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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Sep 01. 2021

그렇게 촌사람이 된다

오키나와 시골생활


沖縄県 中頭郡 読谷村 都屋
오키나와현 나카가미군 요미탄촌 토야


2018년 1년간 우리가 가졌던 주소다. 우리가 신혼집을 꾸렸던 곳은 오키나와에 있는 나카가미에서도 요미탄에 있는 토야라는 동네였다. 일본 주소라서 한 번에 와닿지는 않지만, 일본 주소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시골 주소라는 것을 알 것이다. 한국의 행정구역으로 비유하자면, OO OO OO이 아니라 ㅁㅁ ㅁㅁ ㅁㅁ와 가깝다. 



요미탄촌 사람. 요미탄 촌사람.


오키나와에서 만난 친구들이 '어디 살아?'라고 물어볼 땐 보통 '요미탄에 살아'라고 답변을 했고, 우리 부부는 그렇게 1년 동안 요미탄촌 사람으로 살았다. 요미탄촌 사람. 요미탄 촌사람. 띄어쓰기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사실, 우리가 살았던 요미탄은 나하 (Naha)나 기노완 (Ginowan)과 같은 다른 오키나와 도시 (市)들에 비하면 훨씬 아담한 시골이었다. 심지어 공식적으로 시골사람 인증을 받은 일도 있었다. 나하에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일본분을 우연히 만났었다. 우리가 요미탄에 산다는 말을 듣고 그분은 유창한 한국말로 “시골사람이네요!”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오키나와 슬로우 라이프는 이 작은 어촌 시골마을에서 이뤄졌다 [1].

[1] 참고. 일본 내 다른 지역에서는 촌 (村)이라는 글자를 '무라'라고 발음하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손'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확한 발음은 '요미탄손'이다.

Fun Fact. 요미탄촌은 일본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촌이다. 촌 중에서 최고의 촌, 시골 중에서 최고의 시골이랄까. 나름 자부심이 있다.



작은 어촌 마을 토야 (都屋)

“다시 오키나와로 돌아간다면 어디 살고 싶어?”


만약 우리가 다시 집을 구해야 한다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여간의 오키나와 생활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다시 토야이다. 서해바다와 맞닿아 있는 토야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토야는 요미탄촌에 있는 많은 시골 동네 중에서도 더 아담한 편에 속했다. 얼마나 시골이었냐면, 우리가 살았던 3층짜리 아파트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 앞을 가리는 그 무엇 하나 없이 오직 푸른 바다와 하늘만 보였다.


일부러 이런 시골을 찾아들어 온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학교 근처 이시카와 (石川)라는 곳에 집을 얻을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들 (바닷가 옆, 집 근처에 슈퍼마켓/성당/파출소 등등)을 따져보니 남은 곳은 여기 토야였다. 시골에서 살아본 나와는 달리, 대도시 서울에서 나고 자란 경희에겐 첫 시골생활이었다. 시골과 대도시에서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보내서인지,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의미의 질문을 서로에게 했다.


갱: 저녁에 어디 가? (뜻: 어디 가서 외식하고 한잔 할까?)
나: 저녁에 어딜 가? (뜻: 가게도 다 닫고 어두운데 어디를 가려고?)


다행히 서울 사람 경희도 이내 여기 오키나와 시골생활에 적응했고, 나만큼 그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


아메리칸 빌리지와 같은 관광지가 화려함으로 한 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면, 우리가 살았던 시골 동네 토야는 살다 보면 은근히 드러나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이름도 없는 집 앞 해변이지만 언제나 아름다운 산호와 석양을 볼 수 있었고, 서핑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산책하기 좋은 작은 공원도 있었고, (크리스마스 때 한번 갔지만) 오키나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성당도 있었다. 나하에 있는 토마리 이유마치 수산시장에는 비할바가 안되지만, 토야에 있는 작은 항구 옆 수산시장에서도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었다. 유명하진 않지만 언제나 맛있는 오키나와 소바를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었고, 시골 생활을 달달하게 해주는 디저트와 빵을 먹을 수 있는 조그만 베이커리들도 있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런 것들이 우리가 토야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참 살기 좋은 곳인데 생각보다 학교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부동산 용어로 표현하자면 '저평가'된 지역이라고 할까. 


오키나와에서 '시골맛'을 알아버린 우리 부부. 지금도 제주도 여행을 갈 때면, 사람이 많은 제주시 번화가나 애월 같은 곳은 피하고 저기 멀리 한적한 남원으로 향한다. 한적한 오키나와 시골마을 토야와 같은 곳을 찾아서.


우리 부부는 그렇게 촌사람이 되었다.



오키나와에서 집을 구할 때 체크리스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간의 오키나와 시골 신혼생활을 풍요롭게 채워줬던 것들을 소개한다. 


토야항 수산시장

바다, 바다, 서해바다! 오키나와에 살고 싶은 이유의 알파이자 오메가. 특히 서해안 쪽 바다와 가까우면, 날마다 멋진 저녁노을이 기본 옵션으로 딸려온다. 어촌 마을이라면 조그마한 항구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 항구 근처엔 갓 잡은 생선들을 파는 작은 수산시장이나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어서 좋다. 단, 바다 바로 앞집은 비추. 오키나와의 태풍을 몇 번 겪어보니, 바다 바로 앞에서 그 강한 태풍을 맞는다고 상상하니 오싹하다.


마트와 편의점. 오키나와에서는 걸어서 10분밖에 안 되는 거리라도 차를 타고 다닌다 (나도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뜨거운 오키나와 햇살 아래 걷다 보니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마트와 편의점이 있으면 매우 편리하다. 마트 중에서도 특히 San-A나 Aeon 마트가 물건도 다양하고 좋았다.


코인 론드리. 거의 대부분이 건조기다

코인 론드리. 장마기간에 빨래 말리기가 너무 어려운 오키나와에서는 집 근처 코인 론드리가 필수다. 집에 건조기가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코인 론드리에 있는 대용량의 건조기는 단연코 삶의 질을 높여준다. 가격은 10분에 100엔 정도.


빵집우리나라 파리바게뜨처럼 베이커리 체인점 (Jimmy's)도 있지만, 동네마다 로컬 빵집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 빵이 맛있었는데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1,000엔 (약 만원) 정도면 빵 대여섯 개를 손에 쥐고, 잔돈도 거슬러 받을 수 있다.



세라노모리 공원

공원.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혹은 코인 론드리에 빨래를 돌리고 시간이 빌 때, 간단하게 산책하거나 앉아서 쉴 공간을 내어주는 작은 공원은 언제나 좋다. 


한잔 즐기기 좋은 식당. 택시비도 비싸고 대리운전 (다이코)도 꽤 비싼 편이라 집에서 먼 곳에서 외식을 할 때면 둘이서 같이 한잔 즐기기 어려웠다. 운전할 걱정 없이, 집 근처에 간단하게 한잔할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면 좋다. 


피해야 할 (수수)밭. 집 근처 밭은 서정적인 시골의 정취를 더해주지만, 그와 더불어 수없이 많은 벌레도 같이 가져다준다! 연구실 친구 집은 수수밭 바로 옆에 위치해있었는데, 친구 집에 가보니 테라스는 통째로 벌레들에게 내어 주고 있었다 (and they don't pay rent!). 수많은 벌레와 동거할 계획이 아니라면 밭 옆의 집은 피하는 게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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