 소설이 공모전 예심에서 탈락할 수도, 가볍게 쓴 시조 한 편이 대상작으로 선정될 수도 있는 것 같이. 글 쓰는 일이 남들이 인정하는 어떤 결과를 받게 되기까지는 상황과 운, 그리고 타이밍이라는 변수가 들어있다. 하지만 불명확하고도 불안정해서 이 분야는 늘 매력적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흐르고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아직까지 아날로그틱한 감성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분야라 더욱 애틋하다. 아직까지 글을 공부하는 내 동기, 선배, 후배, 혹은 문학도 친구들은 신춘 철을 기다리며 매일 밤 작품을 준비하고, 우체국에 가 우표를 붙인 봉투를 접수한다. 몇 번의 밤샘과 퇴고, 그리고 참혹한 합평의 결과로 만들어졌을지 모르는 그 아이들은 고스란히 우체부 아저씨의 트럭에 담긴다.
결과를 기다리는 문학도의 마음은 더욱 아득하다. 비단 '등단'자체가 당장의 부귀영화나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매년 그들은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누군가는 이루지 못할 것이라, 확률이 낮은 배팅이라고도 하지만 그들은 계속 꿈을 꾼다.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교직원, 철도공무원, 대기업 사원, 아르바이트생, 주부 등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지탱할 어떤 직함을 짊어매고 그럼에도 글을 쓴다. 글을 쓰는 행위는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 그들의 삶에서 균형, 혹은 리듬을 유지할 어떠한 흥미, 적성 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계속해서 각인하는 것, 활자로 아우성치는 것 즈음이 될 수 있겠다. 얼마 전 예순이 넘는 나이에 신인상을 받은 분의 수상소감을 읽었다.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라는 문장으로 포문을 연 글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글을 대하는 그분의 마음, 혹은 정성이 느껴져서인지도 모른다. 일평생 글을 쓰며 살 수 있는 삶은 참으로 행운이다.
성성한 나이가 되어서도 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자는 결코 늙지 않는다.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그 혹은 그녀는 주인공이 될 수도, 신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라. 매일 꿈을 꾸며 사는 삶은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늙지 않고 사는 삶은 바로 이런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새 나의 일상은 비슷하다. 비슷함에도 결코 똑같지는 않다. 출근, 퇴근,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들른다. 쓰는 글이 다르기에 매일이 다른 일상으로 채워진다. 생활의 건강한 근육을 길러나가는 것, 그것에 대해 열심히 노력하되 겸허히 결과를 받아 드는 것. 좋아하며 즐길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