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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오피스텔

by 코끼리

누군가의 생활공간을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지극히 사적인 생활공간을 어떠한 물건으로 채웠는지 혹은 비워두었는지에 따라 여러 가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참 많다. 최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옷 취향이나 삶의 방향 심지어 향기까지도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그 사람의 공간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는 일반인이 나오는 예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코로나 이전에 프로그램인 한 끼 줍쇼나 일반인이 나왔던 유퀴즈, 무한도전 등. 꾸며지지 않은 그런 모습들.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여러 모양의 삶을 들여다보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는 게 무척이나 재밌었다. 최근에 이런 프로그램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이번에는 내 삶의 공간을 들여다볼까 하여 주말 오후 브런치를 열어 적어본다.


내가 사는 관악구에서는 청년의 도시라고 하는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설입(서울대학교입구역)과 봉천역 사이에 위치한 내 오피스텔은 봉천동에 위치해 있으며 확실히 1인가구 특히 청년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한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 오래된 빨간 벽돌의 집들 사이사이 어르신들도 꽤나보이는 것 같다.) 이들에게서 문득 스친 느낌은 혼자든 가족을 이루든 공통점은 뭔가 여기에 오래 머물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정착하기보다는 스쳐가는 느낌의 동네다. 젊은 시절 관악구에 살아봤다는 우리 형부 역시 잠깐 추억에 잠기며 조금 들뜬 모습으로 당시 모습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 결혼해 다른 곳에서 자리 잡은 형부다.


나도 이곳에 자리 잡은 지 2년이 거의 다 되어간다. 오피스텔이지만 그냥 작은 원룸이다. 본가에 있는 내 방만한 크기의 공간 안에 부엌이며 화장실 침실까지 다 들어있는 방에 살고 있다. 월세 20만 원에 관리비 15만 원 합해서 매달 35만 원을 이 작고 소중한 방을 위해 지불하고 있다. 나름대로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된 건물이라는 부분이 장점이다. 그리고 환기와 채광이 좋다는 점. 단점은 좁아서 분리가 안된다는 것이다. 이 단점은 내가 이 집을 선택할 때 너무나 순수하게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꽤나 치명적이었다. 침대를 들여놓으니 한 명이 간신히 몸을 눕힐정도의 복도 공간만 남는 이곳에서 식사, 공부, 빨래, 운동 등 실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모두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사하는 날부터 무의식 중에 이곳은 스쳐가는 공간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왕 살게 된 내 공간에 정을 두기 위해 좋은 점 찾기 시작했다. 집에 친구나 지인들을 초대할 수 없으니 오히려 편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음식도 필요한 만큼의 양만 신선하게 구매해해서 먹었다. 여름에 에어컨을 틀면 금방 시원해졌고 겨울에도 더 따듯했다. 채광이 좋아서 문을 열고 자주 환기를 시켰다. 동선이 단순하다 보니 크게 신경 쓸게 없었다. 청소하기도 쉽고 물건들을 찾기 더 수월했다. (물론 좁은 만큼 빠르게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청소를 자주 해야 한다.) 집에서 할 수 없는 운동을 해결하기 위해 헬스장을 다니게 되면서 오히려 더 건강해진 것 같다. 또 대학가라서 그런지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 겸사겸사 돈도 절약되고 좋았다.


침대와 책상으로 구성된 내 작은 공간에는 중구난방의 여러 가지 책들과 스피커 그리고 노트북과 모니터가 있다. 부엌 찬장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차들과 커피 그리고 라면과 참치가 있다. 이사 오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4인 세트 식기가 찬장의 가장 위 쪽으로 올라가 있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모니터 그리고 키보드가 절반을 차지하며, 캘린더와 타이머 다이어리와 영어 교재들이 어지럽게 올려져 있다. 침대 위에는 선물 받은 춘식이 인형과 이케아 강아지 그리고 오리와 오랑이 인형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감명 깊게 본 전시의 포스터와 문구들이 나름대로 규칙을 이루며 벽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에 어학 라디오 혹은 편안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른다. 세련되지 않아도 애정이 깃들여진 나만의 공간이다.


좋게 생각하니 좋아졌다.


처음에는 소음이라고만 생각했던 집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들리는 배달 오토바이의 소리들도 왠지 모르게 정이 들었다. (실로 여기는 배달의 동네다. 불행 중 다행인지 다행히 집에서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평소에 나는 배달음식을 잘 먹지 않는데 가끔 몸이 좋지 않을 때 주문을 한다. 당시에 문 밖으로 가져다주시는 라이더 분이 어찌나 고맙던지 눈물이 난 적도 있다. 빨래방도 근처에 있기 때문에 계절이 바뀌면 이불 빨래를 하러 간다. 빨래가 건조되기를 기다리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몽실몽실해진다.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각자 나름대로 삶을 상상해 본다. 슈퍼 앞에서 들어갈까 망설이는 아저씨부터 마감시간이 되어 옷 수선집을 마무리하고 들어가시는 할아버지, 빠른 걸음으로 책가방을 부둥켜안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학생, 사랑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걷는 커플들까지 빨래방 앞에는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거리가 있다.


2025년, 대한민국의 어느 서른 하나 미혼 여성의 관악구 오피스텔은 이런 모습이다. 여전히 나는 여기 오래 살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정착보다는 잠시 머무는 공간. 과연 얼마만큼 이곳에 머물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일부이며 소중한 보금자리임에는 틀림없다. 애정 어린 이곳은 누군가의 또 다른 시작이자 종착지 혹은 꿈의 무대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포함한 그 모두를 응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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