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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l 11. 2023

베트남의 신호보다 더 확실한 신호  경적소리

시속 40Km 속도라니

여행을 하며 느끼는 것들은 사람마다 다르다.

신랑과 나는 여러모로 생각이 비슷해서인지 같은 공간, 같은 경험을 하면 대부분 서로 공감이 가는 말들을 하게 된다.


얼마 전 가족여행으로 갔던 베트남에서 느꼈던 것들도 비슷했다.

우리가 느꼈던 베트남 사람들은 잘 웃고 밝았다. 그리고 급하지 않고 느긋하다는 거다.

베트남에서 이용한 그랩이라는 택시는 카카오택시처럼 목적지를 입력하고 콜을 하면 근처에 있는 기사가 온다.


한국에서는 가까운 거리는 좀처럼 카카오택시 잡기가 힘들다. 우리 집에서 스타필드까지의 거리는 애매하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20분남짓 거리지만 더운 여름이나 연세가 있는 엄마와 함께 걷기는 힘든 거리다.

신랑이 차를 쓰고 차가 없을 때, 그때마다 카카오택시를 부르면 잘 잡히지 않아서 불편하다.


반면에 제주에 가기 위해 김포공항을 목적지로 하면 1,2분 사이에 바로 잡힌다. 그런데 반해 베트남에서는 기본요금 정도의 짧은 거리도 잘 잡힌다.


그리고 항상 배차가 되어 도착하면 기사님이 직접 내려서 그랩을 불렀는지 확인하기 위한 수고로움도 기꺼이 감내한다.


"신짜오~"


우리도 급하게 배운 베트남어로 인사를 건네본다.


"HELLO~"


수줍은 표정으로 영어로 인사를 건네는 베트남기사님.


시내에서의 자동차 속도는 40Km를 넘지 않는다. 도로에는 차보다 많은 오토바이들이 줄을 지어 달린다. 차 앞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좌회전하는 오토바이 우회전하는 차 정신이 없다.


그런데 사고를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빵빵' 거리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베트남은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며칠 있으면서 신랑과 내가 알게 된 건 경적소리는 '알림'이었다.


'빵!! 내가 너 뒤에 가고 있어! 조심해!'


그럼 앞서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뒤를 흘긋 보며 옆으로 빠지기도 하고 빠르게 내달리기도 한다.

신호보다 더 신호 같은 경적소리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의 운전자들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거리며 속도를 엄청 내 달리거나 앞지르기를 할게 뻔하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 표정은 너무 평온하다.


단 한 번도 화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속도를 내 오토바이를 앞질러가는 차도 없다.


호이안 올드타운을 가면 소원배를 타고 소원초를 띄우는 체험이 있다. 투본강가에 들어서자마자 호객행위가 시작된다. 가격을 부르는 건 가지각색 천차만별이다.


투본강 소원초 띄우기


부른 값의 반쯤 훅 깎아도 아마 내가 비싸게 배를 탔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많이 가격이 공개되어 어느 정도 적정선이 지켜지고 있지만 순진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두 배를 내고 타게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게 호객 상인이 가격을 부르면


"NO NO!"


하며 손을 흔드는 순간 바로 옆 상인이 조금 내린 값을 부른다. 그 상인과 흥정을 하고 있으면 그전 상인은 아무렇지 않게 등을 돌리고 돌아선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서로 경쟁하고 싸우지 않는 것.


그들만의 룰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래포구를 가서 꽃게를 살 때도 관광지에서 회를 먹으려고 흥정할 때도 서로 거래중일 때 다른 상인이 끼어들었다가 상인들끼리 본인들 손님이라고 싸우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기에 너무도 편안한 이 상황이 신기했다.


베트남은 35도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에어컨이 있는 카페가 드물다. 한국에서 한여름에 에어컨 없는 가게를 들어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침저녁을 보통 이런 가게에서 식사하는 베트남


쌀국수 로컬맛집이라는 가게를 검색해서 갔다. 에어컨이 없다. 난처해하며 두 번째 맛집을 찾았다. 또 에어컨이 없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가게는 에어컨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로컬맛집은 대부분 에어컨이 없다.


그래도 현지의 맛을 느껴보자고 35도가 넘는 날씨에 에어컨이 없는 가게로 들어갔다. 아이의 얼굴은 벌써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 땀이 뒷목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너무 더워 시원하게 망고주스, 수박주스부터 시킨다. 주인아저씨가 연신 쑥스럽게 웃으며 선풍기하나를 우리 테이블로 향하게 고정해 준다.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몇 마디 안 되는 영어로 주문했더니 또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주방으로 뛰어들어가신다. 뒤이어 젊고 앳된 따님이 나온다. 아마도 영어를 알아듣는 따님인가 보다.


간단히 주문을 받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주인아저씨가 음식을 들고 나와 우리 테이블에 놓으며 '반쎄오'먹는 법을 손짓발짓 알려주신다. 어리둥절 반쯤 알아듣고 우리도 웃으며 "YES YES!!"


다시 어디선가 선풍기 하나를 들고 오시더니 또 옆에 놔주신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모르는 우리 얼굴의 땀을 보고 안 돼 보였나 보다. 내가 본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모습들이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던 개가 길을 걷고 있던 우리를 향해 무섭게 짖으며 달려들었다. 옴짝달싹 못하고 얼음이 되어 서있는 우리를 보고는 근처 미용실에서 뛰어나와 개를 향해 알 수 없는 베트남어를 질러대며 개를 쫓아주고는 배시시 웃던 사람들.


호텔 근처 세탁소에 빨래를 맡겼다. 반나절이 지나니 세탁된 빨래를 들고 호텔 앞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호텔 앞 로비에서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다. 10분이 흘러서야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로비 앞이 아닌 호텔 시큐리티 앞이라고 한다.


이 더운 날씨에 헬멧을 쓰고 10분이나 세탁물을 들고 서 있던 아저씨를 만나 미안한 얼굴을 하며 인사했다.

모르는 외국인에게 표정 없이 돌아 설 만도 한데 베트남 특유의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세탁물을 건넨다.


룸으로 돌아와 비닐에서 꺼낸 세탁물이 뽀송뽀송하게 각을 잡고 접혀있다. 세탁물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


세탁서비스를 받은 후


이 사람들은 이 더위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 걸까. 왜 그렇게 평온한 걸까.


너무 습하고 더워서 몇 번은 인상이 찌푸려질 뻔 한 날에도 그들을 보며 참아본다. 많이 배우고 많이 겸손해지는 여행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마도 태어나서 부모님이 하는 일을 도우며 각자의 삶을 시작하는 환경이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의 시작선에 선 우리 아이들. 몇 개월에 걸음을 걷는지. 몇 개월째 말을 하는지. 언제 숫자를 깨쳤는지. 몇 살에 한글을 읽는지. 영어책을 얼마나 읽는지. 태어나서부터 비교가 시작된다.


친정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애 하나 키우면서 뭘 그리 힘들다 하냐? 엄마 때는 네다섯씩도 다 키우며 지냈는데..."


그때는 먹이고 입히는 게 문제였지 얼마나 가르치고 얼마나 배워서 어떻게 커갈지 고민이 덜 하던 시대였지 않을까? 오늘의 베트남처럼...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느낀 베트남의 모습일 뿐 내가 모르는 사실도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경험하면서 생각한 느낌으로 느끼고 배우고 반성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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