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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 Jun 15. 2023

모든 걸 실패했지만  결국 주인공이 된 2인자

가십걸 내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 블레어 월도프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미국 드라마 ‘가십걸(Gossip Girl)’은 미국 상류층의 부유한 생활과 화려한 패션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유명한 ‘돌려 사귀기’가 난무하는 하이틴 로맨스 작품이다.

가십걸 블레어와 세레나

가십걸의 주인공 ‘세레나’는 부유한 집안에서 아름다운 금발, 섹시한 몸매, 만인에게 쉽게 호감을 사는 태생적인 매력을 타고난, 그야말로 남부러울 게 없는 캐릭터이다. 반면 세레나의 절친 ‘블레어’는 늘 갖은 술수를 써서라도 세레나를 이기고 싶어 하지만 단 한 번도 세레나를 이겨본 적 없는 안타까운 2인자 캐릭터이다. 하지만 가십걸의 등장인물 평가를 찾아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블레어는 가십걸에서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이자 가장 상징적(iconic)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가십걸의 마지막 시즌인 시즌6은 주인공이 세레나에서 블레어로 바뀌었다고 봐도 좋을 만큼 모든 서사가 블레어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는 더 이상 세레나의 행보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레나는 시즌6까지 시종일관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며 사랑 타령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블레어는 행보는 어땠을까.


블레어는 시즌6에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브랜드 런칭에 성공한다. 블레어는 항상 세레나의 빛에 가려져 자신이 이길 길은 더러운 계략뿐이라고 여겨 남을 협박하고 술수를 써왔는데, 이는 오로지 그녀가 갈고닦은 실력으로 만들어낸 찬란한 성공이었다. 블레어가 자신에게도 재능이 있다고 믿는 최초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블레어는 이전 시즌 내내 성공에 가까운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계획과 목표는 늘 실패했다.

시즌1에서 블레어의 첫사랑은 그와 세레나와 바람을 피우면서 산산조각 난다. 게다가 학창 시절 군주로 군림하고 싶었던 그녀는 세레나가 맘만 먹으면 바로 왕좌를 반납해야 하는 초라한 2인자에 불과했다. 시즌2에선 그토록 원하던 예일대학교에 불합격하고 만다. 그때까지 올 A+을 유지하던 블레어와는 달리, 세레나는 아무런 학업적 성취와 노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세로 인해 예일대학교에 최종합격한다. 시즌3에서는 원치 않는 대학교에 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시즌4에서는 유명 잡지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자신의 천직을 찾았다 생각하지만 결국 감당하지 못 일을 관두게 된다. 시즌5에서는 모나코 왕자님 ‘루이’을 만나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여왕이 될 수 있었으나 결국 결혼식 전날 도망친다.

그리고 드디어 시즌6에서 그녀가 바라던 사랑도, 커리어도 모두 이뤄내고 만다.


극 중에서 블레어는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결말을 알고 있는 게 좋아서’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블레어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 계획도 항상 정해두고 시작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블레어는 그 모든 것에 실패한다. 그레이스 켈리처럼 왕비가 되는 꿈, 예일대학교 입학 등 그녀의 목표는 모두 산산조각 나고,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교내에서 최악의 평판을 가진 바람둥이 ‘척 베스’와 사랑에 빠지고, 그토록 원하던 예일대학교에 불합격하여 다른 대학에 가야만 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일생일대 바라던 기회가 저절로 걸어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모나코 왕국의 왕자 ‘루이’가 블레어에게 청혼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블레어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를 깨닫고 만다. 결국 블레어는 루이와의 결혼식에서 도망치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데 한걸음 내딛는다.


수많은 실패에서 블레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장점을 발견해 나간다. 블레어는 결코 만인에게 사랑받고 미소 한 번에 모든 남자들이 녹아내리게 만들며 태생적으로 타고난 잇걸 세레나처럼 될 수 없지만, 블레어 그녀 자신은 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힘이 뭔지 깨닫고 그걸 패션 브랜드에 녹여냈고, 이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이, 오로지 그녀만이 쌓아낼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다.


어릴 적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 바라던, 꿈꾸는 결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그때 정했던 결말을 쫓는다는 게 쉽지 않다. 내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일이 뜻대로 흐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게 주어지고, 모든 게 완벽한 주인공처럼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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