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이름표는 날개를 달고
브런치에서 ‘작가’ 이름표를 달던 첫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생전 처음 듣는 타이틀에 날아오를 뻔했다. 54라는 숫자 앞에서, 이렇게 꿈에 다가가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초심은 금세 길을 잃곤 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르시스적인 투정 같아 부끄럽고, 맥락 없이 징징대는 글 같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내 안의 검열관은 목소리가 크다.
“그만둬! 너는 원래 잘 때려치우는 사람이었잖아.”
하지만 나는 귀마개 하나를 쥐고 있다.
“흥, 안 들리거든.”
사실 나는 꽤 많은 것들을 쉽게 포기해 온 사람이었다. 운동도, 그림도, ‘나랑은 안 맞나 보다’ 하고 내려놓았다. 그런데 글쓰기만은 달랐다. 멈칫하다가도 다시 펜을 든다. 포기했던 것들과 달리, 글이 나를, 내가 글을 붙잡는다. 그래서 이 이름표만은 떼어내고 싶지 않았다.
글은 내 마음을 읽어주고 다독여주는 치유사다. 글을 쓸 때만큼은 내 안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잠자던 오감을 깨워, 일상의 순간마다 나를 흔들고 감각하게 한다. 소리에 예민한 내가 귀를 쫑긋 세우고, 향기에 민감한 내가 자연의 향에서 평화를 배우며, 피부에 닿는 온기에서 위로를 느낀다. 혀의 감각을 통해 새로운 맛을 발견하기도 한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내 안의 예민함을 결함이라 여기며 소소한 기쁨을 스쳐 보내며 살았을 것이다. 글쓰기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었고, 부족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나는 지하철에서 관찰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앞자리 사람들의 신발을 보며 이야기를 떠올리고, 도란도란 대화 소리에 귀가 쫑긋해진다. 계절이 바뀌는 하늘과 구름에 설레고, 가족과의 대화 한마디까지 마음에 기록한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네가 없었다면 이런 감동과 울림은 없었겠지?”
내 SNS 아이디는 agsarang.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의미였다. 사람들은 묻곤 한다.
“아그사랑이 뭐예요? 에그사랑이에요?”
그럴 때마다 웃음이 난다. 이제는 50+, Always Growing! 그리고 하루를 뜨겁게 사랑하는 나로 설명한다. 이 나이에도 호기심이 넘쳐 배우기를 좋아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하루를 열정 가득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50+ 임에도 매일 성장하고 자라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나답게 자라나게 만들어 주는 글쓰기를 만났다. 어쩌면 글쓰기를 위해 15년 전부터 준비한 이름인 것만 같다. 선견지명이 따로 없다.
글쓰기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자존감이 낮고 내 의사를 명확히 말하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조금씩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온다. 꼼짝 않고 몰입해서 글을 쓰고 나면 마치 스파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다. 개운하고 말똥해진다. 글을 쓸 때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도 꽤나 재미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특별한 시간여행이다.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 생각해 본다.
“글은 나의 결핍을 약점에서 선물로 바꿔준 유일한 언어였다.”
브런치 작가 이름표를 달았을 땐, 매일 글을 쓸 줄 알았다. 하지만 부끄러움에 자꾸 멈칫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쓰고 또 쓰고 싶다. 나는 어른이지만 글 앞에서는 아기가 된다. 브런치 안에서 글로 응석 좀 부려도 되지 않을까? 누가 처음부터 잘했겠는가.
브런치 10주년을 맞아, 막연하던 꿈이 다시 날개를 단다. 치유의 언어를 쓰는 작가, 그리고 조금 더 유쾌한 작가로 계속 자라나고 싶다. 햇살 가득한 브런치 스토리라는 이 정원에서, 맘껏 뛰놀며 오늘도 자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