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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Feb 13. 2024

[Jazz] 나는 어쩌다 재즈를 듣게 됐나

그리고 Chet Baker(쳇 베이커)

재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재즈에 대해 잘 알아서가 아니라,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재즈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서. 내가 왜 좋아하고, 뭘 듣는지, 어떻게 다른지 말해주고 싶은 거다. 한마디로 아는 척을 쫌 하고 싶다. (난 이런 성미다 커피를 좋아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그런.) 내가 재즈라는 단어를 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럴싸한 입문 계기가 있을 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피터캣>이라는 재즈바를 운영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클래식과 재즈에 조예가 깊은 주인공들이 음악을 듣거나,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책 속에서 실제 음악이 자주 언급된다. 재즈나 클래식이 아니지만, 내가 비틀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이다. 아무튼, 하루키를 통해 재즈나 클래식을 만났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작품 속에 음악이 많이 등장하는데, 과연 그 음악들을 들어보는 게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음악을 느끼는 것과 작품을 해석하는 데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렇다면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해당 음악들을 들어봐야 될까? 음악이 어떤 장치로 역할을 했다면 나처럼 음악에 무지한 독자에게는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만 막연히 했다.


그러다가 뜻밖의 계기로 재즈를 듣기 시작했다. 그때는 연인과 막 헤어진 가을 무렵이었다. 그가 남기고 간 플레이리스트는 그의 취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가 듣는 음악이 곧 내 취향이 되는 시절이 막 끝난 것이다. 좋은 노래를 찾았다며 에어팟을 한쪽씩 나눠 끼며 듣던 노래들은 다시 들을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U2의 With Or Without You를 다시 듣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플레이리스트를 전부 지웠다. 그 후 알고리즘이 선곡해 준 노래들은 이전의 플레이리스트를 기억해서인지 자꾸만 비슷한 류의 음악들을 추천해 줬다. 자꾸만 그가 떠올랐다. 모든 노래 가사가 내 이야기 같다. 지하철을 타다가도 눈물이 주르륵. 왜 하필이면 그가 좋아했던 음악들은 이별을 노래하고,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지. 아예 다른 취향의 플레이리스트를 꾸려야 했다. 이번에는 top 100 팝송이다. 앤 마리(Anne marie), 두아 리파(Dua Lipa), Maroon 5, 트로이시반(Troye Sivan) 같은 노래를 들었다. (Billie Eilish는 안됨) 


그러나 밝은 노래를 듣는다고 해서 내 기분도 같이 업되진 않았다. 아무리 밝은 가사래도 가사의 한 꼬투리에 꽂히면 추억에 빠지고, 우울감에 빠졌다. 그냥 너무 울어 버리고 싶은 핑계에 음악이 밝아도 울고, 슬퍼도 울고, 사랑스러워도 울고 뭐 그랬다. 가사가 들리면 안 되고, 너무 감성적이어도 안되고, 또 너무 신나는 건 억지스러워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검색한 키워드가 '카페 플레이리스트'였다. 가사 없고 적당히 잔잔하고 신경을 거슬릴 만한 요소는 없지만 내 적막을 채워 줄 수 있는 그런 음악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이름 모를 클래식과 재즈들을 접하게 됐던 거 같다. 클래식보다는 재즈 쪽이 좀 더 듣기 편해서 '카페 재즈 플레이리스트'로 검색 키워드를 변경해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 처음 알게 된 Jazz 뮤지션이 Chet Baker(이하 쳇 베이커)다. 특별히 쳇 베이커를 접한 계기는 생각나지 않는다. 독립해 내 공간을 꾸미게 되면서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턴테이블을 장만하게 됐는데, 어떤 LP를 갖출까 찾아보다가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았을까. <Chet Baker Sings> 앨범이 (아마도 추측컨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마침 올해가 앨범 녹음 및 발매 70주년(1954년 2월 15일에 녹음을 했다)이라고 한다. 나는 정식 앨범이 아니라, 그의 다른 Sings까지 수록한 총 3장으로 된 앨범을 가지고 있는데,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 쳇 베이커의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그가 불렀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트럼펫 연주자고, 곡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너무나 가녀리고 여성스러웠기 때문에 당연히 쳇 베이커의 연주에 여성 보컬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 보컬리스트가 누구인지 찾아봤는데, 쳇 베이커 그가 부른 거였다.



어떤 연유에서 트럼펫 연주자가 노래를 부르게 된 건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약물 중독과 복잡한 사생활, 그리고 다른 트럼펫 연주자들에 대한 자격지심 등으로 불안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긴 미세하게 떨리고 불안정하지만, 서정적이고 가녀린 음색에 여성 팬들에게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잘생긴 백인(당시 잘 나가는 트럼펫 연주자들은 대부분 흑인(클리포드 브라운,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들이었다.)어서 과대평가받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할 만하다. 그의 사진을 보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데, 흑백사진을 뚫고서 나오는 그의 미소년 같이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그의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빠진 앞니가 묘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워낙 유명한 곡들이 많아서 영화 OST로도 종종 삽입된다. 그중 영화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에 나온 My Funny Valentine(주인공 맷 데이먼 Matt Damon이 불렀다), 그리고 우디 앨런의 <A Rainy Day in New York>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직접 부른 Everything Happens to Me가 특히 좋다. 선곡 만으로도 영화를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노래를 불렀지만, 쳇 베이커의 원곡도 꼭 들어봐야 한다. 


그렇게 쳇 베이커의 음악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Born To Be Blue(본투비블루)>를 추천한다. 영화는 실제의 삶과 다른 설정이 다수 있어 그의 삶을 왜곡(미화)했다는 평가도 있긴 하지만 쳇 베이커를 분한 에단 호크의 연기가 환상적이다. 작품 속에서 에단 호크가 직접 노래했던 I Fall In Love Too Easily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영화 <본투비블루>를 보기 전에도 그가 심각한 약물중독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 예술가를 평가할 순 없겠지만, 부적절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얄팍한 윤리관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던 거다. 그 당시 (50-60년 대) 예술가 중 약물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만연했던 것 같다. 그중에는 예술가로서의 고뇌, 그리고 해방구로써 찾은 마약, 그리고 또다시 마약으로 타락한 모습이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쳇 베이커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 선언한다면, 대부분의 Jazz음악을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나는 여전히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약물 중독에 파리한 삶을 산 그가 남긴 유산 같은 그의 음악은 너무나 아름답다. 어쩌면 이중잣대를 들이밀어 누군가의 예술은 소비하지 않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르겠지만, 쳇 베이커에게만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거 같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비판받을 수 있겠지만, 그의 음악만큼은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외면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해서 그의 음악을 들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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