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글을 쓴다.
그래서 픽션인 소설을 읽을 때도 가끔은 연설문처럼 작가의 생각과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곤 한다.
나도 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계속 기획을 하고 글을 썼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고 나니 그 일이 시들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를 먹고 나니 어떤 일이건 강하게 주장하게 되지 않았다.
주장이라는 것은 양분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맞고, 저건 틀리다는 식으로, 그러니 이렇게 하자고.
그런데 살다 보니 그땐 맞았던 일이 틀리는 일이 생기고, 틀렸다고 여겼던 그 일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걸 보게 되었다.
점점 생각의 경계가 흐려졌다.
‘아,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맘이 자주 들었다.
분노하는 맘, 답답한 맘도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라는 맘이 그 맘을 덮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하고 싶은 말이, 해야 할 말이 줄었다. 자연히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글은 생각의 깊이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어쩌면 내겐
혈기 왕성한 짧은 생각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