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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파파야 향기 Mar 24. 2022

저 어머님 아닌데요

-친근감을 강요하는 한국 호칭에 대한 생각

# 불쾌감을 부르는 호칭 [어머님]


핸드폰에 문제가 있어서 핸드폰 가게를 갔다. 들어서자마자 젊은 직원이 공손한 태도로 나를 응대했다. 친절해서 좋았다.


어머님~ 이쪽으로 오세요

어머님, 어떤 일로 오셨어요?

아~ 어머님,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어머님 연령대에는 이게 제일 잘 나가요.

어머님, 자녀 분들은 어떤 폰 쓰세요?

어머님, 한번 고민해 보세요.


젊은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중간중간 '어머님'이라고 나를 부르는 호칭이 불편하고 거슬렸다. '나는 어머님이 아닌데'하는 마음과 어법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호칭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그냥 참았다. 그런데 점점 친근감을 강요한 듯 '어머님'을 남발할 때 나는 그만 직업병이 발동하고 말았다.


"저 어머님 아닌데요. 그냥 '고객님'이라고 불러 주시면 안 될까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직원은 '고객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조금 전보다 경직된 말투로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니 들어줄 만했다.


#친근감을 강요하는 우리나라 호칭 [언니][오빠] [이모님]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의 호칭을 가르칠 때마다 친근감을 강요하는 호칭들 때문에 당황했던 에피소드를 많이 듣게 됐다.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한국의 호칭은 옷 가게에서 듣게 되는 '언니'와 한국 남자들을 만나면 항상 불러 달라는 '오빠' 그리고 식당에서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호칭이다.


먼저, 옷 가게에서 듣는 '언니'라는 호칭은 한국인인 나도 어색한 호칭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사장님이 옷을 추천해 주시면서 언니라고 부를 때 정말 어색하고 불편하다.


'언니, 한번 입어 봐. 언니한테 잘 어울리겠다'


'언니'라고 부르면서 반말로 하는 것도 불편하고, '손님'이라는 적당한 말이 있는데 굳이 언니를 사용하는 그 속셈도 싫다. 물론 옷을 팔기 위해 가족 호칭으로 친근감을 주려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게 우리 사회에서 관계를 맺는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은 오해하기 충분하다.

한번은 한 외국인 학생이 이대 옷 가게에서 옷을 살 때의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볼 때 누가 봐도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직원인데 그분이 자기에게 계속 '언니'라고 불러서 당황했단다. 자기가 그렇게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나 싶어서 속상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오빠'라는 호칭이다. 한국에서 불리는 오빠는 9가지의 오빠가 있다.


가족인 친오빠, 친족인 친척(사촌) 오빠, 남편이나 남자 친구 오빠, 학교 선배 오빠, 동네 오빠, 교회 오빠, 친한 오빠, 아는 오빠, 연예인 오빠 등등...


참으로 많은 오빠가 존재하니 외국인들은 다 가족인가 싶을 것이다. 조금 전에 소개받은 오빠도 오빠, 지금 소개받는 오빠도 오빠....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절대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자기를 오빠라고 불러 달라는 한국 남자들의 요청에 난감하다고 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자기도 부르고 있지만 여전히 이해 안 되는 어색한 호칭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모님'이라는 호칭이다. 이 호칭은 어느 정도 한국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려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호칭이다. 그들도 한국에서 한국 살이를 잘하려면 배워야 하는 필수 단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다. 천연덕스럽게 식당에 가면 한국 사람보다 더 구성지게 '이모님'을 불러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곤 한다. 그런데 이 호칭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무 데서나 '이모님'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어 웃프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사용했던 이런 가족 호칭들은 사실 한국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경우가 있다. 상황에 맞게 잘 사용하면 친근감을 형성하여 관계나 일이 잘 해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많이 변하고 있다. 나처럼 50대지만 결혼하지 않은 비혼인 경우도 있고, 결혼은 했지만 자녀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무심코 내뱉는 호칭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고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점점 다변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은 친근감을 강요하는 호칭보다는 장소와 관계에 맞는 적절한 호칭들을 사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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