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 바비

영화 바비와 K-페미니즘

by 왜요

영화 바비를 봤다. 이미 개봉하기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바비로 "어떤 페미니즘"을 보여줄 것인지로 관심을 끌었던 영화였으며, 실사화 인어공주의 PC함이 망쳤다는 어떤 분들의 섬세한 동심을 얼마나 돌봐줄 수 있을 것이며 오빠들의 허락을 구할 수 있을 페미니즘 영화가 될 것인가로도 말이 많았던 영화였다. 일단 예고편만으로는 전형적인 바비가 나와 핑크 일색으로 예쁘게 걸 캔 두 애니띵을 외치는 '바비다운' 행보를 보였으니 그 오빠들도 허락을 해주시는 눈치였다. 그러나 개봉과 동시에 여기저기 상처받은 켄들이 등장, 별점 1점이라는 준엄하고도 냉혹한 평가를 내려주셨으니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설마 이 정도 영화에도 저렇게나 상처받는 감수성을 지닌 분들이 많으실 줄은.

그렇지만 바비가 얼만큼의 페미니즘을 얘기했더라도 켄들이 더 높은 별점을 주진 않았을 거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켄들을 위해 페미니즘을 예쁘게 잘라 입 안에 넣어주고 대신 턱까지 움직여줬으나 애초에 삼킬 의지가 없으면 통할 리가 없다.


나는 바비가 개봉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이 영화를 봤다. 즉 영화를 보기 전 이미 바비에 대한 여러 반응을 접했다는 것인데 (켄들의 울음을 제외하면) 대체로 그 반응이 비슷비슷하다는 점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페미니즘을 하더라도 대략 비슷한 평을 하게 되는 페미니즘 영화? 이건 귀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은 이 비슷비슷한 평가로의 수렴이라는 현상이 정말로 기묘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그러니까 바비 개봉일 전후쯤 해서 트위터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는 사악한 혐오집단에 대한 경고성 트윗이 올라왔다. 이 트윗은 이 위험한 인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에 의해 공유되며 퍼져나갔는데,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특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들이 막상 사람을 혼동해 잘못된 정보를 공유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리가 나고 인용이 붙고 싸우고 어쩌구저쩌구...... 한바탕 소동이 이는 와중에도 '일부' 사람들은 이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면서도 잘못 설정되었던 타깃 인물도 깨끗하진 않다는 점이나, 원래의 타깃이었던 사람이 얼마나 사악한지에 대해서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들이 온갖 여성혐오 범죄의 온상지를 폐쇄한 인물이라던가 여성인권을 주 공약으로 세운 정당의 대표라던가 하더라도, 그들의 사악함이 그런 일들쯤은 덮어버릴 만큼 크고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몇 년간 온갖 수준의 여성혐오가 판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목소리를 내자고 말해온 사람들이 '믿고 따르기에 충분히 깨끗하고 흠결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하게 되거나 사라져 갔다. 바비 속 '바비라는 주인공을 충분히 페미니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어린 여성'은 말한다. 여자와 남자의 공통점은 하나.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이 분홍빛 꿈으로 가득한 영화는 결국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가부장제에 잠식당해 버린 바비랜드 앞에 그저 주저앉아 '누군가 리더십 있는 바비가 나타나 자신을 이끌어주길 기다렸던 주인공 바비'에게 나타난 것은 대놓고 '이상한 바비'라고 배척당해 왔던 케이트 맥키넌 바비이다. 이 시점의 바비는 그냥 누군가 자신을 끌어주길 바랐을 뿐임에도 '전형적인 바비'를 미워하지도 않고 기꺼이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분홍 일색의 바비를 아니꼬와하던 어린 여성도 결국은 바비의 편이 되어 검은 옷을 벗어던지고 분홍 옷을 입어 힘을 합친다. 아름다운 페미니즘의 장을 찾던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화합의 장에 박수를 보낸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니?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지 않다니!


영화 바비는 마텔이 페미니즘 시대를 마주하며 부딪힌 자가당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이다. 영화는 여성들에게만 강요되는 여성상을 통렬히 비판하는 한 여성의 외침으로 인해 다른 수많은 여성들이 빨간약이라도 먹은 듯 깨어나 가부장제를 벗어나는 장면을 그린다. 사회비판 연극의 한 장면처럼 이어지는 이 대사 라인 중에는 여성들만이 '리더십이 있으면서도 포용력이 있는' 모습을 강요당한다고 지적하는 부분도 있다. 감명 깊은 대사 라인이다. 그러나 영화 바비가 이런 여성상을 벗어난 여성을 그렸을까? 글쎄올시다. 결국 바비는 배척당했어도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손 내밀며 문제를 해결할 모든 단서와 힌트를 주면서도 리더인체 하지 않는, 거슬리지 않는 어떤 '이상한 바비'의 배포 덕분에 바비랜드를 되찾는다. (물론 주인공 바비나 대통령 바비도 이상한 바비의 공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마지막에는 그에게 사과를 건넨다. 우리의 지난 언행쯤 여자니까 이해해 주길.)

이상한 바비가 주저앉은 다른 바비들을 앞에 두고 잰체를 좀 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강한 여자상'이거나 '사나운 여자'의 모습을 한 선동가였다면? 아니면 그동안 이상한 바비가 단순히 이상하게 생긴 것만이 아니라 다른 바비의 아이스크림을 뺐어 먹었다던가 선량한 켄을 매도했던 바비라면? 그래도 이상한 바비가 사과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 사악한 바비였다면 이 영화가 어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그런 사악한 바비의 말에 '전형적인 바비'가 넘어갔다면? 아마 그랬다면 그레타 거윅마저 사람들의 섬세한 동심을 망친 악당이 되었을 텐데 거윅 감독 자신, 혹은 워너나 마텔 덕분에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으니 영화 <바비>에게는 참 다행인 일이다.


요즘 인터넷 댓글창이나 트위터는 2015년이나 2018년의 인터넷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 야만적인 일이고 너무 사나운 여자들이 여자들을 죄책감과 거북함, 불편함이라는 삼중고에 빠트리고 있다는 그런 시대가 다시 온 것 같다. 15년도와 18년도를 함께 했던 '이상한 바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 바비들은 이상할 뿐만이 아니라 사악하고 나쁜 바비들이었고 이제는 그 몇몇 잔당들의 사악함을 종종 환기시키는 일이면 충분하다. 다만 지금은 가부장제의 사회에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이끌어줄 만한, 야만적이지 않은 페미니즘을 하는 리더십 있는 바비가 필요한 순간이다. K-바비랜드가 도래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