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1. 멕시코 외노자 일기-02
도합 무려 24시간에 달하는 총 이동시간은 나를 정신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장 멀리 가본 곳이 키르기스스탄이었는데, 이도 8시간 밖에 안 걸렸다. 타지에서 산단건, 혼자 사는 거면 몰라, 특별히 다 같이 타지에서 산단 건 말이다, 익숙한 곳에선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이 가족이 된다는 뜻이다. 생판 모르는 남이랑 가족으로 산다니 처음에는 정말 끔찍했다.
군대를 가본 적은 없는데, 군대가 이런 느낌일까? 완벽한 단체 생활.
콩쥐야, 거기 사람들은 밥을 마셔
누군가가 나에게 해 준 조언인데, 정말 밥을 마시듯이 먹는다. 물론 나도 그 속도에 맞춰야 한다.
콩쥐씨, 인생의 마지막 휴가 잘 보내다 오세요
누군가는 나에게 이곳이 도피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도망친 곳은 낙원이 될 수 없다.
첫날부터 내가 할 일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졌고,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회식 자리에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오는 전화를 받으면 눈물로 답했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깎이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던 글쓰기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 정신적인 에너지도 없어서, 펜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게, 글은 내 가장 친한 친구여서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것 까지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인데 멀리해서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처음 한 달 동안은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과 화가 치밀어서 울컥울컥 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자꾸 비교 선상에 나를 놓는 것이었다.
물론 사실 내 조건이 절대적으로 보았을 때 결코 몸과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항상 나쁜 쪽에 가까웠지. 한국에서는 스스로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좀 더 수월했다. 털어놓을 상대도 비교적 많았고, 스스로 그 스트레스를 풀 만한 상황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타지에서는 그만큼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긴장감과 단체생활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또, 이곳은 도피처가 아니었다.
숨 쉴틈이 없었던 지난 6개월 동안 나에게는 나름의 오아시스가 있었다. 뻥 뚫린 광야는 나에게 해방감을 주기보다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 탓일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내가 버틸 수 있던 건,
주변 사람들 덕분.
참 아이러니하다. 단체 생활이 버겁다고 했으면서 정작 위로는 또 사람을 통해 받는다.
인간에게...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나에게!
이렇게 자유가 중요한 가치일 줄 몰랐다.
한국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라 모범적으로만 살던 나라서 간과했던 것이다.
이 선택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쓸데없는 얘기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억압받기 싫어하는 걸 알고 있어서 나를 크게 push 하지 않으셨다 한다.)
대인관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했고, 업무도 자유롭지 못했고, 여가도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던 인간관계에선 위안을 얻고,
아무리 바빠도 내가 더 알고 싶은 것을 알아내거나 내 방식으로 일을 해결해 나갈 때는 힘들지 않았다.
주말에 맛보는 외출은 어찌나 달콤하던지.
너무 괴롭게 알아내긴 했지만, 아무튼 지난 3주간 멕시코에서 지내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너무 도처에 있어서 알 수 없던 자유를 인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