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숙의 『10월 항쟁』을 읽고
학부 2년, 한국정치론 수업 당시
Keyword : 2020년의 난춘과 1946년의 난추, 시시포스의 마음, 사마리아인, 김연수
2020년의 봄은 난춘(亂春)이었다. 어디선가 등장한 괴질이 세계를 삼킨 어지러운 봄이었다. 그렇다면, 1946년 10월의 대구는 난추(亂秋)였으리라. 어지러웠던 그 때의 가을하늘을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새로이 등장한 흰 피부의 군인들은 일제를 두둔했고, 밥 한 숟가락을 채울 쌀은 없었다. 콜레라는 창궐했고, 바뀐 줄만 알았던 세상을 향해서는 다시금 친일세력들이 걸어 들어왔다.
46년의 그날, 높아진 가을하늘의 천장을 총소리가 메워냈다. 모인 인파 속의 몇몇이 쓰러졌고 대오는 와해되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과 피를 흘리는 사람, 쫓아가는 구둣발과 달려나가는 맨발. 그렇게 '항쟁'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뾰족해진 민심이 그들의 아우성으로, 결연한 발걸음으로 대신 대구역 광장에 나타났다. '집약'이라는 말은 추후의 '폭발'을 전제한다. 그러한 생리를 아주 명백하게 보여준 경우였다.
10월 항쟁은 처해있는 현실과 하루가 다르게 조여 오는 압박 속에서 진행된 항거였다. 그들이 가진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그 누구도 구호를 외치고 싶어 외치는 자 없었고, 겨눠지는 총구 앞에서 두렵지 않은 자는 없었다. 허나 집에 있는 식구가 오늘 저녁을 못 버텨내는 모습을 보는 게 더욱 두려울 뿐이었으며, 이는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그들에게 굳이 '두려움의 우선순위'를 매겨보라 하면 그런 것이었다.
저자인 김상숙은 10월 항쟁에 대한 조사와 서술과정을 9년 동안 지속해왔으며, 현재 항쟁이 일어난 지는 70년을 넘어섰다. 세상은 발전을 거듭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은 '만인의 성장과 발전의 모델'이 되었고, 서울에서는 한강을 따라 빌딩숲이 지어졌다. 세계가 감탄을 자아내는 나라가 되었던 적도, 새로운 세계사의 순간을 만들어낸 적도 있는 그런 나라로써 커나갔다.
우리가 지나온 길에는 흉터가 있었고,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다. 우리들은 그러한 것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살아왔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봤어도 모르는 척. '착한 사마리아인'이지 못했던 적도 많았다. 우리들은 일정한 궤도에 들어섰다. 이제는 돌아온 길들에 대한 작업들이 필요한 때이다. 그저 빠르게 달려왔던 길을 찬찬히 손으로 담을 짚어가며 되돌아가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시내의 뒷길에는 아직도 그날의 외침이 서려있고, 경대 의대 건너편에는 시체를 싣고 가던 수레가 아른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 하나 제자리에 돌려두지 못했다. 10월 항쟁. 초기에는 입 밖으로는 꺼내선 안 되는 말들이었으며, 현대로 오는 길목에서는 끊임없이 낮추어지고, 폄훼당하던 우리들의 '역사'였다.
이 당시 연루되어 투옥되었던 이들은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광야로, 코발트 광산으로, 컴컴한 야산으로 끌려갔다. 그렇게 아버지가 사라졌고, 누이가 사라졌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차마 꺼내기 힘들어 가슴에 묻었고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갔다. 대구와 대한민국의 언저리 곳곳에 비극의 좌표가 찍혀있다. 유가족들은 '시시포스의 마음'으로 살아왔다. 온몸을 소진해서 알리고 외쳐도 제 자리였다. 내 아비가, 내 아우가 까매진 손톱 물어뜯으며 생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고만 생각하면 그들의 울대가 떨렸다. 비극들은 자꾸만 다른 비극들을 불러내왔다.
금기시되는 것들을 응시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 사회이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는 단순히 어떠한 일을 해내기 위한 새로운 마음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떳떳한 세대로 살아가기 위한 굳은 결기였다. 이제는 이 땅 위의 사람들이 그 굳은 '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는 때가 도래하였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가창골에서는 그들의 넋을 위로한다.
2010년,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0월의 그 날을 '사건'으로 명명했다. 10월이라는 말 뒤에 단 두 글자가 덧달리는 일을 이루어내기까지 수많은 굴곡이 있었다. 그 굴곡들은 밀려오는 파도만큼이나 끊이질 않았으며, 갈수록 파고가 높아졌다. 홋줄을 묶어볼 수도 없었다. 선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묵묵하게 버텨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우리들의 종착점은 아니다.
누군가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 라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자신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김춘수 (1922-2004),「꽃」 中 그렇다. 이름을 정확하게 붙이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1946년 10월, 대구에서 벌어진 일들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서 인식해야 한다는 의지의 일종으로써라도 '성장된 명명(命名)'이 필요하다. 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아직도 대구가 가진 역사 곳곳에 '멍자국'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무언가를 과장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진실로 바로잡자는 이야기이다.
날은 더워지는데 인간들의 마음은 자꾸만 얼어붙는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를 사랑해야한다. 스스로를 다독거려야 한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그 날의 기억을 드러내고 있는 아픔들을 차근차근 다독거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얼어붙고 굳는다. 그렇게 잊혀진다. 잊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했다. 잊을 수 있기 때문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잡아야 하는 기억들을 두고서 우리는 무작정 잊어낼 수는 없다. 역사는 망각하지 않는다.
여섯 살 배기 아이는 서러움이 북받치면 꺼이꺼이 울음을 쏟아낸다. 그렇게 한 움큼 쏟아내고 나서는 다시 벽돌놀이를 하러간다. 나름대로의 '일상의 유지보수'를 위한 재정리과정이다. 지나간 역사의 기억들은 시원하게 울음을 쏟아낼 수도 없다. 그저 흘러간다. 우리가 대신 울어주어야 하고 보듬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간명하게 진실을 향해야 된다. 더하거나 빼지도 말고 그 날의 기억들을 찾아나가야만 한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속 한 구절이다.
「10월 항쟁」을 읽으면서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어찌나 따끔거리면서 생각나는 문장이 있었는데 바로 저것이었다. 문장 속 대상을 청춘 대신 '바로잡지 못한 역사'라고 대입해도 문장이 꼭 맞는다. 우리는 아직 진실의 빛을 등지고 그림자 안에 갇혀있다.
언제쯤 부서지는 햇살 밑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남겨진 우리들의 순간과 미래에 다시금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 10월 항쟁의 해원(解冤)과 바로잡음을 위해서는 일인(一人)의 빠른 천 걸음보다도 천인(千人)의 느리더라도 나아가는 한 걸음이 필요한 순간이다. 우리 모두가 의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