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보경 Feb 19. 2023

40대의 음악

내가 연 2회 기획해 올리는 <세시반 콘서트>는 실내악에 포커스를 두기 때문에 함께 연주할 괜찮은 사람들을 섭외하는 것이 늘 고민이고 일이다. 그래서 생각날 때 틈틈이 한국에 있는 연주자들을 검색해 들어보곤 하는데, 얼마 전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40대 이상의 연주자는 거의 없네!?"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20대, 30대인 것 같다. 내가 유튜브 위주로 찾아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젊은이들처럼 부지런히 소셜미디어 활용을 안 하는 건지 - 40대 연주자는 진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아주 가끔 내 나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긴 한데 이미 악기에서 손 놓은지 오래돼 보이는 상태가 대부분이고 어머 이 사람 누구야, 좋다 싶어서 수소문해 찾아보면 죄다 외국에 살고 있다 ㅠㅠ

(그 와중에 일관성 있는 내 귀를 칭찬...)


좀 심란해졌다. 중견 예술인을 만나기 어려운 한국. 20대, 30대 연주자들은 손가락은 잘 돌아가지만 아무래도 어리다보니 음악적으로 아쉬움이 드는데, 40대 이상은 꾸준히 연습을 해왔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조차 잘 없다. 어렸을 땐 잘 했을 것 같은 '가라'는 느껴지지만 솔직히 지금은 실력보다 사회적인 타이틀로 밀어붙이는 느낌. 수십 년 전 콩쿨 입상 프로필로 위화감을 조성하며 관객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외국에선 이렇게 나이 지긋한 음악가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뭐 대단한 콘서트홀도 아닌 학교 강당이나 동네 교회에서 허름한 정장을 입고 연주하지만 음악만은 너무너무 아름답다.



음악은 무용과 달리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든 연주자가 없는 한국의 현실을 보니 발전이고 자시고 꾸준하게 이 길을 가는 자체만도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얼마 전 학교 오디션 도와주느라 줌(zoom)으로 외국 교수님들을 만났었는데 검소하고 깨끗한 백발의 그분들이 너무 반가웠다. 나이가 들어도 권위의식 없고 순수하게 음악을 하는 모습이 부러워서 '만약 내가 다시 미국에 가면 행복할까?'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생각해 보면 20대는 학교 다니면서 이런저런 프로젝트 할 수 있는 게 많으니 음악 하기가 참 쉽고, 30대는 그래도 에너지가 있어서 스스로 일을 벌여 부지런히 뭔가를 하는데, 40대가 되면 지쳐서 연주를 관두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걸 계속하는 것만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나는 언제까지 음악을 하게 될까? 음악을 계속한다면 나는 어떤 태도/상태의 인간이 되어 있으려나?


나도 뉴욕에서 있었던 20,30대 때와 비교하면 연주의 양은 훨씬 줄었다. 그나마 외국에 나가는 여름, 겨울에나 연습할 게 많지 학기 중에는 예전과 비교하면 한참 널널한데, 연주를 많이 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어릴 땐 배워야 할 곡도 너무 많고 다 잘하고 싶으니까 초조하게 밤 12시까지 연습하고 항상 너무 바빴다. 당시엔 만족스러웠던 연주도 지금 돌이켜보면 기합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젊은 기운에 열심히 한 게 귀엽긴 한데 좀 어린 게 느껴진달까?


40대가 된 이후에는 확실히 피아노 치는데 힘이 빠지고 수월해진 부분이 있다. 악보에서 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같은 내용도 와닿는 바가 다르다. 지금은 삼시 세끼 챙겨 먹을 시간도 있고(너무 먹어 문제지) 여유 있게 곡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니 여러 가지로 퀄리티는 나아졌다고 느낀다. 만약 내가 그만두지 않고 계속한다면 뉴욕에서보다 나은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치만 면학 분위기라고 해야 되나? 음악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환경적 분위기 자체가 조성이 안 되어있어서 혼자 해나가는 게 자신이 없다.




20대 후반쯤이었나? 롤 모델로 삼을만한 선배가 없어서 (특히 내 전공인 반주 분야에는) 내가 한 번 이 길을 스스로 믿는 대로 끝까지 가보자 다짐했던 적이 있다. 본질을 잃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고. 혹시나 나처럼 고민하는 먼 미래의 후배에게 이런 노력이 할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라도 말해줄 수 있도록 말이다. "야, 내가 해봤는데 이거 진짜 아니야, 하지 마"라고라도 얘기해 줄 수 있으면 헛되지 않다, 진리 추구에는 오류 검증도 필요한데 그 오류가 내가 되어보자 했었다.


내가 그런 결심을 했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요즘 세속적인 문제로 마음이 들볶였었는데 오늘 글을 쓰다 보니 정리가 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냥 깔끔하게 내 인생의 목표를 오류 검증으로  삼으면 된다. 나 자신에게 떳떳한 대로 살다 보면 50도 되고 60도 되겠지. 그때 가서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 만족스러웠냐 후회하느냐를 대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



작가의 이전글 음악을 꼭 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