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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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인도, 터키, 중국, 태국, 대만 등을 거치고 나서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니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유럽 땅을 밟아보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나의 20대는 무엇을 하였는가! 남들 다 가는 유럽 배낭여행도 안 가고! (그 대신 남들이 안 가는 인도와 터키를 다녀왔지만.)
어디를 갈까? 이 다섯 글자를 말하는 그 짧은 고민의 순간에 수많은 유럽의 국가 중에서 바로 그 순간 떠오른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에펠탑의 나라! 오롯이 파리만을 즐기겠단 생각에 설날 연휴에 연차를 붙이고 붙여 예쁜 2주의 휴가 기간을 만들어 냈고, 서울 - 프랑크푸르트 - 파리를 왕복하는 루프트한자 항공권을 발권했다. 나는 철저히 스케줄표를 계획하는 여행자가 아니다. 발권하면 그냥 여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과거의 여행이 너무 다이내믹해서 그런 건가. 첫날 숙소를 정해야 하는 건 여행의 기본 중의 기본인데. 다음 날 브뤼셀 숙소와 벨기에 이후 파리에서의 한인 만박은 예약하고 정작 도착한 첫날은 아무 예약이 없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첫날 파리에 밤에 도착해서 어떻게 되겠지, 마지막 기차를 타면 브뤼셀에 가는데. 가서 물어보자. 안되면 야간 버스 타지 뭐. 나는 심카드도 샀는데. 란 안일한 생각으로 모두의 무사 여행을 기원하는 인사를 받으며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나쁜 운이 찾아오면 어떤 도움도 들리지 않는다고. 내가 그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할 때까지만 해도 잘 터지는 심카드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귀신같이 터지지 않았고, 그렇게 외국인들에게 길을 잘 묻고 말도 잘 거는 활발한 성격은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밤 9시, 뛰면 탈 수 있을 것 같은 기차는 탈 생각도 하지도 않고, 돈을 아끼기 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야간 버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당시 (전) 남자 친구에게 심카드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야간 버스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동생이 한인민박에 가서 하루 묵고 다음 날 벨기에에 가라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공항에서 터지지 않는 심카드는 메가버스라는 심야버스를 알아볼 때와 그 당시 (전) 남자 친구에게 연락할 때만 터졌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야간 버스표를 발권하고 메가버스 정류장 찾아 헤매다 검색할 당시 글이 써진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누군가의 정류장 방문 후기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어리버리한 태도로 지하철로 간 나는 지하철역에서 만난 파리 훈남 (그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정말 잘생겼었다는 것만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의 도움으로 지하철을 타고 정말 다행히, 그리고 무사히, 그 무섭다는 파리 지하철에서 초짜 냄새를 풍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털리지 않고 럭키걸을 외치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여긴 누가 봐도 버스정류장이고, 버스가 있고, 심지어 (전) 남자 친구가 발권해준 버스와 똑같은 출발, 도착시간의 브뤼셀행 버스가 있었다.
버스 출발까지는 2시간이 남았고, 나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아무 말 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버스 출발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줄 서 있던 버스 중 한 대가 출발하자 그때서야 갑자기 여기 메가버스 정류장이 맞냐고 바로 옆에 서있던 중국인 커플에게 물어봤다. 그들은 당연히 모른다고 했고, 퓨즈가 나가기 직전의 상태가 된 나는 직원 같아 보이는 사람을 찾아 헤맸다. 직원이 아니었지만 영어를 할 줄 알았던 한 청년이 메가버스 정류장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시계를 보더니 빨리 가야 할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 나는 왜 그곳에서 2시간을 기다렸을까? 왜 여기가 메가버스 타는 곳이냐고 물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왜 내 심카드는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왜 내 (전) 남자 친구는 표만 끊어주고 장소는 제대로 찍어주지 않았던 것일까.
왜라고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기엔 버스 출발시간까지 너무 촉박했다.
바로 앞에 있는 아무 택시나 잡아서 메가버스 스테이션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그 택시기사는 영어를 할 줄 알았고 다급하게 외치는 나를 보고 천연덕스럽게 파리 여행 온 거냐고 물었다. 긴장감이 다소 풀렸던 건가? 정말 소중히 메고 있던 백팩을 잠시 내 옆자리에 뒀다. 미터기도 오르고 유로도 오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브뤼셀로 가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왜 그랬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 순간에 브뤼셀에 가지 않고 한인민박에 갈 수도 있었는데. 모르겠다.
택시기사는 여기라고 하며 트렁크에서 친절하게 캐리어를 내려주고 난 금액을 지불하고 캐리어를 끌고 미친 듯이 버스로 달려갔다. 와, 지금 떠나가고 있는 저 버스를 잡아야 한다. 버스 문을 두들기고 버스 기사가 러키 걸이라며 이제 출발한다고 말했다. 휴 맞아 난 럭키걸이야! 대답하며 안도하고 어디에 앉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뿔싸, 그때서야 내 백팩이 생각났다.
내 여권, 내 2000유로, 내 카메라, 내 가방. 그 외 수많은 내 물품들.
거의 울기 직전의 목소리로 버스 기사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 하고 정말 미친 듯이 달려갔다.
버스 기사는 무슨 일이냐고 빨리 오라고 했고, 안에 불평하는 승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택시는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캐리어는 이미 버스에 실었다.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터덜터덜 버스로 되돌아갔다.
버스 기사가 이제 가도 되냐고, 얼굴을 보고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이가 없어 눈물도 나지 않는 상태로 벨기에 브뤼셀로 가는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것이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진실로 말하지 않았던 나의 첫 번째 파리의 첫 번째 날이다.
* 본 글은 98% 실화를 바탕으로 한 2%의 픽션입니다. 기억은 왜곡될 수 있으니까요 *
* 꺼내기 싫은 기억을 누군가에게 진실로 쏟아붓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것이 제가 바로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