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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이어깨동무 May 13. 2020

12. 데리와 런던데리, 두 이야기를 따라

코리밀라에서 전합니다

2018년 12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북아일랜드 특유의 날씨, 회색 하늘이던 날.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데리로 떠났다. 3편에서도 짧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도시의 공식 명칭은 런던데리지만 아일랜드계에서는 데리, 영국계에서는 런던데리라고  부르는 도시다. (많은 영국계 사람들도 데리라고 부르는데, 공항 이름도 런던데리가 아니라 Derry city airport다. ) 이 날은 갈등이 심각했던 데리/런던데리에 사는 두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를 듣는 날이었다. 


블러디 선데이의 현장 


북아일랜드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블러디 선데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데리에서 일어난 아일랜드계의 행진을 진압하러 온 영국군이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14명이 죽고 13명이 다친 사건이다. 영국 공수부대가 아일랜드계의 비폭력 시위를 과잉 진압했고, 이 사건을 오랫동안 은폐, 축소하였다. 영화 ‘블러디 선데이’, U2의 노래 ‘sunday bloody sunday’ 등이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블러디 선데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5.18과 같다는 분들이 많았다. 


오전에는 코리밀라와 인연이 있는 분과 데리의 골목을 다녔다. 언덕을 올라서 성곽을 따라 함께 걸으면서 성곽 옆에 놓여 있던 오래된 대포,  성문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덕의 한 편은 영국계, 반대편은 아일랜드계가 살고 있었다. 휘날리는 유니언 잭과 아일랜드 국기가 각 마을의 정체성을 보여줬다. 여러 벽화도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중에 무고하게 희생당한 소녀의 벽화가 유난히 두드러지게 보였다. 


갈등 시기에 무고하게 희생당한 소녀를 담은 데리의 벽화


언덕에서 내려와 그분은 아이패드를 꺼내서 오래된 블러디 선데이 사진을 보여주셨다. 할아버지인 자신이 아이패드를 꺼내면 다들 놀란다는 농담을 하면서 시위대 사진 속 젊은 날의 자신을 가리켰다. 당시 현장에서 자신이 어디에서 있었는지, 어떤 길을 따라서 움직였는지, 자신이 왜 IRA에 들어갔는지 등의 무거운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그 현장 주위로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표식과 꽃다발들이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회색 하늘 아래로 당시 희생된 소년을 기억하며 가족들이 만든 표식이 있었다. 


The apprentice boys of Derry 


고등학생 때 사회탐구 과목으로 정치를 배우면서 영국의 권리장전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1689년 제임스 2세가 명예혁명으로 폐위되고 권리장전으로 군대와 조세에 관련된 사항을 의회에서 결정한다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이렇게 영국에서 의회정치가 발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아일랜드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다. 1688년부터 1691년까지 아일랜드에서 Williamite War in Ireland가 일어났는데, 제임스 2세를 지지하던 재커바이트 세력과 오렌지공 윌리엄을 지지하던 윌리어마이트 세력 간의 전쟁이다. 1689년 영국계 개신교 세력은 런던데리의 문을 닫고 105일 동안 제임스 2세 세력으로부터 런던데리를 지켰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The Apprentice Boys of Derry(ABoD, 직역하면 데리 견습소년 모임)이 만들어졌다. ABoD 기념관과 박물관 (The Siege Museum, siege는 포위를 뜻함)이 함께 있는데, 오후에는 이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Apprentice boys를 기념하는 어느 벽화


방문했던 박물관의 모습


17세기 초 런던데리는 영국계, 스코틀랜드 세력이 정착했던 식민지 정책의 중심지였다. 당시  영국계 사람들이 

어떻게 런던데리를 개척하고, 제임스 2세의 세력으로부터 런던데리를 지켜냈는지에 대한 기록을 전시로 표현했다. 지금도 매년, 소년들이 포위된 런던데리의 문을 열고 외부에 지원 요청한 것을 기념하며 런던데리 전역에서 행진을 개최한다. 그리고 행진은 가톨릭계 거주구역까지 이어진다.  


박물관의 직원분도 ABoD의 일원이었는데, 시간을 내서 우리의 질문을 받아주셨다. 그분은 박물관이 가톨릭계가 많이 사는 지역에 있어서 지역사회통합을 위해 박물관에서 하는 일을 소개해주셨다. 자신도 가톨릭계 친구가 많다며 ABoD가 어떤 곳인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셨다. 보수적인 오렌지회(오렌지단, Orange Order, 영국 연합주의를 따르는 개신교계 보수단체)와는 다른 곳인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피스 브릿지 전경


박물관에서 시간이 끝나고 잠깐 짬을 내서 런던데리/데리에 있는 피스 브릿지를 건넜다.  데리/런던데리에서 강의 동쪽에는 개신교계가, 강의 서쪽에는 가톨릭계가 살았는데,  둘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소망하면서 지은 다리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리를 건널 수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다리를 건너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 북아일랜드 출신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학교에서 역사를 어떻게 배우는지 물어봤는데, 갈등 시기의 역사를 배우는 시간은 적다고 했다. 어떤 이유에서  그 사람들을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까. IRA에 있었던 사람을, 지금도 가톨릭계 거주구역까지 행진하는 사람들, 민병대에 있던 사람들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북아일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by 파랑

2013년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동아시아 어린이 평화워크숍' 모둠교사를 하면서 회원이 되었고, 2018년 9월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코리밀라로 파견하는 첫 번째 자원활동가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어린이어깨동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한반도가 더 이상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평화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북녘 어린이 지원, 평화교육문화활동, 남북어린이 교류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다. 코리밀라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단체로, 북아일랜드의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코리밀라를 서울로 초대하여 평화교육 심포지엄을 진행하였고, 자원활동가도 파견하는 등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두 단체 모두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

코리밀라에서 2018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자원활동가로 있으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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