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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나 Mar 28. 2023

#6 장기하와 얼굴들<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남과 비교하며 사는 피곤함에 대하여

"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칭찬했을 뿐인데

내가 그리 재미없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굉장히 웃길 뿐인데

내가 그리 못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잘 나가는 것뿐인데

날 그리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아주 좋아할 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웃고 있는 내 입꼬리가 땡기네

나는 어떡하나 어떡해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칭찬했을 뿐인데

내가 그리 못난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참 잘났을 뿐인데

내가 울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웃고 있을 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웃고 있는 내 입꼬리가 땡기네

나는 어떡하나 어떡해

"


장장 8분 17초 짜리의 노래다. 여기까지를 1절이라고 치자. 기본적인 구조는 두 줄씩 짝을 이루어 혼자서 자기 생각을 주고받는 형태다. 첫째줄이 '나도 뭐 썩 나쁘진 않은데'라면 둘째 줄은 '나보다 더 잘하고 더 주목받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다. 청자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뒤에 생략된 말들을 자연스레 유추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1)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지)

(2) 그 사람을 칭찬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불쾌할까)


나보다 더 주목받고 유머 있고 인정받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화자는 아마도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어 보인다. 내면의 불쾌함을 숨기려 겉으로는 웃으려 노력하다 보니 안면 근육이 경직되는 걸 느끼는 화자. 특히 장기하는 (2)번 파트를 부를 때 (1)번 파트에 비해 목소리도 다소 기어들어가듯 표현했는데,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에 위축되어 가는 화자의 감정을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여기까지는 아직 자격지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칭찬했을 뿐인데

내가 그리 재미없는 것도 아닌데

그 새끼가 좆나게 웃길 뿐인데

내가 그리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 새끼가 너무 너무 잘 할 뿐인데

내가 그리 못난 것도 아닌데

그 새끼가 얼마나 잘났든지 나랑은 상관없는데 왜

"


전주를 거치며 격렬한 드럼 비트와 함께 곡의 속도가 2배 정도 빨라진다. 2절부터 화자의 생각이 제멋대로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표현한 것일까. (역시 혼자만의 생각에 매몰되는 것은 이토록 위험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타인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었던 표현이 '그 새끼'로 대치되는 지점에서 실소를 자아낸다. 초반에는 자격지심 정도였다면 이제 피해의식까지 진행된 듯하다. 이제는 그 사람이 밉고 화나고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까지 이른 화자에게 이제 '그 사람'은 '그 새끼'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20대 중반 혼자 낄낄 웃으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이런 마음 상태를 경험해 봤기 때문이리라. 노랫말처럼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북 치고 장구 치던 나의 경험을 이토록 통쾌하게 노래로 풀어내다니, 하고 감탄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노랫말과 유사한 경험을 해봤을 거라 생각된다. 1절에만 그치는 사람도, 2절까지 가는 사람도 있겠다. 혹은 컨디션이 좋은 날엔 1절만, 나쁜 날엔 2절까지. 만일 3절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3절까지 가면 '피해망상' 상태가 되어 더욱 심각하다. 그 생각을 진실로 믿게 되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매우 위험한 존재도 될 수 있다. 길거리에서 단지 웃고 있다는 이유로 생면부지의 여성을 폭행하는 남성처럼.


이 '남과 비교하기'란 주제는 장기하의 최근 앨범에도 반복되는 주제이다. 2011년 발매된 이 노래의 화자가 항상 남과 비교하며 부러움을 달고 사는 이였다면 최근 2022년에 발매된 곡 <부럽지가 않어>의 화자는 아예 남과 비교 자체를 안 하는 현인 내지는 대자유인으로 등장한다. 남과 비교를 하면 필연적으로 항상 나보다 잘난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자신은 비교 자체를 안 하기에 부러움이란 감정을 아예 모른다는 내용이다. 장기하가 11년 만에 득도한 것일가? 그렇다기보다 여전히 장기하의 마음에는 두 자아 상태가 공존할 거라고 본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부럽지가 않어>는 장기하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워너비를 노래한 내용이 아닐까.

 

많은 심리학자들은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도록 만드는 동기부여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개인 내적인 '종단 비교'이다. 어제의 나, 1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와 비교했을 때 개선되거나 성장한 것이 있는지 비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방향성을 재확인시켜주고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다. 이 노래가 경고하는 '남과 비교하는 것의 무익함/위험성'을 받아들인다면, 이제는 나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며 내가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나 방향성을 점검하는 것은 어떨까.


다짐해 본다. 때로는 남과 비교하더라도 되도록 1절에만 머물자. 2절까지 가지 않으려면 우리에겐 수다가 필요하다. 혼자 하는 독백 말고, 사람과의 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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