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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이어깨동무 May 27. 2020

13. 4살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면 무엇이 달라질까?

코리밀라에서 전합니다 

도시를 나누는 ‘평화의 벽’ 


벨파스트 곳곳에는 피스 월 (peace wall, peace line이라고도 함)이 있다. 피스 월은 유혈분쟁이 심각해지던 1969년부터 가톨릭 거주구역과 개신교 거주구역을 나누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벨파스트 인터페이스 프로젝트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전역에 약 116개 피스 월이 있으며, 이중 97개가 벨파스트에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나 철문과 게이트, 나무 울타리 등 다양한 모습으로 피스 월이 있다. 


샨킬로드에 있는 피스 월

샨킬로드 구역에 있는 피스 월 중 하나는 1998년 사법부(Department of Justice)가 만든 것으로, 4.5m 높이 콘크리트 벽 위에 3미터의 철판, 6미터의 철망이 800m 길이다.  1998년 성금요일 평화협정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스 월은 데리의 피스 브릿지와 정반대로 도시를 나누고 있다. 장벽으로 마을과 학교, 상점들이 분리되어 사람들의 만남을 막는다. 평화협정 이후에 소수의 장벽들만이 없어졌으며, 오히려 새로운 장벽들도 생겨났다. 피스 월은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울타리이자, 갈등이 남긴 도시의 상처이기도 하다. 


벨파스트에서 피스 월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두 어린이집에서 코리밀라로 가족캠프를 왔다. 가톨릭 어린이집과 개신교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의 배경은 다르지만 아이들의 짝꿍을 정하고 서로의 유치원을 방문하는 등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코리밀라를 방문하는 가족캠프도 두 어린이집과 다른 단체에서 공동으로 기획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4살 아이들이 버스에서 한둘씩 내렸다. 


4살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4살 아이들과 하는 캠프는 귀여웠다. 아이들은 다른 유치원의 짝꿍이 있었고, 쉽게 말하면 별님, 달님, 햇님 모둠이 있고 모둠 노래도 있었다. 아이들은 가사를 틀리지만 선생님을 따라 열심히 모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도와 미술놀이를 하고, 밖에서 놀이를 하고,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줬다. 이렇게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노는 동안, 부모님들은 부모교육을 받고 어떻게 분리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것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원활동가들이 해적 분장을 하고 숨으면 아이와 부모님이 2인 1조로 해적들을 찾아다니는 게임도 했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신이 나서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해적들을 찾아다녔다. 


4살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드릴 꽃다발을 함께 만들었다. 


문득 4살 아이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뛰어놀면 무엇이 달라질까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미국 대학교에서 코리밀라로 필드트립을 많이 오던 시기였는데, 대학생들과 같이 북아일랜드 이야기를 듣는 편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과 '깜찍한'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밖에서 코리밀라를 둘러보던 대학생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부끄럽기까지 했다. 


장벽 너머에도 안전한 공간이 있다


2박 3일 캠프에서 저녁이면 자원활동가와 스태프, 선생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프로그램 평가와 다음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자원활동가들에게 두 유치원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한다. 회의에서 피스 월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두 어린이집이 계속 교류를 하면서 어른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있는' 장벽 너머에도 자신에게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아이의 친구가 다니는 어린이집. 아이들은 자신의 짝꿍을 만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장벽 너머 마을로 놀러 갔다. 장벽 너머 미지의 공간이 내 아이의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함께 자란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장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어린이집들과 다른 지역 단체들과 함께 피스 월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장벽을 거의 없애기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꾸준한 만남과 교류를 통해 장벽을 허무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노는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by 파랑

2013년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동아시아 어린이 평화워크숍' 모둠교사를 하면서 회원이 되었고, 2018년 9월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코리밀라로 파견하는 첫 번째 자원활동가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어린이어깨동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한반도가 더 이상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평화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북녘 어린이 지원, 평화교육문화활동, 남북어린이 교류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다. 코리밀라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단체로, 북아일랜드의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코리밀라를 서울로 초대하여 평화교육 심포지엄을 진행하였고, 자원활동가도 파견하는 등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두 단체 모두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

코리밀라에서 2018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자원활동가로 있으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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