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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n 21. 2023

내 꿈을 누군가 응원하고 있을지도

내 꿈은 혼자 이룬 게 아니구나.

고상한 취미

아이 낳고 허리가 아파 시작한 운동이 발레다. 우아한 몸짓일 것 같은 취미를 막상 마주하니 노동이 따로 없다. 겉으로 보기엔 예쁜 발레튜튜를 입고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춤을 추는 게 발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첫날 운동 갔다 온 후 완전히 무너졌다. 웬만한 운동을 해도 땀이 나지 않는 내 얼굴과 등짝은 82도 불가마에서 금방 나온 것처럼 땀으로 목욕을 했다.


언제면 그 뾰족한 발레슈즈에 내 발가락을 욱여넣고 콩콩 뛰어다닐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허리 힘 발목 힘이 길러지지 않고는 올라서는 순간 발목이 '똑'하고 부러질지 모른단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취미 발레.


그래도 그 시간이 좋았던 건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같이 듣던 뽀로로와 동요를 듣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어서다. 그냥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만으로도 나는 차분해졌고 아침에 정신없이 어린이집 버스에 태워 보낸 아이를

잠깐 잊고 내 몸에만 집중했던 시간이다.


끝이 없어 보였던 육아도 내 시간이 생기며 조금씩 숨이 쉬어졌고 같은 운동을 하며 마주한 동료들과 육아 얘기가 아닌 발레 동작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나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8년쯤 흘러 같은 공간에서 같이 늙어가며 이제는 뾰족한 토슈즈에 발가락을 욱여넣고 콩콩 뛰며 발레를 한다.


몇 년 전 수업이 끝나고 발레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하던 우리는 지금은 국립발레단 연습생처럼 각자 운동이 끝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아졌다. 


주부들의 근황토크


오랜만에 각자 생활이 있어서 완전체로 모이기가 쉽지 않았던 발레반 모임을 했다.

연습실을 주 1회 대여해 놓고 오며 가며 올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운동도 하고 수다도 떠는 모임이다. 


"이번달 다 같이 날 정해서 한번 보자" (주선자)


연습실 대여를 맡아서 하는 언니가 짧고 굵게 한마디 했다. 여러 날 중에 투표를 통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날 함께 하게 되었다.


"요즘 어찌들 지냈는지 근황토크 해봅시다."(주선자)


"네? 하하하 무슨 ~~ 그냥 다들 지내는 거지... 언니 꼭 MC 같다."(언니 1)


"아니 그래도 그간 소소하게나마 어떻게 지내는지 알면 응원도 하고 좋지."(주선자)


다른 학원에서 운동하다 발가락 골절을 당해 깁스를 하고 온 언니의 사연부터 두 번째 코로나 감염으로 얼굴이 쏙 빠져서 온 동생. 이사 갈 준비로 집 구하러 다닌다는 언니사연...


이런저런 근황을 얘기했다.


"에구 얼른 나아야겠네. 많이 불편하겠다. 조심조심 걷고..."(언니 2)


"코로나를 또 걸렸어? 심하게 아팠나 보다. 잘 먹어야 해. 면역이 우리 나이엔 중요해."(언니 3)


"이사 갈 집은 구하기 힘들지? 그래도 이사는 안 가면 좋겠지만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것도 축하해 줘야지 그래도 가기 전까지 자주 얼굴 보자."(언니 4)


응원과 위로가 오가니 정말 내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 주는 관계를 나이 들어 만나기가 힘든데 참 감사하다.


"은이는 요즘 강연 다닌다며 엄청 대단하다. 준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아기 키우며 책 쓰는 것도 힘든데 축하해."(주선자와 언니들)


힘이 되는 말이다. 그러다 모임의 주선자 언니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기 그거 알아? 4년 전쯤 예전에 같이 운동 끝나고 우리 자주 가던 카페 있잖아? 거기서 앞으로 애 키우고 나면  뭐 하며 지내고 싶은지 얘기할 때 자기가 그랬어. 책을 꼭 한 권 쓰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강연을 하고 싶다고. 자기 정말 열심히 해서 꿈을 이뤘네"


"제가요? 진짜요? 저는 마음속으로 저만 그 꿈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게 별 얘길 다 했네요."(나)


"아유~ 아니야. 그래서 항상 자기 보면 작가가 꿈인 동생. 이런 생각을 했었어."(주선자)


"그래 자꾸 남들에게 이야기해요 돼. 그래야 이뤄진다잖아. 우리도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 계속 말하며 지내자고."(언니 1,2,3,4)


오십넘어 꾸는 꿈들


마흔이 넘어 전업주부인 아줌마가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와 전혀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누군가 기억해 주었고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뒤돌아보니 그 꿈이 내 직업이 되어있다.


마치 내 꿈을 누군가 다 함께 이루어준 느낌이다. 그것도 꿈을 접을만한 마흔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꿈을 꾸었다.


앉아서 각자 싸 온 커피며 빵, 과자 등 간식을 먹으며 두 바퀴 턴을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할 수 있는지




턴의 스폿연습은 어찌하는지, 나이 들어 골반이 말리면서 턴아웃 각도가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로 다시 한번 평균 55세의 나이로 발레에 열정을 쏟았다.


그리고,

각자 오십에 이루고 싶은 꿈을 하나씩 그리며 연습실을 나왔다.


나도 누군가의 꿈을 기억하고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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