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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shi Hachi Aug 24. 2023

나의 소스 리스트를 기록해보자

나에게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발견하기

소스 리스트란?

《소스 리스트》(2022)는 문래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재미공작소에서 발행한 책이다.

강보원·강혜빈·김선오·김연덕·박규현·박은지·이기리·이유리·임선우·정지향 10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는 원천 열두 가지에 대해 기록했다.

참고로 재미공작소는 공연과 낭독 등 매년 다양한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한다. 블로그(https://blog.naver.com/studiozemi)를 통해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소스리스트는 2021년 1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공작소의 오프라인 문학 행사이다. 소스 리스트에서 호스트 작가는 자신의 첫 시집 혹은 첫 소설집 탄생에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열두 가지를 '소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 〈기획자의 말〉 중에서


나의 소스 리스트를 작성하기에 앞서

맛을 내려면 먹어봐야 안다

"그래도 누군가의 소스를 맛보는 일은 맛있으니까."(김승일, 서문 〈그림자에 누워서〉에서)

누군가의 창작을 짝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맛'을 알 것이다. 우선 짝사랑이 시작되면 그의 SNS 계정부터 관련 인터뷰나 기사 등을 통해 그의 일상과 창작에 대한 내용을 맛있게 찾아 읽게 된다.


맛을 내려면 먹어봐야 안다. 《소스 리스트》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좋은 부분은 밑줄, 작가가 영감의 원천으로 고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둥근 「」 꺽쇠로 표시했다.

'아, 작가들은 이 지점에서 생각이 드나드는 문을 발견했구나' 일러주는 나침반 같은 문장들이 산재해 있었다. 작가들이 저마다 머물렀던 곳에서 그들의 그림자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앞의 두 쪽은 강보원 시인의, 뒤의 한 쪽은 강혜빈 시인의 소스 리스트


첫 번째 방법

가볍게 시작하기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최근 관심을 두었던 것부터 떠올려봤다.


강아지 산책 /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매일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꾸준함과 쉽게 낙담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요네즈 켄시 / 일본 가수. 요네즈 켄시 때문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투어를 보러 간다는 목표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팬을 대하는 태도나 인터뷰 등을 통해 알게 되는 다소 철학적이고 재미있는 생각이 좋아서 계속 좋아하게 되는 가수(트위터 계정 @hachi_08을 통해 각 도시의 공연장 사진과 "一緒に行きましょう(함께 갑시다)" "また会いましょう(또 만나요)" 같은 상냥한 맨션을 남긴다). 지브리스튜디오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를 재미있게 봤는데, 그 영화에 영향을 받아서 작곡한 〈飛燕(비연)〉이라는 노래의 소스 리스트가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한다. 공식 굿즈샵(https://shop.kenshiyonezu.jp/)에서 직접 디자인한 상품을 볼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優しい人〉 〈海の幽霊(바다의 유령)〉 〈春雷(춘뢰)〉.

최승자와 기형도 / 학부생 때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두 명의 시인. 시를 처음 제대로 접한 경험으로 기억되고 마음에 스스로 지향하는 시의 기준처럼 남아 있다. 최승자의 시를 보고 이런 자기 고민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자기를 얼마나 파고들 수 있는지, 시가 보여줄 수 있는 장면에 대한 생각을 넓힐 수 있었다. 기형도의 시로 직유를 공부했는데, 기형도의 직유는 볼 때마다 새롭고 독보적이다. 소스 리스트를 쓰면서 〈오후 4시의 희망〉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다섯 가지 소스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길게 쓰지 않아도 좋다. 무람없이 자유롭게 기록하는 것이 나의 소스 리스트를 작성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내 영감의 원천은 기록할 만큼 대단하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도 내가 받은 영향 모음ZIP, 일상 속 원천을 기록하다 보면 생각이 한 차례 정리되고 어디론가 통하는 문 앞에 당도한 나의 사유가 "모호한 곳에서 시작"하는 창작의 원천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방법

힘껏 좋아하기

지금 이 순간 좋아하고 있는 것을 힘껏 좋아하기.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도 능력이다. 좋아하는 힘이 붙잡는 순간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은 이제 대수롭지 않지만, 전달하는 메시지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리고 생각하는 로 움직인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의 이동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움직임을 만들려면 새로운 사람과 사물, 장소와 사건이 필요하다. 비용을 투자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일을 실행할 때 비슷한 마음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의도치 않게 만나게 된다. 사물과 장소도 마찬가지다.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들, 내가 지금 이 순간 크고 작은 마음을 소요하는 것들이 나를 움직인다.


나의 소스 리스트는 좋아하는 것을 정리한 목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은 맹목적인 것보다 경제적인 것이 좋다. 저마다의 경제, 자기 자신의 합리가 마음에 든다.


세 번째 방법

이상하다는 생각 들여다보기

개인적으로 '이상하다'는 말이 요즘의 화두다. 때로는 불편하고 오묘한 이상함이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새로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 제 몸을 상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새로운 깊이에서 통찰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 황현산, 〈시가 무슨 소용인가〉 《밤이 선생이다》


나는 시를 통해 '이상하지만 좋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상함은 겪어보지 못한 것, 별다르고 색다른 것, 사전적 정의를 빌려 '정상적인 상태와 다른 것'이다.

이상함은 새로운 깊이의 통찰, 본 적 없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에서도 올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정상보다 개성을 원한다. 별다르다는 말은 특별히 다르다는 말, 색다르다는 건 특색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쩌면 시는 이상할수록 자기 개성을 담보하는 장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함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피해야 할 나쁜 감정이 아니라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편함은 어느 순간 "이상하게 좋네"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상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 아직 나에게 당도한 적 없는 무언가를 만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순간을 나의 언어로 나만의 소스 리스트로 기록해보면 어떨까?


나의 소스 리스트를 채우는 영감의 원천은 내 안에 흔들림 없이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일수도 있고 가장 최근에 나를 강력하게 파고든 새로운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최근의 것을 떠올려보자. 최승자와 기형도는 나에게 가장 오래된 것, 요네즈 켄시는 가장 최근의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에는 유통기한이 없고 빛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기획하고 선택할 수 있다. 소스 리스트를 통해 나의 선택을 돌아보는 일은 나에게 또 다른 영향을 주는 영감의 원천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나의 언어로 맛을 정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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