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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son Jul 17. 2022

메리케이 윌머스의 『서평의 언어』를 읽고,

독후감

p.10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가는 부류의 작가가 아니다. 나는 메리케이만큼 메모를 많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번은 그가 아들 윌(당시 열네 살쯤 되었다)이 ‘엄마는 책을 베낀다’고 얘기하더라는 말을 내게 해준 적이 있다. 아이가 농담을 하려던 게 아니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메리케이의 말마따나 “그것도 얼추 맞는 얘기”라는 점이 참 우스웠다.


p.13 나는 1960년대 후반 자매들의 의식 고양에 함께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기혼이었으며 의식이 1밀리미터라도 더 성장하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만약 내가 찰스 다윈(또는 아인슈타인이라든지 메테르니히)과 결혼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결혼에 수반되는 협의 사항을 조금이나마 더 품위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p.61 ‘요리와 제빵 사전’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소극적으로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는지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여기에 나오는 가짜 거북 수프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잘 먹여 기른 송아지 머리를 커다란 냄비에 넣고 (•••) 끓인 뒤 (•••) 털을 깨끗이 긁어내고 (•••) 뼈 안팎의 살을 발라낸 다음 머리를 쪼갠다. 혀를 끄집어낸다.” 앨버트 수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황소 뒷다리 무릎 관절 두 개를 꺼내”야 하고, 양 머리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씻고 털을 완전히 뽑은 다음 커다란 냄비에 넣되 “숨골이 냄비 바깥으로 걸쳐지게” 넣어야 한다. 이 항목에서 다루는 것들은 “일상생활에 맞게 개량한 요리와 제빵”이라고 하니, 방금 이야기한 요리법들은 윈저성이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 먹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었나 보다.


p.84 마치 서평가가 줄거리를 요약한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만 같은 도입부인데, 소설가 입장에서 보면 독자들이 서평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어떤 서평은 다른 종류의 이야기, 즉 서평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p.200 바이얼릿과의 관계가 끝난 뒤 비타는 버지니아 울프와 한층 냉철한 관계를 시작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2년 12월 15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화려하고, 콧수염을 기르고, 잉꼬처럼 알록달록하고, 귀족들이 가진 유연한 편안함을 지녔으나 예술가로서의 기지는 없다.” 전날 밤 그는 비타를 처음 만났다. 클라이브 벨이 블룸즈버리 그룹에 니컬슨 부부를 소개했는데, 대체적으로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두 사람 모두 구제불능으로 멍청하다고 판단했다. 남편은 허세를 부렸지만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아내 쪽은, 덩컨이 보기에는 남편의 지시대로 행동했고 아무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버지니아는 비타의 지적 능력에 대한 생각을 영영 바꾸지 않았다. 심지어 그와 레너드가 비타의 책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을 때조차(『에드워드 시대 사람들』은 하루 만에 800부가 팔렸다) 비타 앞에서는 칭찬을 하고 뒤에서는 “몽유병 걸린 하녀가 나오는 소설들”이라고 폄하했다.


p.269 인용문에서 “그 남자 또는 그 여자”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이 문맥을 “평범한 외모를 가진 여성에게는 부당하다”는 뜻으로 읽어선 안 됩니다. 제가 사용한 표현인 “난잡함 속에 끼지도 못할 이들”, “남성과 여성”, “성적 매력을 지니지 않는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특히 모든 여성”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이 표현은 이 개탄스러운 책에 등장하는 남성우월주의를 개탄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입니다. “『플레이 파워』 속 세상은 모든 남성과 여성(특히 모든 여성, 이곳은 남성의 세상이므로)이 아름다운 (•••) 환상의 세계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 윌머스 씨는 불충분한 편집 과정을 거친 원고를 쓴 기고자 윌머스 씨보다 면밀한 분이었으면 합니다.


크리스토퍼 릭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보라색이 눈에 띄는 『서평의 언어』 표지. 표지 위에 엄지 손가락을 올리고 검지로 살포시 넘겨. 포도주가 생각나는 내지가 시작된다. 어떤 언어가 문자라는 매체로 남겨져 있을까. 고민과 함께 기대되는 마음은 반반으로 설레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서문은 메리케이가 작가로서 가정에서 어떤 사람인지, 1990년대 초반에 쓴 글 중에 결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목차는 일반적인 다른 책과 다르게. 겹낫표 제목에서 홑낫표 소제목을 보는 느낌.


 이 책은 어렵다. 저자의 인지적 측면이 풍부해서 이해하기 어렵고 잘 읽히지는 않는 도서. 읽는 내내 공부하는 느낌과 함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니다> 편집장 미란다가 연상되는 권위.


 어휘에 대한 생각의 표현이 신랄하고 종교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메리케이 윌머스가 투명하게 쓰더라도 누구나 쉽게 쓸 수 없는 에세이. 『한국인 이야기(탄생, 너 어디에서 왔니)』보다 민족주의 무게감은 깊지 않고 『정희진처럼 읽기』처럼 접근이 쉽지는 않으며, 『장정일의 공부』 같이 연도별로 이데올로기 이념을 탐구한 책인가. 조심스레 어림짐작.


 술로 표현하면 맥주처럼 가볍게 마시기에 기분이 복잡하고. 소주로 괴로움을 씻어 달콤한 맛보기에 세련된게. 맥주와 소주를 섞은 소맥 같다. 경험이 쌓인 연륜이 돋보인 인문에세이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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