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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shi Hachi Jun 24. 2024

노래방 모양으로 남아 있는 감정

질문. 좋아하는 가사

물과 관련된 동사를 좋아한다. 흐르다, 가라앉다, 잠기다, 적시다, 둥둥 뜨다, 헤엄치다, 첨벙거리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다 보면 멜로디도 물질-물리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비트가 귀를 때린다고 표현하듯 음이 귀로 날아와 타격감을 준다. 국내 힙합을 좋아하는데 가사가 못이나 송곳처럼 음악을 뚫고 나오는 말 같기 때문이다.


나에게 음악은 구체적인 가사보다 그물 같은 멜로디에 감싸인 흐르는 느낌의 언어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어서 부르기 편하면서도 좋은 노래와 가사를 좋아했다.


정서와 음역대에 맞고 맞지 않더라도(부르고 싶어도 못 부르는 노래가 있다) 좋아하는 노래와 가사는 대체로 조금 슬프고 잔잔한 감성으로 넌지시 자기 속내를 꺼내 보이는 노래다. 예를 들면 정준일 〈안아줘〉, 제미나이 〈Going〉, 산들 〈게으른 나〉, 브로콜리너마저 〈청춘열차〉, 황푸하 김사월 〈멀미〉, 이소라 〈Track 9〉 등…. 항상 가사보다 멜로디와 음색을 아껴 들어왔다.


한창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싶던 중고등학생 때 음원 사이트 차트인 노래를 전곡 재생 무분별하게 들었다. 그러다 ‘가사 해석’ 검색을 통해 알게 되는 가사는 멜로디의 정서와 다르게 충격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때 어렴풋이 가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어떤 노래가 좋다고 말하기 전에 가사를 찾아보는 일이 중요해졌다. 타자를 대상화하거나 비윤리적인 내용의 가사를 멜로디로 얼버무리는 노래는 좋아하기 어렵다.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하다. 전에는 문장〔기표〕이 아름답기만 해도 좋아했다면(문장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조금 투박하더라도 오히려 그러므로 내용과 여백〔기의〕을 읽어내는 일이 즐겁고 중요해졌다.


문장은 쓴 이가 어떤 것을 보는지 알려주는 눈이고 그러므로 들리는 목소리고 보이는 마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쓰는지 여실히 드러나 보인다. 마음을 ‘어떻게’ 쓰는지는 글의 디테일을 말미암아 길어져 나온다. 생활감 있는 일상 언어의 구체성이 저마다 삶의 깊이와 디테일을 길어올리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가사에도 저마다 깊이가 있다. 웅숭깊지 않아도 의도와 컨셉에 맞는 적당한 깊이의 가사가 좋을 때도 있다.


잘 우는 편이 아닌데 노래방에서 운 적이 다소 많다. 대학을 졸업한 무렵에는 “안 돼요 안 돼요 그렇게 가지 마요”(샤이니 〈잠꼬대〉) “슬퍼하지 마 노노노”(에이핑크 〈No No No〉)를 부르다 울었고, 이별한 뒤에는 정준일 〈안아줘〉를 부르다 울었다. 아무래도 가사는 손에 펜을 쥐고 한 자 한 자 글씨를 눌러 쓸 때처럼 내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 부를 때 감정을 더 울리는 모양이다.


그때 감정이 노래와 함께 노래방 모양으로 남아 있다.


흘러간다 헤엄치지 않고

둘러보지 않고 흘러간다

속살 같은 물길을 따라

시간의 방향을 흘러간다


두리번 둘러봐도 끝없는 바다 위

비교할 이 시기할 이 없는 곳

바람이 닿는 곳 그 어딘가에

나의 꿈이 나의 바람이 나의 사랑하는 이

향해 가는 곳


흘러간다 바람을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는 척 눈물을 닦네


― 대성 〈흘러간다〉


나는 오늘도 노래방에서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닦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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