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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Dec 11. 2024

서른 _ 여행 메모

2024년 12월 / 울란바토르 몽골

기다린다.

9시 20분 비행기 예상치 못한 기상악화에 지연되었고 (12시 55분) 그리고 또 30분이 추가된다. 새벽에 받은 지연 안내에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그래도 공항에서의 시간이 길다.  

 처음으로 주도한 여행지로 몽골을 골랐고, 감사하게도 언니와 팀원분들을 모집해 몽골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운이 좋게 아버지의 마일리지를 사용해 좋은 좌석을 경험한다. 출국 전 전용길을 통해 짐을 빠르게 부치고, 라운지를 이용해보기도 한다. 식사를 하고 위스키고 한 잔 마셔본다. 항공편에 올라 기내식을 고르고 기다린다.

만 나이로 이제 곧 서른이다.
한국 나이로 서른이 끝나고 서른 하나다.
어떤 나이로 하더라도 의미가 깊다.

20대 초반 몽골의 쏟아지는 별사진을 보고 무작정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사진이 계기가 되어 이번 여행을 결정했다. 그렇게 언니와 동행분들을 모가 하나의 비행기에 태웠다. 어떠한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작용하는지, 나를 이끄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단순한 사진 한 장인지, 마일리지 항공권의 유혹이었는지 또는 회사에서의 연차가 많이 남아서였는지 몰라도 복합적인 모든 것들이 선택을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이번 여행은 또 다른 계기가 되어 나를 어디론가 이끌어 줄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모든 방향이 좋은 긍정적인 곳으로 향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서른을 마무리하거나 시작하거나 둘 중 하나.
시작과 끝은 결국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잘 끝내는 것과 하나다.

이제 진짜 출발한다. 3박 4일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기를 희망하며, 불편을 감수한 여행지에서 익숙한 것들 또한 새롭게 느껴질 것들을 기대해 본다.

곧 내린다.

비행기 창문을 열고 이륙을 준비한다.
한국과 확연하게 다른 창밖의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무것도 없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기분이다. 이색적인 풍경. 기대했던 모습과 닮아있는 풍경. 과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문화 환경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지 나는 아직 감조차 오지 않는다. 다만 함께 할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걱정 설렘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고도에 따른 몸의 변화에서 온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여행의 중간에 이렇게 글을 남겨보려고 한다. 기록과 경험의 느낀 점을 보다 생생하게 남겨보고 싶다. 글과 사진과 여행이 함께 하는 그런 여행이 될 것이다.  순간에 남긴 메모장의 이 글은 다듬지 않고 브런치에 올려볼 것이다. 이것이 훗날 나만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히려 몽골은 이동이 길고 정신없는 도시에서 벗어나 생각할 시간이 많기 때문에 더욱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언니가 조금 걱정되지만 분명히 언니 안의 무언가 대자연으로 떠나는 여행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와 언니 그리고 함께할 모든 동행 분들도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경쟁에 치이며 일상의 소중함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진짜 도착이다.  떠나야지.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3박 4일 동안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나는 경이롭고 신비롭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을 압도해 버리는 자연환경 속에 몸을 던져두었고, 공기와 바람 온도 냄새 빛의 변화와 그림자 이 모든 것들을 느껴보았다. 그 앞에선 나의 크고 작은 고민들이 보잘것 없이 느껴졌다.


첫째 날 새벽 2시를 넘어서 도착한 숙소에서 마주한 밤하늘. 그리고 드넓은 초원 분홍과 파란빛의 하늘 떠오르는 해. 사람에게 친근한 동물들 개와 낙타 말 소 독수리 양과 염소.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며 울퉁불퉁 온전히 느껴지는 땅의 모습. 그 끝없는 이동에서 마주한 또 한 번의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 그저 고개를 들면 만날 수 있었다.


낙타를 타고 느껴보는 고요함. 느린 걸음으로 드넓은 평야에서의 그 고즈넉하면서도 평화로운 따듯한 공기와 풍경을 잊지 못한다. 생활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난 고요를 온몸으로 느껴보며 두근거림과 평안함과 함께 여행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유목민 게르에서는 좀 힘들었다. 화장실도 불편했고 숙소도 춥고 온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는데 어찌어찌 잠이 들어 하룻밤을 보낸다. 물도 없어, 전기도 없어 추워.... 쉽지 않은 밤을 보내긴 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하루였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다음날 현대식 숙소에 도착했을 때 기쁨이 어마어마했다.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기쁘던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첫째 날을 제외한 둘째 그리고 셋째 날 밤은 켐프파이어와 게르에서 동행분들과 수다를 떨며 보냈다. 폰을 잠시 내려놓고 얼굴을 바라보며 또 쏟아지는 별을 보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린 같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저마다 처한 환경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해와 공감, 감정 그리고 의견과 생각을 공유하며 여행의 밤은 깊어졌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필름카메라의 남은 마지막 한 장으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왜인지 모를 아쉬움과 다치지 않고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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