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 ‘그까이꺼’ >
- 김상득(칼럼니스트) -
언젠가 나는 ‘글쓰기와 화투의 공통점'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가?”라는 독자 메일에 대한 답이었다.
글이 나간 후 몇 통의 메일을 받았다. 호주에서 1.5세, 2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에이미 선생님이 보내온 메일도 있었다. 학생들이 600자 정도의 글을 쓰는 데도 몹시 힘들어한다며, '관찰'과 '성찰'에 대한 이야기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감사 메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관찰이니 성찰이니 말은 그럴듯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할 때 느끼는 막막함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던데, 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조언은 없느냐는 항의도 있었다. 역시 그 질문에도 내가 제대로 답할 자격도 능력도 안 되지만, 그래도 나름 성의껏 대답해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예전에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때 선배는 말했다.
"기계, 그것 별 거 아니다.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딱 두 가지 운동만 하는 거야. 왕복 운동과 회전 운동, 그게 다야."
선배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공장 일이 서툴러 고생하던 내게 그 말이 자신감을 준 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글쓰기, 그것 별 거 아니다. 딱 두 가지만 하면 된 다. 쓴다. 고친다. 그게 다다.
우선 쓴다. 글쓰기에 대한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착각은 '생각한 다음 쓴다'는 것이다. 오해다. 쓰기 전에 하는 고민은 대부분 잡념일 뿐이다. 글쓰기를 미루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은 글쓰기와 함께 생겨나는 운동에너지다. '무엇을 쓸 것 인가'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무조건 첫 문장을 쓴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그 생각이 두 번째 문장을 쓰게 한다. 두 번째 문장을 쓰면 더 많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만일 그래도 막막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주변사'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어둠 속에서 한 물체를 집중해서 보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더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볼 때 비로소 그 사물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까 막막할수록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고 ‘무엇의 주변’에 대해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계속 쓰면 된다. 어색해도 이상해도 일단 쓴다. 끝까지 쓴다. 결국 쓰는 놈에게 누구도 못 당한다.
다음 고친다. 다 썼다면 이제 고친다. 쓴다는 것은 사실 고친다는 말이다. 영감이 떠올라 단숨에 쓰고 단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 아마 천재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에겐 글을 고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천재들은 요절하니까. 평범한 우리에겐 깨알 같은 시간이 있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그 시간 동안 고치면 된다. 소리 내어 읽으면서 자신의 호흡에 맞게 고치고 또 고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더 많이 고치는 사람이다. 고치고 또 고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림은 고칠수록 나빠지지만 글은 고칠수록 나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여기까지 쓰는데 담당 에디터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무리 늦어도 오전까지는 마감해주셔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만 하느라 마감을 하루나 넘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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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이런저런 기록물들을 정리하다가 글쓰기에 관한 명쾌한 칼럼이 눈에 들어와 옮겨보았다. 부족한 글쓰기지만.. 내가 늘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시작한다.
그럼 이제 끝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언제든 고칠 수 있으니..
글쓰기! 정말 그까이 거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