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1. 멕시코 외노자 일기-01
day1(8/28)
금요일부터 꽤나 울적한 하루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3개월은 가까워질수록 점점 길어졌고 금요일이 되어서야 그를 실감할 수 있었다.
멕시코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출발하기도 전부터 잠에 들어버렸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흘러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당신이 피식 웃으며 두 팔 벌려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아서.
어제는 그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어질러진 집에서 노래를 크게 틀고 춤을 추었다.
그는 화장실을 다녀오자마자 1년 뒤 결혼하자고 했다. 12시간도 참지 못하는데 12개월이면 많이 참았다. 상냥한 사람, 11월이 오면 가게 될 가장 추운 곳에서도 따뜻할 사람.
이제까지 그와 보낸 8개월은 우리의 1막이다. 그 1 막간 지지리도 붙어있었다. 그 순간들을 정리해서 더 소중히 간직할 2달 반을 보내고 오면 된다.
소중한 것들은 더 소중히, 버릴 것들은 후련하게, 더 키워낼 것들은 더 성숙하게.
멕시코 비행기에서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글을 쓰는데, 나라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
키르기스스탄도, 베트남도, 필리핀도, 몽골도.
멕시코 비행기에서는 멕시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후추와 치즈 냄새.
기내식은 맛있었다. 먹고 떠들고 하다 보면 또 슬픔을 잊는다.
숨 가쁘게 보낼 수밖에 없겠다 3개월은. 조금 지내다 보면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길도 가볼 수 있겠지. 참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