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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포그래피 야학 May 14. 2020

05_글줄길이

한 숨 읽기

일러두기

1. 앞의 글들을 우선 읽기를 추천합니다.

2. 본문 안에서 타이포그래피 용어는 띄어 쓰지 않았습니다.

3. 윤문이 되지 않은 글입니다.



¶ 글줄길이

낱글자를 일정한 방향으로 나열한 것을 ‘글줄’이라고 부른다. 글줄은 한 줄에 놓여진 낱글자의 수에 따라서 길이가 정해 지는데 이를 ‘글줄길이(행길이, 행장)’라고 말한다. 한 줄에 놓여진 낱글자 수에 따라서 결정되는 개념이다. 고정된 단너비 안에서 글자 크기에 따라서 글줄길이가 길거나 짧아질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한 줄에 어느 정도의 낱글자 수가 들어가는지로 글줄길이를 판단해야 한다. 이때 한 줄에 들어가는 낱글자의 수를 ‘글줄당 문자 수(행자수)’라고 한다.


적절한 글줄길이는 독자가 글 내용에 집중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가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문용 타이포그래피에서 적절한 글줄길이를 고민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어 만약 한 줄에 들어가는 낱글자 수가 많아져 글줄길이가 너무 길어지면 시선도 계속해서 글줄을 따라 긴 시간 이동한다. 눈동자를 움직여 따라갈 수 있는 글줄길이를 넘어서면, 따라서 고개가 움직이거나 글줄을 따라가기 위해지면을 움직여 시야를 확보한다. 그렇게 다행히 긴 글줄을 읽는 것을 끝내더라도 다음 글줄을 읽기 위해 시선을 다시 글줄머리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긴 글줄을 읽으며 지나온 만큼 다시 글줄머리로 돌아가는 경험은 쉽지 않다. 글줄의 길이만큼 형성된 물리적 시간과 공간이 다음 글줄을 찾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런 과정은 독자에게 글의 내용이 아니라 글을 읽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게 만들고, 집중되었던 독서의 흐름도 끊기게 된다. 이때 새로운 글줄 머리를 찾지 못해 동일한 글줄을 다시 읽는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를 ‘더블링 현상’이라고 한다. 더블링 현상은 글줄길이와 글줄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 발생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 줄에 들어가는 낱글자의 수가 적어지면 어떨까? 글줄길이가 짧으면 사람들은 빈번하게 바뀌는 글줄 탓에 글의 맥락이 자주 끊기는 것을 경험한다. 이때도 독자는 글의 내용에서 자주 벗어나 글을 읽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말을 할 때마다 2~3 단어로 끊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해 보면 쉽다. 글줄길이는 독자에게 글의 흐름을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타이포그래퍼는 항상 디자인 의도와 가독성 등을 고려하여 목적에 적합한 글줄길이를 판단해야 한다.



¶ 본문용 글자크기

가독성을 위한 적절한 글줄길이를 계산하기 전에 우선 본문에서 적당한 글자크기가 어느 정도 인지 알 필요가 있다. 동일한 단너비라고 하더라도 글자 크기에 따라서 글줄길이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글자크기가 본문을 위한 크기인지 알고 있다면 상황에 따라서 대응할 수 있다. 단너비를 조절할 수 없을 때 글자크기를 세밀하게 조절하며 글줄길이를 조절하면 보다 더 나은 가독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용 글자 크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면에서 많이 사용되는 글자 크기를 말한다. 대략 8~12pt 정도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러한 본문용 글자 크기는 매체와의 거리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을 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책이라는 매체는 대략 우리 ‘눈’과 30~35cm 정도 떨어져 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 거리에서 책을 읽는다. 이때 적절한 글자크기가 본문용 크기이다. 만약 매체가 변경된다면 어떨까? 당연히 적절한 가독성을 위한 크기도 그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만약 모바일 화면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적절한 본문용 글자 크기는 사람의 눈과 모바일 화면의 거리를 먼저 고민하면 된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모바일 화면 크기를 기준으로 대략 15~20cm 정도 거리에서 보는데, 지면보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적절한 글자크기는 영향을 받는다. 모바일에서는 대략 6~8pt정도가 본문용 크기로 사용된다.


매체 특징과 매체 크기에 따라서 우리는 보는 거리를 달리한다. 타이포그래퍼들은 언제나 다양한 상황에 동일한 느낌의 가독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글자크기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능력은 월드와이드웹 온라인 환경이 등장하면서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반응형 웹’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양한 매체와 매체 크기에 대응해 웹페이지 디자인이 어떻게 동일한 디자인 태도를 유지하며 변형되는가 하는 부분을 설계하는 것이다. 기술은 변화하고 발전했지만 근본적인 타이포그래피 방식이 바뀐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시각언어는 기술에 변화에 따라서 크게 변화할 것 같지만 근본적 원리와 태도는 역사의 큰 맥락 안에서 공유되고 있다. 또한 꼭 매체와 거리를 고려해서 적절한 글자의 크기 만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타이포그래퍼는 각 매체와 독자의 거리를 강제할 수도 있다. 큰 지면에 작은 글자 크기를 쓰거나 작은 지면에 큰 글자 크기를 이용함으로 해서 독자에게 읽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으로써 문자를 전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타이포그래피에 시각적 의도를 담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의도적인 타이포그래피 표현도 가독성을 위한 본문짜기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그리고 타이포그래피에 있어서 ‘적절함’은 언제나 우리의 누적된 경험에 의한 관습, 생물학적 한계, 심리학적 판단, 사회적 영향이 서로 결합하여 얻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적절함은 역사와 환경, 문화에 의해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글줄길이 또한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한 길이를 유추할 수 있으나, 언제나 의심하고 고민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타이포그래퍼에게 좋은 습관이다. 다만 가독성을 위한 관습적 타이포그래피와 새로움을 모색하여 의도적으로 표현된 타이포그래피 사이에는 언제나 기존 타이포그래피 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각 언어도 문자 언어와 마찬가지로 ‘언어의 가족유사성’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것을 습득하게 되는데, 가족유사성의 핵심은 새로운 언어는 기존의 언어체계에서 그 유사성을 이어받아 형성된다는 개념이다. 타이포그래피의 시각 언어도 관습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이 되어야 새로운 시도를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다.


¶ 전단짜기와 다단짜기의 글줄길이 짜기

우선 가독성 만을 중요하게 여겨 글줄길이를 계산한다면 어떨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컨텐츠는 소설책, 에세이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책은 일반적으로 전단짜기를 주로 사용하는데, 전단짜기는 단을 나누지 않고 한 줄로 짜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전단짜기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적절한 글줄길이를 판단해 볼 수 있다. 한글은 정사각형 활자틀 너비를 기준으로 글줄길이를 결정하는데, 전단짜기를 할 때 활자틀 너비의 25배~35배 정도의 길이를 많이 사용한다. 이때 활자틀 너비를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방형(정사각형) 활자틀의 경우 활자틀 높이(글자 크기)와 같고, 장방형(직사각형) 활자틀을 가진 경우는 조금 번거롭지만 두 개의 동일한 낱글자를 놓고, 커닝값을 조절해 서로 완전히 포개지는 지점의 유니트 값(x/1000)으로 너비의 비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0pt 글자꼴 크기를 갖고 있는 정사각형 활자틀 글자꼴은 활자틀 높이와 너비가 모두 10pt다. 반면 직사각형 활자틀을 갖고 있는 경우 두 개의 동일한 글자가 포개지는 커닝 값이 930/1000이라고 하면, 너비는 높이의 93% 즉 9.3pt가 된다. 이렇게 구해진 너비에 x25~x35 정도를 곱하면 단너비가 정해진다. 이렇게 단너비를 구해서 글줄길이를 짜면 한 줄에 8~10개 정도의 낱말이 들어간다. 이는 우리가 실제 대화를 나눌 때 대략 한 호흡에 이야기할 수 있는 문장의 길이이기 때문에 글의 맥락을 이해하기 쉽다. 또한 고개를 움직이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길이로 한 시선에 담기며, 다음 줄을 찾기 위해 시선이 이동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단을 나누어 짜는 ‘다단짜기’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많은 정보를 한 지면에 담아야 할 때 다단짜기를 사용한다. 다단짜기를 사용하면 다양한 정보를 구분하기는 쉬워지지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단너비는 짧아진다. 그래서 짧은 단너비에 적절한 글줄길이를 유지하기 위해 글자꼴 크기는 본문용 크기에서 가능한 작은 글자크기를 많이 사용한다. 이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글줄길이가 짧아지더라도 활자틀 너비의 15배 이하로 좁아지는 것은 피하는 것이다. 한 줄에 4단어 이상 들어가야 글의 맥락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줄에 4 단어 이상 들어가기 어려운 글줄길이라면 본문용 글자꼴 크기나 적절한 글자사이 및 낱말사이를 벗어나는 타협이 필요하다. 이때 대체로 글자 크기를 작게 하여 글줄길이를 확보하는데, 글자 크기는 독자가 매체와의 거리를 조절해 시각적 크기를 조절할 수 있지만 글줄길이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로로 넓은 판형을 사용해서 글줄길이가 길어지는 경우에도 한 줄에 15단어 이상 들어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너무 긴 글줄길이는 독자가 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가 타이포그래피를 언제나 이상적인 환경에서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전에서 맞이하는 타이포그래피 환경은 언제나 각 타이포그래피를 이루는 요소들의 관계 안에서 타협하여 이루어진 어울림의 결과이다. 또한 이러한 어울림은 다양한 분위기의 타이포그래피 결과물을 만든다.


¶ 정방형(정사각형) 활자틀과 장방형(직사각형) 활자틀

한글 글자꼴은 대체로 같은 비율의 고정된 네모꼴 형태의 활자틀을 사용하는 고정폭 글자꼴이 많다. 이러한 글자꼴은 과거에 정사각형 활자틀을 사용하였다. 이후에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가로짜기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한글꼴 활자틀에도 영향을 주었다. 가로로 읽히면서 글자의 폭이 서서히 줄어 현재는 본문용 글자꼴은 대체로 장방형 활자틀로 출시되고 있다. 장방형 활자틀은 동일한 단너비 안에 더 많은 낱글자를 넣을 수 있게 하며, 글을 읽는 것이 익숙한 독자에게 속도감 있는 독서를 제공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내려짜기를 고려하여 만들어진 ‘한글’이 한 방향으로만 변화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과 일본은 아직도 가로짜기와 내려짜기를 6:4혹은 7:3 정도의 비율을 유지하며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디지털 글자꼴도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준다. 그래서 더욱 한글이 가로짜기만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아쉽다. 만약 여유가 있다면 내려쓰기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작업자가 한글 내려짜기에 대한 고민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한글의 활자틀은 계속 발전하여 최근에는 활자틀이 고정폭이 아닌 가변폭이 적용되어 출시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비’보다는 ‘빼’가 더 넓은 글자폭을 갖는 것이다. 다만 완전한 탈네모꼴 활자틀을 갖고 있는 글자들 처럼 문자에 획에 추가될 때마다 수학적인 면적의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적으로 빼곡한 밀도가 다소 완화될 수 있게 살짝 더 넓은 공간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부분도 같은 폰트 안에서 ‘고정폭’과 ‘가변폭’을 선택하여 각 낱글자 별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 등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한글 타이포그래퍼는 언제나 자신이 이러한 기술변화의 중심에 있음을 인지하고, 스스로 한글을 어떻게 이해하고 변화시켜 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장 어린 글자인 한글은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직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 글줄길이와 글줄사이

글줄길이와 글줄사이는 늘 그렇듯 서로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갖고 있다. 글줄길이가 길어진다면 다음 글줄을 찾는 독자를 위해 글줄사이는 다소 넓어질 필요가 있다. 한 줄에 들어가는 단어의 수가 늘어난다면 이를 고려해 글줄사이를 미세하게 더 넓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독자는 더블링 현상을 최대한 피할 수 있다. 반대로 글줄길이가 짧아지는 경우에는 글줄사이는 다소 좁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줄사이의 흰 공간이 두드러져 문자보다 글줄사이 공간이 더 중요하게 보인다. 이처럼 글줄길이와 글줄사이는 상호 보완의 관계이다. 만약 글줄길이에 따라서 글줄사이를 조절하기 어렵다면, 글줄사이에 영향을 미치는 글자사이나 낱말사이를 조절해 마찬가지로 시각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타이포그래피는 항상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구성되는 얼개의 구조로 완성된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이는 종합적 판단을 요구하며, 이러한 판단은 타이포그래피 요소 하나하나를 훈련해 가면서 얻어질 수 있다. 그리고 탄탄하게 쌓인 기초 안에서 만들어진 글자들 간의 얼개는 새로운 요소를 한 두 가지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분위기의 타이포그래피를 연출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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