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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uk Kim Sep 18. 2020

무해한 조직 만들기 1

불분명함과 다양성 사이에서

마음이 맞는 주변 사람들을 모아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그룹'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 여기저기서 생겨나는 프로젝트 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문득 든 발상이긴 했지만 그냥 저버리기에는 여운이 자꾸만 남아서 작게나마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공통된 주제로 묶인 것도 아니었고, 각자의 ‘고유성(Endemism)’을 직업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것도 아니었다. 



Shown the Endemism, SciELO


재단의 출범, ‘뉴-커뮤니티’의 등장, 계추의 형성 등 수많은 조직이 탄생하고, 소속되는 분류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 중에서 마땅히 속하는구나 싶은 것이 없었다.



소박한 시작과 소박한 운영. 나는 일반적인 대학생이었고, 초반 팀원들은 아마도 같은 스무 살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해보고 싶은 사이드 프로젝트들이 있었고, 사회 속에서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같이 해나가는 그룹이면 충분했다. 




좋게 말하면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조직, 나쁘게 말하면 ‘불분명함’이 가득한 조직이 될 예정인 건 뻔했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 내가 만드려는 조직의 정체성이 있는 듯이 보였다. 요즘 흔히 보이는 디자이너들의 모임, 프로그래머들의 모임과는 달랐고, 굳이 따지자면 ‘대학 연합 기획 동아리’에 가까워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프로세스가 조금은 달랐다. 그리고 그러한 단체들과 진정으로 유사한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성장이 이루어진 후, 조직의 ‘견고함(Solidity)’을 비교해보아야 하는데, 만들기 전에 정의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020.03.12, HIPHOPLE INTERVIEW


LE : 크루의 움직임과 방향성에 있어서, DPR 라이브가 주요 플레이어로서 가지는 비중은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DPR LIVE : 처음 시작할 때는 다 조마조마하잖아요. 처음에는 저의 음악을 멤버들에게 들려줬을 때 충돌이 많았어요. 다 시작부터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음악적인 것만 이야기하자면, 제가 만드는 음악이 저의 진심에서 나오는 거니까 멤버들이 저의 아이디어들이나 컨셉들을 믿어주죠. 제가 얼마만큼 만들어오면, 멤버들이 믿어주고 같이 너무 좋아해 주고 150%를 완성해주는 거죠. 그 과정에서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LE : 예술에 관한 확실한 신념이 드러나는 답변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DPR이 추구하는 예술, 혹은 구현하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DPR LIVE : 어렵네요. 저희 모두가 동의하는 건, 어쨌든 질이 좋은 작품인 거 같아요. 타협 안 하고. 그냥 저희의 상상력이 억압받지 않고 그대로 표현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 같아요. 어떤 예술을 추구하냐는 질문이 왜 어렵냐면, 그때마다 하는 상상이 다르잖아요. 그때마다 펼치고 싶은 그림이 다른데, 항상 퀄리티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자부심 있을 만한 것들을 만드는 게 포인트인 것 같아요. 어떤 거든.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한 인터뷰의 한 부분이다. 그가 속해있는 크루이자 레이블의 모습들은 내가 원하는 조직의 이상향이기도 했고, 시도뿐만 아니라 결과에도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 무엇보다 와닿았다. 의미있는 시도가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단순히 ‘해보는 것에 의미를 둔다’ 식의 시도들이 계속되는 것만큼 가혹한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표현하지만, 자부심 있을만한 것들을 만든다”고 하는 그의 말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좌충우돌 모험기’를 피하겠다는 각오를 하고있지도 않았거니와, 그렇게 흘러가도 큰 상관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팀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친목모임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 또한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조직들이 있지만, 각자가 흘러가는 방식이 있었다. 내가 만드려는 이 조직은 어쨌거나 최소한의 존재이유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다음 작업은 이 ‘불분명한’ 그룹을 최대한 구체화 시켜보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시는 ‘아우트라인(Outline)’을 잡아보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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